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운한 건 아닌데 이상하게 마음이 내려앉았다.
요즘 아이를 보면서 솔직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보다 친구가 더 좋구나. 알고는 있었다.
언젠가는 그렇게 될 거라는 걸.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바뀔 줄은 몰랐다.
주말마다 나를 찾던 아이가
이제는 나보다 먼저
다른 사람을 선택한다.
“엄마 뭐 해?”가 아니라
“나 친구 만나.”
짧은 말인데 이상하게 마음이 한 번 내려앉는다.
괜히 아무렇지 않은 척
“그래, 잘 다녀와”라고 말하면서도
속에서는 조금 다른 마음이 올라온다.
서운한 건 아닌데,
서운한 것 같은 마음.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몰라 그냥
넘기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오래 남는다.
예전에는 내가 아이의 하루였다.
어디를 갈지,
무엇을 할지,
누구를 만날지,
그 중심에 늘 내가 있었다.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아니, 당연하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 중심에서
조금씩 밀려나고 있었다.
아이의 하루는 여전히 바쁘지만
그 안에 내가 차지하는 자리는
조금 작아졌다.
그걸 처음으로 또렷하게 느낀 날이
바로 요즘이다. 같이 나가자고 하면
“다음에”라는 말이 먼저 나오고,
괜히 시간을 맞춰보려 하면 이미 약속이 잡혀 있고
내가 없는 하루가 아이에게는 아무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
그게 생각보다 크게 다가온다.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나는 아직 그대로인데 아이만 먼저 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
조금 느리게 따라가고 있는 사람처럼
혼자 뒤에 남겨진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사춘기는 아이를 부모에게서 떼어내는
시간이 아니라 아이를 세상으로 보내는 시간이다.
부모가 전부였던 아이가 이제는 자기만의 기준을 만들고 자기만의 관계를 선택하고 자기만의 세계를 확장하는 과정.
그 중심에 친구가 들어오는 건
너무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머리로는 이해가 된다.
그런데 마음은 항상 조금 늦게 따라온다.
지금 아이에게 중요한 건 엄마가 아니라
자기 세계다. 그리고 나는 그 세계 바깥에서
아이를 바라보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그게 조금 낯설고
조금 서운하고
조금 쓸쓸하다.
하지만 동시에
조금 안심이 되기도 한다.
아이가 제대로 자라고 있다는 뜻이니까.
그래서 요즘은 억지로 붙잡지 않으려고 한다.
예전처럼 같이 있어야 안심되는 관계가 아니라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자리를
그대로 남겨두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는 걸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다.
엄마보다 친구가 먼저가 되는 순간.
그건 엄마가 필요 없어졌다는 신호가 아니라
아이의 세계가 드디어 엄마 바깥으로 확장되기 시작했다는 조용한 신호라는 것.
그래서 오늘도 나는 그 자리를 비워 두기로 했다.
언젠가 아이가 아무렇지 않게 다시 돌아와
내 옆에 앉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