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일, 병원신세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목이 굳어 있었다.
고개를 조금이라도 돌리려 하면 뻐근함이 비수처럼 파고들었고 잠시 후 양팔이 저리며 머릿속에 둔탁한 통증이 번졌다. 몹쓸 목디스크가 다시 고개를 든 것이다.
정신을 가다듬고 20분 거리의 정형외과로 향했다.
대기만 두 시간이 넘는다는 안내에 순간 한숨이 나왔지만 다행히 딸이 함께였다.
진료를 받고 목 사진을 찍고 물리치료를 받으러 들어갔을 때 간호사에게 “대기 의자에 있는 딸 좀 불러주세요”라고 부탁했다.
잠시 후, 대기실을 울리는 큰 목소리가 들렸다.
“이○○님 보호자님, 환자분이 찾으십니다!”
고개를 숙인 채 민망함을 삼키는 나를 향해
딸이 물리치료실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환하게 웃었다.
“엄마, 나 이제 엄마 보호자야.”
아픈 와중에도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빵 터졌다.
집으로 돌아와 겨우 점심을 차려 먹고
전날 예약해 둔 곳이 있어 꾸역꾸역 외출했다.
다행히 아이들과 코코는 그곳에서 한껏 즐겁게 놀았다.
몸은 여전히 무거웠지만 아이들의 웃음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마당에 차를 세우고 집으로 들어서려던 순간
호스 위를 느릿하게 기어가는 달팽이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을 불러 함께 들여다보니 그 작은 생명체의 느린 걸음이 왠지 경이롭게 느껴졌다.
도시에서는 무심히 지나쳤던 달팽이가 오늘은 우리 식구가 되기로 한 것이다.
나는 어느새 모든 경계와 어른스러움을 내려놓은 순수한 아이가 되어 있었다. 급히 야채통을 꺼내 아이들에게 건네주었다. 잠시 후 거실 한편에서는 종이와 테이프, 색종이와 반짝이 하트가 어우러지는 소리가 사락사락 번져갔다.
아이들은 택배박스를 재단하고 색을 입히고 구멍을 내며 달팽이의 새로운 보금자리 ‘바삭이 집’을 정성스레 완성했다. 이름을 지어주는 순간까지, 그들의 표정은 진지하면서도 설레었다.
창의력은 자연 속에서 피어난다더니 오늘 그 진리를 두 눈으로 확인했다. 달팽이를 품에 안은 아이들의 웃음은 투명했다.
저녁에 설거지를 하다 칼날에 손을 베였다.
순간 놀란 딸이 부리나케 달려와 설거지를 대신했고
아들은 연고와 밴드를 찾아와 정성스럽게 붙여주었다.
그 작은 손길 속에 깃든 진심과 사랑이
목의 통증보다 훨씬 깊이 가슴을 울렸다.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가득 채워진 하루였다.
나는 오늘 사랑하는 아이들이 곁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새삼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