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우리 집 분위기 살벌했다
어젯밤, 우리 집 분위기가 잠깐 살벌했다.
시작은 정말 사소한 일이었다.
휴대폰 충전기 하나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매일 스마트학습기로 공부하는데
속도가 빠른 충전기를 누가 먼저 쓰겠다니
왜 말도 없이 가져갔느니,
자기 걸 왜 마음대로 꽂아 놨느니,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형제 싸움 같은
말들이었는데 어제는 이상하게도 쉽게 끝나지 않았다.
14개월 차이나는 연년생 남매가 동시에 사춘기
초입에 들어서자 집 안의 공기가 예전과는 조금 달라졌다.
어릴 때 우리 집 남매는 주변에서 보기 드물 정도로 사이가 좋은 편이었다. 늘 붙어 다녔고, 가끔 다투더라도 금방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돌아왔다.
그래서 나는 오래도록 우리 집은 조금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사춘기가 와도 이 정도까지는 아닐 거라고.
그런데 요즘 들어 그 생각이 조금씩 조용히
틀어지고 있다. 예전에는 자연스럽게 양보하던
일에 이제는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말투는 짧아졌고
표정은 굳어 있고
사소한 일에도 감정의 결이 거칠어진다.
어젯밤도 그랬다.
한 살 많은 오빠가 먼저 말을 꺼냈다.
소리를 지르지는 않았지만
조용하게, 그리고 단단하게 동생을 몰아붙였다.
예전처럼 웃으면서 넘기는 말투가 아니라
자기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담긴 목소리였다.
동생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지고 싶지 않은 얼굴로
점점 목소리를 높였고
말끝이 날카로워졌다.
순간 집 안 분위기가 팽팽해졌다.
예전 같았으면 나는 바로 끼어들었을 것이다.
둘 다 그만하라고,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따져 묻고
누가 잘못했는지 정리해 주려고 했을 것이다.
엄마니까 상황을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어제는 그 말을 꺼내지 못했다.
사춘기 초입에 들어선 아이들 사이에
내 목소리까지 올라가는 순간
무언가 더 단단하게 부딪힐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순간 화가 올라왔다.
둘 다 한 마디씩 하고 싶었고 둘 다 혼내고 싶었고
이 어색한 긴장을 빨리 끝내 버리고 싶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지켜봤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내가 보고 있는지조차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각자 자기 말만 했고
서로 한 발도 물러서지 않았고 감정은 조금씩 뜨거워졌다.
10분 정도가 흘렀다.
그 시간 동안 나는 괜히 한마디 했다가
상황이 더 거칠어질까 봐
가만히 앉아 있기만 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목소리가 서서히 낮아지기 시작했다.
말이 끊기고,
잠깐의 침묵이 생기고,
둘 사이에 묘한 간격이 생겼다.
그리고 어느 순간
둘 다 동시에 말을 멈췄다.
누가 먼저 사과한 것도 아니고
누가 먼저 포기한 것도 아니었는데
그냥 그렇게 잠깐의 휴전이 시작됐다.
나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아까 그렇게 언성이 높았던
아이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자연스럽게 다시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거 나 먼저 써도 돼?”
“응.”
끝이었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조금 멍해졌다.
그리고 동시에 이제는 내가 해야 할 방식이
달라졌다는 걸 느꼈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싸우면
내가 가운데에 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가 맞고 누가 틀렸는지 알려 주고,
상황을 정리해 주고 결론을 내려 주는 사람이
엄마라고 믿었다.
그런데 사춘기 초입에 들어선 아이들 곁에서
엄마가 해야 하는 일은 항상 앞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어제 처음으로 알았다.
아이들이 서로 부딪히고,
서로의 경계를 배우고,
자기 방식으로 관계를 조율해 가는 시간을
조용히 지켜보는 일.
모든 순간에 개입하기보다
필요한 만큼만 머물고 말해야 할 때보다
말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을 알아보는 것.
예전처럼 손을 잡아 주기보다는
한 걸음 뒤에서 같이 걷는 법을 배우는 시간.
연년생 남매가 동시에 사춘기 초입에 들어오자
집 안의 분위기는 분명 달라졌지만 그 안에서 나
역시 엄마라는 자리의 모양을 다시 배우고 있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덜 나서고,
조금 덜 판단하고,
조금 더 믿어 보는 것.
어쩌면 사춘기라는 시간은
아이들만 자라는 시기가 아니라
엄마도 같이 달라지는 시기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