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시간을 따라가지 못한 엄마의 하루

다투고 나서야 보이는 것들

by Remi

어제저녁, 딸과 또 다투었다.
돌이켜 보면 다툴 이유라고 할 것도 없는

아주 사소한 말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통통한 볼과 뱃살이 귀여워서 괜히 한 번 더 만지고 싶고 괜히 한 번 더 놀리고 싶어서 던진 장난스러운 한마디. 예전 같았으면 웃으면서 넘겼을 말인데,
요즘의 딸은 그 말을 웃음으로 받지 않는다.


표정이 먼저 굳고
대답이 짧아지고
금세 짜증이 묻어나고
그리고 어느 순간 감정이 폭발한다.


“엄마, 하지 마.”
“그만하라고 했잖아.”


말투는 단단해졌고
눈빛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처음에는 나도 모르게 맞받아친다.
그게 그렇게 화낼 일이냐고
장난이었을 뿐이라고
왜 이렇게 예민해졌냐고
그러다 결국 목소리가 높아지고,


서로의 말이 서로를 찌르고
감정이 감정을 밀어 올리듯 커진다.


그리고 어젯밤 딸은 울었다.
조용히 눈물만 흘리는 울음이 아니라
참고 참다가 터진 것처럼 숨이 막히도록 오열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당황했고 미안했고 그런데도 이상하게나 역시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사과를 했다가
다시 욱했다가
또 후회하고
또 자책하고.


그렇게 감정이 오르내리는 내 모습을 보면서
문득 스스로가 참 한심하게 느껴졌다.


아이를 이해해 줘야 하는 사람은 나인데
왜 나는 늘 같이 싸우고 있는 걸까.





딸이 잠든 후 나는 마음이 가라앉지 않아서
괜히 책을 펼쳤다. 그리고 우연히 아이의 나이에

따라 달라지는 마음을 설명해 놓은 페이지에서
손이 멈췄다.



아이의 시간 속에는 빛나는 순간과 흔들리는

순간이 함께 공존한다는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별것 아닌 일에도 웃음이 터졌다가
또 별것 아닌 일에 상처를 입는 나이.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이 너무 크고 낯설어서
스스로도 자신이 달라지고 있는 건 아닐까 의심하게 되는 시기.



그 문장을 읽는 순간
괜히 마음이 멈춰 섰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아이가
바로 그 시간을 지나고 있는 중이라는 걸
비로소 인정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페이지를 넘기다가 3살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서툴지만 자신감은 넘쳤고 세상의

중심이 자기 자신인 것처럼 의기양양하던 시기.

엄마 도움 없이 해보겠다고 고집을 부리면서도

결국 엄마를 찾던 나이.

그 문장을 읽는데 그때의 딸 얼굴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작은 손으로 뭐든 하겠다고 나서던 모습,
넘어지면 울면서도 다시 해보겠다고 고집부리던 모습,
엄마가 도와주면 더 화를 내던 그 표정까지.



4살이 되자 감정이 훨씬 깊어졌었다.
싫다, 안 한다, 왜냐고 묻고,
울고, 화내고, 또 금세 웃고,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하는 마음 때문에 더 크게 흔들리던 시기. 그때도 나는 왜 이렇게 예민하냐고 말했었다. 지금처럼.



5살이 되자 아이는 또 달라졌다.
“내가 할 거야.”
“혼자 할 수 있어.”
엄마의 손을 놓고 싶어 하던 나이.
도와주면 싫어하고 혼자 하다 울고
그래도 다시 혼자 해보겠다고 고집을 부리던 시기.
돌이켜 보면 그때마다 아이는 자라고 있었고
그때마다 나는 그걸 성장이라고 부르지 못하고
낯설다고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 다시 또 한 번의 변화 앞에 서 있다.
사춘기. 요즘 딸을 보면 감정의 높낮이가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뀐다.


웃다가도 금세 기분이 가라앉고
괜찮다가도 갑자기 예민해지고
별일 아닌 말에 상처를 받고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다시 다가온다.


책 속에 적혀 있던 문장이 떠올랐다.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너무 커서
자신이 다중인격이 된 것 같다는 의문이 들

정도로 혼란스러운 시기라고.


그 문장을 읽는데
괜히 눈물이 났다.


울던 딸의 얼굴이 떠올랐고
화를 냈던 내 목소리가 떠올랐고
그리고 그 사이에 있었던
세 살, 네 살, 다섯 살의 시간이 한꺼번에 겹쳐졌다.



아이들은 어느 날 갑자기 변하는 게 아니라
계속 그렇게 자라고 있었던 거였다.
나는 그걸 또 다투고 나서야 겨우 알아챘고
괜히 더 미안하다.



조금만 더 기다려 줄 걸
조금만 덜 욱할 걸
조금만 더 이해해 줄 걸.



아이를 키운다는 건 아이를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매번 아이의 시간 속도를 다시 배우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
내 딸은 또 한 번
자라고 있는 중이다.




화, 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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