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앞에 서는 시간이 늘었다
새 학기 개학을 하고 난 뒤부터였다.
아들의 시선이 부쩍 거울을 향해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다. 예전에는 씻고 나오면 머리만 대충
말리고 방으로 들어가던 아이였는데, 요즘은
욕실에서 나오면 자연스럽게 거울 앞에 한 번
더 서서 정면을 보고 옆으로 돌아보고 팔을
들어 올렸다 내렸다 하며 어딘가 달라진 것이 없는지 한참을 살핀다. 처음에는 그 모습이 그저 우스워
웃음이 났다. 아직 초등학교 6학년인데 벌써부터
저런 표정을 짓나 싶어서였다.
그런데 어느 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나를 부르더니 뜻밖의 말을 꺼냈다.
"엄마, 내 다리는 비율 괜찮은 것 같은데 상체가 너무 마른 것 같지 않아?"
순간 웃음이 터질 뻔했지만 애써 표정을 가다듬었다. 열두 살짜리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 줄은 정말 생각도 못 했다. 나는 대수롭지 않은 척 아직 크는 중이라 괜찮다고 넘기려 했지만 아들의 표정은 전혀 가볍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아들의 관심사는 분명하게 달라졌다.
저녁마다 유튜브 검색이 이어졌다.
팔뚝 굵어지는 법,
복근 만드는 운동,
집에서 할 수 있는 상체 운동,
철봉 운동 효과 같은 영상들이 줄줄이 뜨기 시작했다. 검색 기록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나면서도 이 아이가 어느새 자기 몸을 의식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낯설게 느껴졌다.
며칠 뒤, 조금 망설이는 얼굴로 말을 꺼냈다.
"엄마… 철봉 하나 사주면 안 돼?"
그 말을 듣는 순간 괜히 마음속에서 어떤 계절이
시작된 것 같았다. 아, 이 아이도 이제 사춘기의
문턱에 들어섰구나 싶었다.
사춘기 남자아이들은 어느 순간부터 몸에
대한 감각이 예민해진다고 한다. 키가 조금
크고 어깨가 조금 넓어지고 팔에 힘이 붙기 시작하면 그다음부터는 거울 앞에 서 있는 시간이 길어진다.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보일지 조금은 멋있어 보이는지 조금은 강해 보이는지 혼자 확인하기 시작하는 시기다.
결국 우리 집에도 철봉이 하나 들어왔다.
사실 처음에는 며칠 하다가 말겠지 싶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저녁이 되면 아들은 자연스럽게 운동을 시작한다. 푸시업을 하고
아령을 들고 철봉에 매달리고 그것을 한 번으로
끝내지 않는다.
"4세트 해야 돼."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자기 전이면 꼭 한다.
힘들다고 하면서도 끝까지 채우고 나서야 씻으러 들어간다.
처음에는 웃으면서 지켜봤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도 모르게 착각하기 시작했다. 우리 집에 태릉선수촌에서 파견 나온 애가 한 명 있는 줄 알았다. 운동하는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였다.
땀이 조금만 나도 거울 앞에 서서 팔에 힘을 주고
배에 힘을 주고 옆으로 돌아보고 다시 정면을 본다.
그리고 꼭 나를 부른다.
"엄마, 나 푸시업 하는 거 영상 한 번만 찍어줘.
자세 한번 보게."
"엄마, 조금 달라진 것 같지 않아?"
솔직히 말하면 아직은 크게 달라진 건 잘 모르겠다. 그런데 모른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 시기의 남자아이에게 그 한마디는 생각보다 훨씬 중요한 확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진지한 표정으로 말해 준다.
"어, 좋아진 것 같은데?"
그러면 그날 운동은 성공이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웃기면서도 신기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레고를 만들고 게임 이야기를 하고
괜히 내 옆에 와서 기대앉던 아이였는데 이제는
자기 몸을 보고 비율을 따지고 근육을 걱정한다.
사춘기라는 건 꼭 반항으로만 오는 게 아닌 것 같다. 어떤 아이에게는 말투로 먼저 오고 어떤 아이에게는 표정으로 먼저 오고 어떤 아이에게는 몸으로 먼저 온다. 우리 아들은 몸으로 먼저 시작된 사춘기다. 아직은 어설프고 아직은 귀엽고 아직은 어린데 그래도 분명 자기 몸을 만들고 자기 기준을 만들고 자기 세계를 만들어 가는 중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우리 집 태릉선수를 조용히
응원하고 있다. 사춘기라는 계절을 지나 자기만의 모습으로 단단해지고 있는 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