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하는 음식이 한 둘 쯤은 있기 마련이다. 소면이 그렇다. 엄마가 소면을 꺼내면 삶기도 전에 안 먹는다는 말부터 했다. 그때는 밀가루 냄새만 그득한 국수를 왜 그리 자주 밥상에 올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대신 멸치 육수에 양념장을 넣어 국수 대신 밥을 말아 먹었다. 그게 국수보다 나았다. 수북한 국수사리를 보면 마음까지 배부르다는 아버지, 후루룩 소리가 재미있다는 동생. 내게는 밀 냄새 나는 먹기 싫은 밥상일 뿐이었다.
소면은 싫어도 칼국수는 좋아했다. 밀가루에 콩가루를 섞어 찰지게 반죽한 후 나무 밀대로 밀고 펴고를 반복하는데 그 광경이 재미있다. 그러고 나면 종잇장처럼 얇고 지구본처럼 둥근 보자기 하나가 만들어진다. 그때부터 엄마의 두툼한 손이 빛을 발한다. 착착 접힌 보자기를 한 치 오차도 없이 촘촘 써는 엄마의 날렵한 손. 부드럽고 실 날 같은 국수가 모락모락 올라오는 수증기를 헤집고 흩뿌리듯 들어가면 먹지 않고는 못 배긴다. 그 국수 안에 엄마의 정성도 함께 끓기 때문이다.
오돌오돌한 국수 가닥, 되직한 국물 맛이 일품인 손칼국수. 정성 어린 그 국수를 마음이 아파 한동안 먹지 않았던 때가 있다.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무렵이다. 그때도 외갓집이 있는 포항 월포리 바닷가에서 보냈는데, 마침 어린 시절 친하게 지냈던 외사촌 정혜가 온다는 소식에 더 손꼽아 기다렸던 방학이었다.
정혜는 걸어서 십여 분 거리인 자기 친할머니 집을 놓아두고 방학 때마다 내 외가에 짐을 풀었다. 방학마다 방 한 칸을 우리의 집이라고 정한 탓도 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꽤 복잡한 사연이 있었다. 정혜할머니는 정혜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열 살도 안 된 정혜아버지를 혼자 버려두고 도망을 갔다. 재가를 한 것이다. 그런 정혜아버지를 외할머니가 데려와 키웠다고 한다. 이십여 년 후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정혜할머니는 장성한 정혜아버지에게 용서를 빌었지만 여전히 데면데면하다고 한다.
정혜와 나는 외갓집에만 가면 종일 바닷가에서 놀았다. 방파제로 막아 놓은 항구에 햇살이 고이면 모든 게 아늑했다. 푸른 바다에 솟구치는 하얀 물결, 항해가 끝난 후 거친 바다를 잠재우듯 쉬고 있는 들쑥날쑥한 고깃배, 갈매기와 일몰이 어우러져 하나가 된 어스름한 바다는 그 어떤 놀이보다 풍요로웠다.
지금 생각하면 방파제 끝에서 언뜻 하얀 물결처럼 걸어오던, 먼발치에서 우리가 노는 것을 지켜보며 늙은 눈을 어루만지던 한 사람이 있었다. 정혜는 그 눈빛을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외할머니가 정혜할머니를 불러 밥이라도 같이 먹으려 들면 정혜도 정혜아버지도 어느 사이 사라지곤 했다.
아침부터 내리던 눈이 새하얀 구름처럼 뒤덮였던 겨울 저녁, 하얗게 쌓인 마당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외할머니가 우리를 불러 애원하듯 부탁했다. ‘정혜 할머니가 손녀 좋아한다고 칼국수를 끓인다하니 애타는 노인네 정성 한 번이라도 헤아려 주라’는. 그날 정혜는 걷는 내내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하얀 눈을 쓰다듬듯 마음을 토닥였으리라.
정혜도 손칼국수를 좋아했다. 외할머니가 대청마루에 앉아 밀가루를 살살 뿌려가며 국수를 썰면 둘이서 남은 국수꼬리를 화롯불에 노릇노릇 구워 먹은 적도 있었다. 그러다 뜨끈뜨끈한 칼국수가 솥 안에서 선물처럼 나오면 김을 호호 불면서도 한 그릇씩 뚝딱 비우곤 했다. 그런 정혜였으니 한 그릇 따뜻한 밥상을 차려주고 싶은 노인의 마음을 외면하지 못했을 것이다.
정혜할머니 집은 낡고 허름했다. 열린 대문으로 털실처럼 따사롭게 내려앉은 환한 마루가 있는 외가와는 사뭇 달랐다. 폐허처럼 쾨쾨한 냄새가 코끝을 찌르는 마루, 어디론가 줄행랑을 쳐버린 것 같은 고단한 부엌. 그 속에서 허리가 구부정한 칠순 노인이 하나뿐인 손녀를 위해 가마솥에 불을 지핀다.
한때는 이 집도 끼니때가 되면 밥상머리에 둘러앉아 정겹게 이야기하던 피붙이들이 있었을 텐데. 집도 온기가 없으면 그 순간부터 늙기 시작하는 모양이다.
상이 차려졌다. 아뿔싸. 해묵은 밀가루 탓인지 칼국수 안에 허연 구더기 같은 것들이 둥둥 떠 있다. 숟가락을 들다 만 정혜는 기겁한 채 마당으로 나갔고 함께 온 이모의 딸도 정혜할머니 얼굴을 살피다 밀어내듯 숟가락을 놓았다. 오지 않는 피붙이를 기다리다 숨바꼭질 끝에 찾은 밥상. 그 밥상에 겨울 파도가 머문 듯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은 노인의 시린 얼굴. 손끝이 뜨거워졌다.
몇 년 후 들른 정혜할머니 집 마당에는 떨어진 감나무 잎처럼 저녁이 말라 있었다. 거미줄 엉킨 아슬아슬한 부엌, 먼지 수북한 가마솥, 마당 한 켠의 빈 장독대. 잎들만이 위로하듯 쓰러진 저녁을 한 장 한 장 덮어주고 있었다.
입이 짧고 털털하지 못했던 내가 어떻게 그 국수를 남김없이 먹을 수 있었는지. 나는 그날 구더기 떠 있는 칼국수를 먹은 게 아니라 손녀를 위해 한 끼라도 차려주고 싶었던 할머니 마음을 먹었던 것 같다. 친손녀는 아니라도 애틋한 정을 헤아리고 싶었던 안타까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후 손칼국수만 보면 정미할머니가 생각나 먹을 수 없었다. 기다림으로 버텼던 부엌이 잠시나마 빛났던 시간, 세월의 이력을 풀 듯 국수가닥을 하나씩 풀어냈을 가마솥, 하나뿐인 손녀를 바라보는 노인의 회한 많은 눈매가 잊히지 않았다.
채반 위에 촘촘히 썰어 놓은 가지런한 국수 가닥이 그립다. 손칼국수가 따뜻했던 이유는 누군가를 위한 마음이 손끝을 타고 흘러들었기 때문이다. 저녁 냄비에 멸치로 우려낸 국물이 국수를 기다린다. 고명도 변변찮은 수더분한 국수지만 찬바람에 식은 몸을 채우기엔 그것만한 것이 없다.
지나온 세월에 흠결이 있어도, 갈라진 상처가 있어도 손끝을 울리는 따뜻한 한 숟가락에 언 마음이 녹을 수 있으면 좋겠다. 국수 그릇이 아직도 뜨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