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그리움이 아닌 살아 있는 풍경
제주살이를 시작한 지 어느덧 두 달을 훌쩍 넘겼다. 오늘로써 61일째. 바람은 여전히 바닷내음을 실어 나르고 창문 틈새로 흘러드는 햇살은 매일 조금씩 다른 빛깔을 품는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도시의 촘촘한 분 단위 시계와는 다른 느슨하면서도 단단한 호흡을 가지고 흐른다.
문득 떠올린다. 이곳에 오기 전, 나는 특히 자기전 휴대폰을 열어 아이들의 어릴 적 사진을 자주 들여다보곤 했다. 갓난아기 시절의 앙증맞은 손가락,
첫 걸음을 떼던 순간의 떨림, 웃음으로 얼굴이 활짝 피어 있던 어느 여름날. 그 사진들은 나에게 그리움과 아쉬움 그리고 위안의 원천이었다. 아이들이 눈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늘 조금 더 붙잡아 두고 싶다는 마음이 앞섰기에 사진 속 순간을 반복해 소환했던 것이다.
그런데 제주에 와서는 신기하게도 휴대폰 속 사진첩을 거의 열어보지 않는다. 하루하루가 사진보다 더 생생한 풍경과 감각으로 채워지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마음껏 뛰어다니며 바다를 자주 바라보고 시원한 바람에 얼굴이 환하게 밝아진다. 그런 순간들은 사진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 과거의 기록을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된다. 이미 지금이 충만하고 현재의 풍경이 더없이 또렷하기 때문이다.
도시에서의 삶은 늘 부족했다. 아이들과의 시간이 짧았고 짧은 틈을 메우기 위해 사진을 반복해서 보며 그리움을 달랬다. 그러나 제주에서는 다르다. 매일의 일상 속에서 아이들의 성장을 직접 목격한다. 해질녘 붉은 노을 아래 뛰노는 뒷모습, 파도에 발을 담그고 신나게 소리치는 목소리, 바람에 실려오는 웃음소리까지 — 모든 것이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는 장면이다.
나는 깨닫는다. 사진을 덜 본다는 것은 사랑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이 더 충만하게 현재를 채우고 있다는 증거라는 것을. 과거를 붙잡을 필요가 없는 이유는 현재가 이미 충분히 아름답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들의 사진을 열어보지 않는다. 대신 그들의 웃음이 바람에 섞여 귓가에 머물고, 그들의 발자국이 모래 위에 선명히 남아 있다. 제주섬은 사진이 아닌 살아 있는 추억을 매일 새롭게 선물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선물 속에서 조금 더 단단해지고, 조금 더 느긋해지고, 조금 더 깊이 사랑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