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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의 삶이 어느덧 열일곱 번째 날.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우리만의 속도로
조금씩 이 땅에 스며들고 있다.
우리에게 조금 더 특별한 기억 하나가 쌓였다.
제주신화월드 안에 모모쥬 동물원에서 국내 최초 ‘카피바라 동물원’이 생겼다고 해서 다녀왔다.
SNS으로 우연히 홍보글을 보고 아이들에게 아무렇지
않듯 얘기 꺼냈더니 그 말 한마디에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 “꼭 가자!”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카피바라는 어떤 동물일까?
모르는 척 묻자 아이들은 다 알고 있다는 듯 한
목소리로 말했다.
“물놀이 좋아하고, 풀 뜯어먹는 커다란 햄스터
같은 동물!”
“느긋하게 온천에 들어가는 거 진짜 귀엽다니까!”
이미 영상으로 카피바라에 대해 여러 번 봤던
아이들이었다.
카피바라는 남미 원산의 세계 최대 설치류다.
느릿느릿 움직이고 따뜻한 물을 좋아하고 덩치는
크지만 마음은 온순한 요즘 말로 하면 ‘힐링계의 아이콘’ 같은 동물이다. 아이들은 올해 서울 여행 때 인형과 키링으로 카피바라의 존재를 품고 있었다. 그리고 그 꿈꾸던 동물을 집에서 20분 거리, 제주 신화월드에서 실제로 만나게 되었다.
모모쥬 동물원은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았다.
실내와 야외로 나뉘어 있어 산책하듯 천천히 걸으며
동물들과 눈을 맞출 수 있었다. 입장 시간은 2시간,
그 이상 머물면 초과 요금이 부과되지만
그 시간이 짧게 느껴질 만큼 풍성한 순간들이 쏟아졌다.
먼저 만난 건 야외의 동물 친구들. 아침 햇살을 받은 알파카, 옆에서 조용히 풀을 뜯던 양과 오리들.
먹보 알파카는 손에 바구니를 들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돌진하기 시작했다. 제주도 여행 올 때마다 알파카 보러 갔던 아이들은 예전 같았으면 무서워서 도망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차분하게 "기다리면 먹이 줄게."라고 알파카에게 대화도 했다.
모모쥬동물은 실내에는 작은 동물들과의 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기니피그, 사막여우, 프레리독, 앵무새, 닥터피시, 토끼, 미어캣 등 귀여운 생명체가 아이들을 반겼다. 아이들은 각자 먹이체험 바구니를
들고 한 마리 한 마리에게 조심스레 손을 내밀었다.
기니피그가 먹이를 받아먹을 때의 작고 바스락거리는 소리, 앵무새가 아이들의 손에 쥔 먹이통 위에 조심스럽게 앉던 순간, 프레리독을 먹는 것 보고
너무 귀엽다며 깔깔대던 웃음소리,
이 모든 장면이 마치 슬로모션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 — 카피바라 삼 형제.
첫째 줄곧 먹고 있던 먹보카피바라,
둘째는 눈을 반쯤 감고 꾸벅꾸벅 졸던 잠꾸러기 카피바라, 셋째는 야외 온천탕을 혼자 차지하고
있다는 온천탕 카피바라였다.
온천탕카피바라가 온천에서 수영하는 모습을
기대하며 기다렸지만 좀처럼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은 서운해하지 않았다.
그저 그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는 듯
따뜻한 눈빛으로 카피바라들을 바라보며 조용히 속삭였다. “카피바라 너무너무 귀여워"
도민 혜택으로 15,000원의 행복.
하지만 오늘 우리가 얻은 건 그 이상의 것이었다.
육지에 있을 땐 늘 언젠가 보러 가자고 말만
하던 존재, 그 카피바라를 제주살이 속 평범한
하루에 만날 줄이야.
조금씩 이곳에서의 일상이 내 삶으로
스며들고 있다는 걸 느낀 하루.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느긋한 동물
카피바라처럼 천천히, 하지만 깊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