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율이 어느 한쪽으로 너무 쏠려버리는 경우에는 어쩌지? 쓸모없고 고리타분한 일이 되는 것일까?
카페에서 노트북을 펴고 에버노트에 내 생각을 적어 내려 가는 일. 연습장의 아무 페이지에 의식의 흐름대로 끄적거려 보는 일. 머릿속은 복잡한데 아무것도 써지지 않을 때는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무작정 읽어내려가거나, 그것도 어려울 때는 메모장에 고이 모아둔 책 속의 말들을 꺼내보며 찬찬히 곱씹어보는 것.
20대 초반에 내가 자주 하던 것들이다.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김연수, 임경선 작가를 좋아했다. 소설가의 에세이를 읽는 것에 재미를 붙였고, 때로는 얇은 시집을 하나 사서 나 홀로 의미를 붙이고 상상의 나래를 펼쳐가며 한 페이지를 꽤 오랜 시간 붙들고 있기도 했다.
카페에서 혼자 서너 시간을 보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따뜻하고 진한 커피와 잔잔한 노래, 그리고 엉덩이 붙일 곳만 있으면 어디든 안락했다. 종각의 할리스와 오리역의 스타벅스를 편애했다.
주문한 커피를 다 마시거나 리필한 커피마저 바닥을 보이면, 나는 슬슬 집에 갈 채비를 했다. 커피 트레이를 정리하고, 노트북 충전선을 뽑아 가방에 넣고, 어질러진 책과 노트들을 크기대로 가방에 정리했다. 그런데 분명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나왔는데, 귀갓길 마음이 마냥 가볍지만은 않았다.
내가 카페에서 하고 나왔던 일들이라고는,
정리되지 않은 문장 구조들을 간단하게 바꾸어 보는 일,
문장 하나를 붙들고 그 안에 들어갈 단어를 골라보는 일,
일상적으로 쓰던 단어나 몰랐던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는 일,
빈번히 사용되는 부사나 단어를 거르고 바꾸는 일들이었다.
가끔은, 아니 자주, 들인 시간 대비 내가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았다. '나는 대체 몇 시간 동안 뭘 한 걸까' 하는 당혹스러움이 밀려왔다. 또래 20대들의 친구들에 비해 너무 태연하게 시간을 써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조바심도 났었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는 것은 대다수 20대들에게 적용되는 '의무' 같은 것이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효율이 떨어져도 이것이 내게는 큰 즐거움이었다.
내 자유의지로 무언가를 한다는 것, 그것이야 말로 내가 사랑하는 것이다. 누가 시킨 적 없지만 나만의 습관으로 자리 잡은 일들이다. 수많은 안락함과 게으름을 잠시 유보하고 나만의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이 시간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