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을 물어올 때면 늘 보라색이라고 대답했다.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오묘함이 매력적이었다. 대놓고 우울하기만 한 것도, 마냥 쨍하게 행복하기만 한 것도 아닌 것이.
스무 살이 되어 거금 9만 원을 주고 산 헤지스 반지갑은 내가 딱 좋아하던 보라색이었다. 백화점을 어슬렁거리다가 무심코 봐버린 그 지갑이 내 머릿속에서 자꾸만 둥둥 떠다녔고, 결국은 고민 끝에 재방문해서 구매했다. 너무 쨍하지도 않고 연하지도 않은, 묵직하지만 선명한 보라색. 에나멜 재질이라고 해야 하나. 부담스럽지 않은 자연스러운 광택이 났다. 튀는 것 같으면서도 또 그렇게 튀지도 않는. 그런 이중적이고 심오한 매력이 있었다.
그 당시 9만 원은 내게 거금이었기 때문에 며칠을 고민했지만, 아무래도 그 지갑은 내 것이어야만 했다. 지갑이 생기고 나서 어찌나 행복하던지, 가게에서 금액을 지불할 때 이외에도 자꾸만 꺼내서 한참 동안 만지작거리곤 했다. 바라만 보고 있어도 흐뭇했다.
보라색에 대한 내 확고했던 편애는 임신으로 인해 완전히 꺾이고 말았다. 보라색이 처음으로 불편해지기 시작했던 순간을 맞이해버린 것이다. 임신 7개월 차 때였다. 옅은 보랏빛의 색을 띤 '튼살'이 내 배를 덮어버리기 시작했을 때였다. 처음으로 이 색에 대한 거부감이 물밀처럼 몰려왔다.
'아...... 징그럽다........ 보라색............ 으 이건 너무 징그러운데......?'
치골 쪽에 귀엽게 얼굴을 빼꼼 내밀던 튼살 두 개를 시작으로, 하루가 다르게 내 살은 쩍쩍 갈라지더니 옅은 보라색이 짙어지기 시작했다. 거울을 볼 때마다 마음이 많이 상했다. 거울을 보지 않을 때도, 거울에 비친 그 보랏빛 튼 살이 생각나 가슴이 몇 번이고 철렁했다.
나는 도대체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 걸까?
내 몸은 어디까지 변하려는 걸까?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뒤늦은 튼살크림은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그저 이제라도 크림을 바르면 더 이상의 튼살이 생기는 것은 막아주지 않을까 하는 헛된 기대였고 자기 최면일 뿐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배는 점점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왔고, 그럴 때마다 내 '보랏빛' 튼살은 보기 좋게 영역을 확장해나갔다. 나는 언젠가부터 거울로 내 진짜 모습을 마주하는 것을 꺼려했고 모른 체했다.
나는 임신 초-중기에 심한 입덧과 무기력증으로, 다른 사람들이 흔히 남기는 주수 사진을 찍지 않았다. 배가 불러오는 것은 신기했지만, 나도 사진을 좀 찍어볼까치면 울퉁불퉁 군데군데 살이 쪄버린 내 모습이 더욱 못나보였다. 임신 후기에는 이 보랏빛 튼살이라는 놈이 나타나 또 주수 사진 찍기를 방해한 것이다. 덕분에 나는 임신 중에 거의 사진을 남기지 않았다. 주수 사진뿐만이 아니라, 악성 여드름으로 뒤덮여버린 내 얼굴과 몸에 신물이 나버렸기 때문이다. 최대한 모른척하고, 기록으로 남기지 않는 것이 그때의 최선이었다.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의외의 순간에서 나는 보라색과 재회했다. 얼마 전부터 마켓컬리라는 브랜드를 이용해 장을 보고 있는데, 채소나 과일의 품질이 좋고 평소에 접하지 못했던 식재료들이 있어서 하나씩 구매해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러다 문득 '내가 이 브랜드에 처음 끌리게 된 계기'를 생각해보다 생각난 것이 있다. 그 브랜드의 로고가 보라색이었던 것이다. 나도 모르는 새 나는 직감적으로 보라색에 다시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렇게 조금씩 회복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옅어지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필요해 보이는 튼살자국이지만, 이렇게 조금씩, 서서히 원래의 내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임신으로 인해 잠시 잃어버렸지만 다시 찾아가는 내 모습 말이다.
무슨 색을 가장 좋아하세요?
이 물음에 나는 앞으로 어떤 대답을 할지. 나는 다시 보라색을 예전처럼 좋아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