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이 서운했던 날
요즘 아들과 함께 밖에 나가면,
예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묘한 어색함이 공기처럼
따라다닌다. 분명 같은 길을 걷고 있는데도 예전처럼
나란히 붙어 있다는 느낌보다는 서로 아주 조금 떨어져
걷고 있는 것 같은, 설명하기 어려운 간격이 생겼다.
아이는 여전히 내 옆에 있는데 마음의 거리는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미세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달라져 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집에는 오랫동안 이어져 온 작은
의식 같은 게 하나 있었다. 학교에 가기 전,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나가기 직전이면 아들은 늘 내 얼굴을
두 손으로 붙잡고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엄마, 뽀뽀.”
그 장면이 하루 이틀 반복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그 짧은 순간이 우리 집 하루의 시작처럼 느껴졌다.
아침마다 과장된 표정으로 일부러 소리를 크게 내며
볼에 뽀뽀를 하고 나가는 모습이 어쩌면 아이보다 내가
더 좋아하던 장면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그 습관이 꽤 오래 갈 거라고 믿고 있었다.
몸이 나보다 커져도, 목소리가 굵어져도,
그래도 우리 아들은 아침에 뽀뽀를 하는 애라고
혼자 단정 지어 두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그 의식이 아무 말 없이 사라졌다.
처음에는 바쁜가 보다 생각했다.
가방 챙기느라 정신이 없는 날도 있고
늦어서 뛰어나가는 날도 있으니까
오늘만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아이는 그냥 신발만 신고 나갔다.
문을 열고 나가면서
“다녀올게.”
한마디만 남겼다.
괜히 내가 더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어느 날,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면서 물었다.
“오늘은 뽀뽀 안 해?”
아들은 잠깐 나를 보더니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능청스럽게 말했다.
“나 이제 뽀뽀할 나이 지났어.”
그 말이 장난처럼 들리면서도
이상하게 마음 한쪽이 툭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웃어야 할지,
서운해해야 할지,
괜히 민망해해야 할지,
순간 표정이 애매하게 굳었다.
나는 그냥 농담처럼 물은 건데
아이는 전혀 농담처럼 대답하지 않았다.
그 말이 유난히 현실처럼 들렸다.
아,
이제 정말 시작이구나.
사춘기라는 시간이
생각보다 이렇게 조용히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말 한마디로
슬쩍 들어오는 거구나.
요즘 아들을 보면
달라진 모습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거울 앞에 서 있는 시간이 부쩍 늘었고
괜히 머리를 만지거나 옷을 고쳐 입는 일이 많아졌고
운동을 한다며 갑자기 팔굽혀펴기를 하고
몸을 키워야 한다고 말하는 날도 있다.
말투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엄마, 엄마, 엄마”
하고 하루에도 수십 번을 불렀던 애가
요즘은
“아… 됐어.”
“알겠어.”
“그냥.”
짧은 말로 끝내는 날이 많아졌다.
그렇다고 완전히 멀어진 것도 아니다.
밥 먹을 때는 여전히 내 옆에 앉고
웃긴 이야기가 나오면 제일 크게 웃고
심심하면 아무 말 없이 내 옆에 와서
소파에 기대 앉는다.
그래서 더 헷갈린다.
다 큰 것 같다가도 아직 애 같고, 멀어진 것 같다가도
완전히 간 건 아니고, 엄마 필요 없는 것 같다가도
집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나를 찾는다.
밖에 같이 나가도 그렇다.
예전에는 내 옆에 딱 붙어서 걷던 아이가
요즘은 반 걸음쯤 앞에서 걷는다.
손을 잡자니 어색하고 안 잡자니 괜히 서운하고,
말을 걸면 대답은 하지만 예전처럼 길게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가끔
내가 더 눈치를 본다.
괜히 귀찮게 할까 봐,
괜히 싫어할까 봐,
괜히 애 취급한다고 할까 봐.
생각해 보면 웃긴 일이다.
내가 낳은 아들인데 내가 먼저 거리를 재고 있다.
그래서 요즘은 아침에 일부러 뽀뽀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아들도 안 하고 나도 안 하고, 그냥 아무 일 없다는 듯
하루가 시작된다. 그런데 현관문이 닫히고 나면
괜히 생각난다.
예전에는 여기서 내 얼굴을 붙잡고 웃던 애였는데.
그래서 요즘 나는 아들이 사춘기를 겪고 있다기보다
내가 더 사춘기 같다.
괜히 서운하고,
괜히 혼자 생각이 많아지고,
그러다가도 아이가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마음이 풀린다.
아마 지금이 딱 그 사이쯤인 것 같다.
엄마 얼굴을 잡고 뽀뽀하던 나이와
“나 이제 뽀뽀할 나이 지났어.”
라고 말하는 나이 사이.
그래서 나는 요즘 아들과 같이 있으면
조금 웃기고 조금 서운하고,
그래도 여전히 귀엽다.
뽀뽀는 안 해도 아직은 같이 걸어주는 나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