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밀당 중입니다

사춘기 초입, 가장 가까워서 더 부딪히는 사이

by Remi

요즘 들어 딸과 잔잔하게 부딪히는

날이 잦아졌다. 크게 다투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무 일 없는 것도 아닌
아주 사소한 말 한마디에서 시작되는 작은

긴장들이 하루의 어딘가에 조용히 자리 잡는다.



조금 더 어렸을 때의 아이는 감정이 먼저였고 말은 뒤따라왔다. 속상하면 울었고 억울하면 울었고,
내가 단호하게 한마디만 해도 금세 눈물이 먼저

고이던 아이였다.
그런데 요즘 우리 딸은 달라졌다.


울음 대신 말이 먼저 나온다.
그리고 그 말은 생각보다 단단하다.
자기 마음을 또박또박 설명하고
엄마의 말이 옳지 않다고 느끼면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어떤 날은 내가 미처 정리하지 못한

감정까지 짚어내며 조용하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자신의 입장을 펼친다.


“엄마, 그건 엄마가 잘못한 거야.”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 했을 말인데
요즘은 그런 말을 듣는 일이 낯설지 않다.
그리고 그 말 뒤에는 어김없이 따라오는

요구가 있다.
"엄마가 사과해."


처음에는 웃음이 났다.
언제부터 이렇게 따지고 드는 아이가 되었나 싶어서.
하지만 몇 번을 반복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마음에 힘이 들어간다.


엄마인 내가 왜 사과를 해야 하지,
이 정도는 그냥 넘어가도 되는 거 아닌가,
괜히 속으로 한 발 물러서지 않으려 버티게 된다.
그래서 요즘 우리는 가끔 말로 기싸움을 한다.


목소리를 높이는 싸움은 아니지만
묘하게 물러서지 않는 순간들이 이어진다.
열두 살이 된 딸과 이렇게 말로 겨루고 있는

내 모습이 문득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싸움은 오래가지 않는다.


딸의 말을 끝까지 듣고 있으면
어느 순간 내가 먼저 웃게 된다.
'아, 맞네. 내가 좀 심했네.'


인정하기 싫어서 버티다가도 아이의 말이 더 또렷할 때가 있고 아이의 마음이 더 솔직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괜히 어른답게 굴려고 애쓰던 태도를 내려놓고 조용히 용서 모드로 들어간다.


그리고 먼저 손을 내민다.
"미안."
그 한마디가 끝나기가 무섭게
조금 전까지 단단히 굳어 있던 아이의 표정이
순식간에 풀린다.
그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내 품 안으로 쏙 들어온다.


조금 전까지 그렇게 따지고 들던 아이가
아무 일도 없다는 얼굴로 웃고 있다.
참 묘한 관계다.


분명 부딪혔는데,
분명 마음이 상했는데,
분명 서로 서운했는데!
금세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다시 웃고 있는 우리 모녀 사이.


그래서 나는 가끔 생각한다.
아, 지금 우리가 딸과 엄마로서
가장 미묘한 시기를 지나고 있구나 하고.

딸은 엄마의 감정을 먹고 자란다고.


그 말을 생각할 때마다
괜히 마음이 조심스러워진다.


아들보다 딸에게는 내 기분이 더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고 내 표정 하나에도
아이의 마음이 그대로 흔들리는 것 같아서.
그래서 더 단단해져야 하는데
가끔은 나도 어른답지 못하게
같이 서운해하고,
같이 토라지고,
같이 기싸움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래도 다행인 건
우리 사이에는 아직 웃음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조금 부딪히고,
조금 서운해하고,
조금 따지고,
그래도 결국 다시 안아줄 수 있는 거리.


아마 지금이 딸과 가장 많이 밀고 당기게 되는 시기인지도 모른다. 멀어지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붙어 있는 것도 아니고, 서로를 더 알아가느라 조금씩 힘을 주고 당기고 있는 시간.


그래서 나는 요즘
딸과 밀당 중이다.


가끔은 내가 지고
가끔은 아이가 지고
하지만 결국은
둘 다 웃게 되는 그런 밀당.


그리고 아마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렇게 사소하게 부딪히던 날들이
괜히 그리워질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화, 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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