템플스테이 로망스
그렇다.
혼자 다니는 여자는 그 존재만으로도 눈길이 간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잠을 자고 혼자 걸어 다니니까.
2003년 1월 신년이 밝아오던 날 나는 도쿄의 한 빌라 작은방에서 눈을 떴다.
룸메이트는 남자친구와 연말연시를 보내러 여행을 떠났고 나만 홀로 남아 그녀가 사다 놓고 미처 다 먹지 못한 돈키혼테산 100엔짜리 바나나로 배를 채우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어디론가 나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스쳤다.
나는 스치는 생각을 그냥 두지 않는 행동파 녀성이므로 바로 컴퓨터를 켜서 일본인들이 신년에 가장 많이 가지도 그렇다고 아예 가지도 않는 그저 그런 지역의 온천지역을 찾아 헤맸다.
그러다 지옥의 온천이라 불리는 지역의 고마츠를 알게 알게 되었고 도쿄역에서 출발하는 기차가 몇 시간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는 부랴부랴 배낭을 싸서 도쿄역으로 향했다.
시골 온천마을까지 가는 길은 음... 불편했다.
한마디로 잠 한숨 자지 못 할 만큼 여러 번의 환승의 환승을 거쳐야 했다.
귀를 쫑긋 세우고 기차가 서면 다른 기차를 타기 위해 칼바람이 부는 플랫폼에 서서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고 목을 거북이처럼 집어넣어야만 했다.
그렇게 두세 번의 짧다면 짧은 환승을 거쳐 도착한 곳의 인상은 모두가 여자이고 모두가 잠잘 때 입는 유카타를 아무렇지도 않게 입고 그 추운 겨울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다는 점이었다.
동생의 오리털 점퍼를 입고 있던 나조차 그 거리를 걸을 때는 뜨거운 김 때문에 벗어던져야 할판이었다.
숙소를 정할 때 나만의 기준이 있다면 각 방마다 개별 노천 온천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다행히도 일본은 그런 숙소가 지천에 깔려있고 가격마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에다 저녁 및 조식을 제공해 주니 선택의 폭은 깊고도 넓었다.
지금은 이름이 기억나지 않지만 그냥 역에서 나와 10분만 걸으면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한 작은 료칸에 들어섰다.
"이랏샤이마세(어서 오세요), 오히토리사마데스까?(혼자이십니까?"
카운터에서 뉴스를 보고 있던 젊은 남자 매니저는 사람이 들어오면 그게 몇 명이든 혼자이냐고 물어보는 사람이었다.
추후 4명이 같이 들어오는 데도 혼자 왔냐고 물어보는 행태를 봤을 때 더 확신을 느끼게 되었다.
"하이, 히토리데스, 나마에와 어무 데쓰(네 혼자입니다. 이름은 엄입니다.)
매니저는 노트를 뒤적거리더니 익숙지 않은 이름의 외국인 이름을 살펴보고는 키를 건네어 준다.
그리고 노천온천은 24시간 이용할 수 있으며 저녁 식사 시간은 8시까지 이니 언제든 가능할 때 전화를 주라고 했다.
긴장감이 풀린 나는 복도 끝에 있는 내 방에 들어오자마자 준비되어 있는 우롱차 한 잔을 마시며 두 다리를 그제야 쭉 뻗었다.
방은 혼자든 둘이든 셋이든 상관없이 넉넉한 사이즈였고 담배를 아무 데서나 피우는 도쿄와는 달리 담배 피우는 장소가 화장실 옆에 딸려 있어 방에서 역겨운 냄새가 나지 않아 좋았다.
옷장문을 열고 나도 유카타를 입었다.
늘 궁금한 사항이지만 유카타 안에 속옷을 입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가 관건이다.
일본인 친구인 쇼코짱은 아예 입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나는 길거리를 헤맬 생각을 하니 위아래 속옷이라도 다 입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고마츠의 길거리는 정겨움 그 자체였다.
처음 보는 나에게 단체여행객들이 인사들을 해주고 저쪽으로 가면 공짜 온천이 있으니 한 번 들어가 보라는 정보도 흘려주었다.
