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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두 번째 휴가

+50일, 서귀포 당일코스

by Remi

남편의 휴가는 언제나 짧다. 공휴일과 주말에만 숨을 고를 수 있는 사람이기에 이번에도 단 3박 4일의 머무름이 전부였다. 첫날은 이미 오후 늦게 도착했고 마지막 날은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 다시 육지로 가는 비행기에 올라탔다. 그럼에도 짧은 시간 속에서 우리는 꽉 찬 하루들을 만들어냈다.



이번 여행지는 서귀포였다. 2주 전, 남편의 휴가에는 제주시 일대에서 시간을 보냈다면 이번엔 우리 가족의 추억이 더 많이 묻어 있는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아이들이 며칠 전 다녀왔던 산양큰엉곶 아빠와 꼭 함께 가고 싶다고 했고 우리는 그 바람을 첫 코스로 정했다. 바위와 숲이 맞닿은 곶자왈을 걷는 아이들의 표정은 유난히 밝았다. 그들에게 아빠와의 시간은 여전히 특별한 선물이었다.


이후 우리는 처음 가보는 산방산과 용머리해안으로 향했다. 바람은 뜨거웠고 햇볕은 무자비할 만큼 강렬했다. 34도의 폭염은 우리의 의지를 손쉽게 꺾어놓았고 결국 바닷가 곁 반려견 동반 카페에 들어가 두 시간을 머물렀다. 시원한 음료를 앞에 두고 아이들은 지친 몸을 식혔고 코코는 한쪽에서 조용히 잠이 들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이 또한 여행의 한 장면임을 마음에 새겼다.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것도 여행이지만 그 길목에서 쉬어가는 순간들 역시 기억 속에 오래 남는다.


저녁 무렵, 발걸음은 신라호텔 주변으로 이어졌다. 그곳은 우리에게 특별한 장소였다. 첫째가 세 살이던 시절, 처음으로 함께 걸었던 길이었기 때문이다. 아이의 작은 손을 잡고 낯선 길을 천천히 걸었던 기억이 남편과 내 마음속에서 동시에 되살아났다. 세월은 흘렀고 아이는 어느덧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지만 그날의 공기와 바다 내음은 여전히 변함없이 우리를 감싸고 있었다. 우리 네 식구 함께 산책을 이어갔고 추억은 조용히 되살아났다.



저녁은 아이들이 인정한 흑돼지 맛집 별돈별 중문에서 마무리했다. 석양이 서귀포 바다 너머로 붉게 가라앉는 동안 우리는 고기를 굽고 웃음을 나누며 하루를 정리했다. 노을은 유난히 천천히 저물었고 그 시간만큼은 가족 모두가 하나의 풍경 속에 머물러 있었다.


짧았지만 깊었다. 남편의 휴가는 늘 아쉬움과 함께 끝이 나지만 그 안에서 남겨진 장면들은 오래도록 우리 마음을 지탱해 줄 것이다. 아이들과 남, 그리고 나. 우리는 다시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이 섬의 여름 하늘과 서귀포의 바다는 오늘의 기억을 오래 간직하게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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