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설렘
오늘도 아이들은 하교 후 밝은 얼굴로 집에 들어섰다.
하루 종일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서로 다투듯 이야기하며 새로 사귄 친구의 이름을 부르고
수업 시간의 즐거운 순간들을 쏟아내는 그 목소리에는
맑은 설렘이 묻어 있었다.
“학교가 정말 즐겁다”는 아이들의 말에
내 마음은 비로소 안도했다.
이제는 더 이상 전학생이라는 단어에 매달리지 않고
자연스레 섞여드는 그들의 적응력이
참으로 고맙고 든든하게 느껴졌다.
어제저녁, 아들이 샤부샤부가 먹고 싶다 했기에
이른 시간부터 국물을 끓이고 채소를 손질했다.
식탁 위에 올려진 따뜻한 냄비에서 피어오르는 김은
마치 작은 축제의 신호탄처럼 온 집안을 채웠다.
함께 둘러앉아 고기를 데치고 채소를 건져 올리며
소소하지만 충만한 시간을 나누었다.
식사가 끝나자마자 나는 아들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섰다. 매주 두세 번은 농구코트가 있는 곳에 함께 가기로 한 단순하지만 소중한 약속.
아들은 농구공을 손에 쥐는 순간 활기가 넘쳤고
딸은 옆에서 운동기구를 만지며 또 다른 즐거움에 빠져 있었다. 나는 코코와 함께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낯선 길이 이제는 익숙한 산책로로 변해가고
발걸음 하나에도 제주의 공기가 스며들었다.
그러던 중, 고개를 들자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다웠다.
노을이었다.
하늘은 붉고 주황빛은 물결처럼 번져나가며
세상의 소란을 잠시 덮어주는 듯했다.
농구하는 아들의 웃음소리,
운동기구에 열중한 딸의 숨결,
코코의 작은 발자국 소리가 그 노을빛 속에 녹아들었다.
그 순간은 분명 선물 같았다.
나는 제주에 와서 유독 노을을 자주 본다.
노을이 좋은 이유는 단순하다.
그것은 하루의 끝을 끝으로만 두지 않고,
새로운 내일을 품은 여백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타오르듯 강렬하지만 곧 사라지는 그 빛은
덧없음 속에 숭고한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무엇보다 노을은 하루 종일 쌓였던 마음의 찌꺼기를
고요히 씻어 내리고
잠시 멈추어 서서 숨 고를 수 있게 해 준다.
마치 하늘이 건네는 위로 같다 할까.
오늘의 노을을 바라보며 나는 깨달았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환히 웃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나의 하루는 충분히 충만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 위에 덧입혀진 노을빛은
내 삶의 작은 문장을 완성해 주는 쉼표 같았다.
어쩌면 제주에서의 날들은
그 노을처럼 뜨겁고도 평화롭게
소멸과 시작이 맞닿은 자리에서 빛나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