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경 작가 《사춘기 아들의 마음을 잡아주는 부모의 말공부》를 읽고
책 한 권이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남길 때가 있다.
나는 이은경 작가의 《사춘기 아들의 마음을 잡아주는 부모의 말공부》를 통해 곧 닥칠 사춘기 아들과의 대화를 미리 배우게 되었다. 벌써 세 번째로 읽은 책이다.
사춘기라는 시간 앞에서 부모는 어느 때보다 조심스러워진다. 말 한마디에 상처를 주기도 하고 침묵 하나에 단절을 만들기도 한다. 이 책은 그 낯선 거리감 사이에서 부모가 어떻게 마음을 건너갈 수 있는지 담담하게 안내해 준다.
사춘기는 아이의 몸과 마음이 가장 요동치는 시기다.
그 불안정한 들숨과 날숨 사이에 부모는 종종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맨다. 아이의 말은 짧아지고 대답은 건조해지고 표정 속에서 감정을 읽기 어려워진다.
그러나 이 시기는 부모가 더 깊이, 더 조용히 옆에 서 있어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말은 줄어들어도 눈빛은 여전히 부모를 찾고 무심함 사이사이엔 사랑받고 싶은 기색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책 속에서 건져 올린 10가지 원칙은 결국 존중이라는 한 단어로 정리된다. 강요 없는 대화, 기다림의 기술,
그리고 “나는 네 편”이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보내는 과정. 이 책에서 힌트를 얻어 나만의 문장으로 재정리한 사춘기 아들과의 대화 원칙이다.
1. 노크하기 — 사전 허락의 힘
사춘기가 되면 아이의 방은 하나의 작은 세계가 된다.
문을 벌컥 열어젖히는 행동은 그 세계를 침범하는 일과 같다. 형식적이지만 의미 있는 예의를 지키는 것.
노크 후 대답을 기다리는 몇 초는 아이에게
“나는 너의 존재를 존중한다”라는 메시지를 건넨다.
존중이라는 기초가 깔릴 때 이야기는 비로소 열린다.
2. 공감하기 — 짧아도 깊은 반응
이 시기의 아이들은 긴 설명보다 짧은 맞장구에
마음을 연다.
“아, 그래?”
“와, 진짜?”
그 한 문장이 마음의 자물쇠를 부드럽게 푸는 열쇠가 될 수 있다. 세상은 아이에게 이미 너무 많은 평가를 요구한다. 집에서만큼은 판단을 내려놓고 감정의 무게를 가볍게 덜어주자.
3. 다정하게 — 안정적인 분위기 만들기
대부분의 시간 동안 다정한 태도를 유지하면
가끔 단호하게 돌변해야 하는 순간에 더 큰 힘을 갖는다. 다정함은 아이의 마음을 풀고 단호함은 안전한 경계를 세운다. 두 감정 사이의 균형은 부모의 호흡과도 같다. 부드러움 속에서 자라는 아이는 결국 강인해진다.
4. 간결하게 — 군더더기 없는 문장
사춘기 아이들은 긴 설명에서 메시지를 잃는다.
핵심만 간단하게 한두 마디면 충분하다.
부모의 말이 길어지는 순간 아이의 귀는 자동으로 닫힌다. ‘1절만 하자’라고 스스로 약속해 보자.
짧은 말이 오래 남는다.
5. 결론부터 — 구조 잡힌 대화
돌려 말하면 아이는 피곤해한다. 먼저 결론을 말하고 간단한 이유를 덧붙이는 방식은 아이로 하여금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게 한다. 그 과정에서 참을성이라는 낯선 근육이 길러진다. 대화의 구조를 잡아주는 것은 곧 사고의 구조를 잡아준다.
6. 선질문 금지 — 아이의 호흡을 기다리기
“학교 어땠어?”
“점심은 뭐 먹었어?”
“숙제는 했어?”
이런 질문은 때로 아이의 마음을 위축시킨다.
아이가 스스로 꺼내는 화제에 귀를 기울이고
먼저 묻는 궁금증 뒤에는 조용히 답을 채워 넣는 것.
대화는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응답하는 것임을 기억하자.
7. 단호하게 — 원칙을 지키는 표정과 말투
규칙을 이야기할 때는 눈빛을 피하지 말자. 부드러운 말투로 단호한 원칙을 전달하는 것은 아이에게 사랑 안에 경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 흔들리지 않는 눈빛은 부모의 중심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 보여준다.
8. 쓰다듬기 — 스킨십의 의미
사춘기라고 해서 몸이 멀어져야 하는 건 아니다.
아이는 여전히 스킨십을 기다린다. 머리를 살짝 쓰다듬는 손길, 어깨를 토닥이는 부드러움,
종아리를 주물러 주는 소소한 시간. 언어보다 빠르게 닿는 안심의 메시지가 피부에 저장된다.
9. 쿨하게 — 변화한 모습에 당황하지 않기
문득 서운해질 때가 있다. 어릴 적 환하게 웃던 아이가 낯설 만큼 무표정한 날들. 그러나 그 모습에 상처받지 말자. 삐지지 말자. 뒤끝을 남기지 말자. 아이는 이미 이유 없이 변하기 시작한 자신에게 더 당황하고 있다.
엄마의 서운함은 아이가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곁에 있어주기만 해도 된다.
10. 결정은 결국 네가 — 선택의 무게를 가르치기
선택지는 부모가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최종 결정은 아이가 해야 한다. 이 과정은 책임감을 가르치고
실패할 권리를 부여하며 경험이라는 가장 정직한 선생님을 만나게 한다. 부모가 그 결정을 존중하는 순간 아이는 자기 삶의 주인이 된다.
사춘기와의 대화는 기술이 아니라 온도다. 차갑게 식으면 아무리 많은 대화를 해도 서로 닿지 않는다.
따뜻하게 유지하면 짧은 한 마디로도 마음의 문이 열린다.
사춘기는 아이가 자신을 다시 발견하는 시기이며
부모가 아이를 다시 이해하는 시기다. 그 여정에서 필요한 건 완벽한 답이 아니라 서툼을 인정하는 용기다.
가끔 아이는 부모를 밀어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건 ‘밀어내기’가 아니라 ‘혼자 서보고 싶은 연습’이다. 등 뒤에서 조용히 지켜보는 일도 사랑이라는 걸 기억하자.
사춘기는 영원하지 않다. 그 시간은 지나고 아이는 한 뼘 더 성장해 돌아온다. 그때 부모가 건넨 말의 결,
손길의 온기, 눈빛의 깊이만이 아이의 마음에 남는다.
오늘도 나는 아이를 가르치면서 같이 자라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