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해니 Sep 06. 2020

아가야, 너의 첫 독립을 축하해

드디어 단유

'단유'. 내가 이 두 글자를 언급할 수 있기까지 정말 많은 시간이 걸렸다. 재이는 20개월 동안 모유수유를 했다. 처음부터 이렇게 오래 할 생각은 없었다. 내 몸이 생산해내는 모유로만 아이가 영양분을 섭취하고 성장한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부담스러웠고, 또 한편으로는 경이로웠다.



50일만, 100일만, 6개월만 하던 것이 20개월이 되었다. 나는 술이나 담배 또는 그 어떤 것에도 중독된 적이 없었지만, 모유수유에 중독되었던 것 같다. 이 중독이 얼마나 강력했느냐 하면, 낮잠과 밤잠 모두 수시로 모유를 찾는 아이 옆에 늘 내 몸을 찰싹 밀착시키고 있어야 했고, 이가 나기 시작할 때 아기가 건드린 유두에서 피를 보았음에도 모유수유를 중단하지 못했다. 태어나 처음 겪어보는 깊은 쓰라림에 그 깊은 새벽 눈물이 뚝뚝 흘렀지만, 그 순간에도 나는 아기를 걱정했다. '모유 없이 괜찮을까. 상처가 빨리 아물어야 하는데...'



 새벽에는 쪽잠을 자면서 아기가 행여 잠에서 깨지 않을까 늘 노심초사했다. 잠을 자면서 모유를 찾는 아기를 뿌리치지 못했고, 매섭게 우는 그 울음소리를 뒤로 하지 못하고 늘 나는 무너졌다. 모유수유란 얼마나 피로한 것인가...... 그런데 나는 아이가 모유를 먹으며 찾는 정신적 안정감, 그리고 먹을 때마다 활짝 웃어 보이는 미소를 보면 무장해제되는 사람이었다. 하루 종일 내 살에 폭 파묻혀지어 보이는 그 천사 같은 웃음에 완전히 중독돼 버렸다.




그렇게 약해질 대로 약해진 내 몸은 결국 출산 20개월째 되는 어느 날 더 이상 못 참겠다며 비명을 지르며 터져버렸고, 왼쪽 등, 겨드랑이, 팔에 수포가 자글자글 올라오기 시작했다. 대상포진이었다. 내 몸이 보내는 정확한 신호였다. '이제는 정말 그만 할 때가 되었다...'는 너무나 명백한 신호였다.



경미한 증상이 나타났을 때는 어떻게든 약을 먹지 않고 자연 치유되기를 바랐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모유수유를 중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많은 후기를 찾아보았지만 당장 약을 먹어야 하고,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버텨보고자 했던 내 의지와는 다르게 하루하루 지날수록 증상은 악화되었고 결국 약을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다. 그제야, 나는 인정했다. 아, 여기까지구나. 내 모유수유의 끝은 여기였구나.



마음이 확실히 서니 매섭게 우는 아기의 울음도 감내할 수 있게 되었다. 아기의 울음을 계속 듣고 있는 것은 생각보다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이번에는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 '모유수유 전문가' 선생님께 연락해 짧은 상담 요청까지 했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 조언을 들으니 마음이 한결 차분해졌고,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아기가 날카롭게 울 때마다 계속 속으로 되뇌었다. '아가야 너무 힘들지... 진정될 때까지 엄마가 옆에서 기다려줄게......'



내 품에서 지어 보였던 그 해맑은 미소는, 내 품을 떠나서도 볼 수 있는 것이었더라. 이제는 놀이를 하면서, 간식을 먹으면서, 책을 읽으면서, 매 순간에서 재이의 환한 얼굴을 본다. 비로소 아기의 독립이 시작된 것이다.



모유수유.

엄마만이 경험할 수 있는 특권.

와 엄마 그 둘만이 호흡하는 최고의 팀플레이.



나는 20개월 동안 정말 행복했다. 때로는 몸서리치게 힘들었지만 분명 그보다 더 큰 행복감이 있었다. 

완전히 중독될 정도로.

작가의 이전글 나는 왜 글을 쓰고 싶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