과연 나 홀로 들어간 그곳은 주민들이 매일 청소만 할 뿐 그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는 그저 지역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꾸어진 온천이었다.
싫증이 나면 다음 공짜 온천으로 옮기면 그만이었다.
얼굴이 화끈거리면 길거리 여기저기 피어오르는 연기 안에 있는 족욕탕에서 발만 담그고 있으면 되는 일이었다.
그때만큼 혼자의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없었다.
슬슬 배가 고파와 숙소로 도착해 저녁을 방에서 먹지 않고 식당에서 먹겠다고 했다.
방에 들어왔더니 이미 이불이 깔려있었고 방에 음식냄새가 배는 건 딱 질색이었기 때문이다.
식당엔 벌써 여러 일본인 가족들, 커플들이 저녁을 먹고 있었다.
나는 당당히도 유카타를 걸친 채 혼자 저녁을 먹어 치우고 있는 중이었다.
일본의 짠지는 내게 훌륭한 애피타이저가 되어 입안의 침을 고이게 했고 일회용 불을 켜주며 스키야키를 해주던 손길엔 정성이 담겨 있었다. 밥은 어떤가? 윤기가 좔좔 흘러서 한 그릇 더를 외치지 않는 자는 모조리 죄인이다. 횟감들은 산속 어디에서 났을지가 의문스럽지만 달고 달아 입안에서 없어져버리고 맥주병은 작은 컵으로 여러 번이나 채워줘 만족감을 배가시켰다.
그렇게 허겁지겁 저녁을 먹고 있는데 매니저일을 보고 있던 카운터의 그 사나이가 내 앞에 앉아도 되느냐고 물어보며 대답도 듣기 전에 앉았다.
이게 뭔 일?
일본인이 먼저 말을 걸고 수작을 걸 정도로 이쁜 민낯이 아닌 난데?
"도꼬까라 기마시따?(어디에서 오셨어요?)"
"도쿄까라 기마시따께도(도쿄에서 왔습니다만)
남자의 눈이 휘동 그래지며(원래 일본인들이 대답만 해주면 다 이런 식이다)
“아! 소우난데스까? 도코로데 고꼬와 도우시떼 이랏샤이마시다까?( 아 그래요? 그런데 여기는 어떻게 오신거삼?)
일본인 치고는 참 직설적이며 무례하다.
혼자 온 외국인 여자를 얕보는 건가 싶은 생각 잠시 스쳤지만 그래도 대화를 하는 건 기분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때마침 뉴스에서 각 지방의 날씨를 알려주는 기상캐스터기 도쿄지역을 알리며 따뜻하다고 했다.
“유키모 미따꾸떼 도쿄와 이즈레모 아따따까이데스요네(눈도 보고 싶고 도쿄는 아무래도 따뜻하니까여)
“가이샤상데쓰까네(회사원입니까?”
얘가 드디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게 도와주는구나.
“하이, Totyo OL데스”
“도쿄오에르”
그렇다.
도쿄의 대기업 다니는 여성 직장인이라는 뜻으로 Office Lady의 약자이며 각종 드라마 혹은 츨판물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는 당당한 여자의 대명사격이다.
“데모네… 이끼와 다이지나고토데스요(근데요..사는건 중요한 것이에요)“
“…..!?!?!?”
이 무슨 오지랖 터지는 말인가?
나는 지금 도쿄 한복판 금융과 사치의 도시 긴자의 기업에 다니는 레이디라고 당당히 말했는데!
근데 사는 게 중요한 것이라니?
도쿄오에르고 나발이고 다 필요 없고 잘 사는 게 중요하다는 그 남자의 표정에는 내가 사람하나 살리겠다는 비장함까지 서려있었다.
밥을 먹고 방에 딸린 노천 온천에 들어가 있는데 눈이 내렸다.
아 절로 행복하다는 말을 내뱉는 내 자신을 느끼며 혼자 다니는 여자는 그 자체만으로도 이상했던 그 시절이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이상하고 호기심 가는 대상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