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위에 내려앉은 슈가파우더

깨끗이 씻어도 사라지지 않는 것들

by Remi

요즘 우리 집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하나 있다.
나는 그것을 ‘슈가파우더’라고 부른다.
머리를 털 때마다 어깨 위에 살짝 내려앉는
하얀 가루들. 누군가는 그것을 비듬이라 부르지만
나는 괜히 그 단어가 아이 마음을 더 예민하게 건드릴까 봐 조금 다르게 부르기 시작했다.
슈가파우더.



비듬은 사춘기의 머리 위에
조용히 내려앉은 작은 신호 같은 것이다.


첫째는 유난히 씻는 것에 예민한 아이다.
샤워를 할 때도 비누 거품을 남겨 두지 않으려
몇 번이고 다시 헹군다. 그래서 처음 그 하얀 가루들을 봤을 때 아이의 얼굴에 스친 표정을 나는 잊지 못한다.



조금 놀라고,
조금 속상해하고,
조금 부끄러워하는 얼굴.



그날 이후로 아이의 밤 루틴이 하나 더 생겼다.
밤에 머리를 감고 다음 날 아침에도 다시 머리를 감는다.
깨끗이 씻으면 없어질 거라 믿는 듯이.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몰래 휴대폰을 열었다.
‘비듬 샴푸’
‘사춘기 비듬’
‘청소년 두피 관리’
검색창에 수없이 많은 단어들을 적어 넣었다.
온갖 샴푸와 두피 관리 방법들이 화면 위에 쏟아졌지만
결국 내가 읽게 되는 문장은 대체로 비슷했다.


사춘기 호르몬 변화로
일시적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 문장을 읽고 나서야 조금 마음이 느슨해졌다.
아, 이것도 지나가는 과정이구나.


키가 자라듯, 몸이 변하듯, 두피도
조금은 낯설게 변해 가는 중이구나.


아이들은 자신의 몸이 변하는 것을
처음으로 선명하게 느끼는 시기를 지나고 있다.
어제까지는 아무렇지 않던 것들이 갑자기 신경 쓰이고
거울 앞에 서 있는 시간이 조금씩 길어지는 시기.
그래서 그 하얀 가루들이 아이에게는
생각보다 큰 사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보며 조금 다른 생각을 한다.
아, 우리 아이가 이제 정말 사춘기의 문 앞에 서 있구나.
머리 위에 내려앉은 작은 슈가파우더들이
아이의 성장에 조용히 흩뿌려진
사춘기의 첫 흔적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아이 옆에서 말한다.



“괜찮아.”
“엄마도 어릴 때 슈가파우더가 많았어.”
그리고 속으로는 조금 다른 말을 덧붙인다.
이것도 지나가겠지.


아이의 몸이 조금 더 단단해지고 조금 더 어른스러워지는 동안 엄마인 나는 그 옆에서
샴푸를 바꿔 보고 두피를 살펴보고 괜찮다고

말해 주는 사람으로 잠시 서 있으면 될 것이다.




사춘기는 어쩌면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어른이 되기 전 몸이 먼저 보내는 조용한 신호들.
그리고 그 옆에서 괜찮다고 말해 주는 엄마의 작은 동참.



오늘도 우리 집에는
조금의 슈가파우더가
조용히 내려앉았다.



화, 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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