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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굿모닝

by 김다경 Nov 06. 2024

  아무런 전조 없이 찾아왔다. 그곳에 살던 색깔과 무늬는 어디로 갔을까. 금방이라도 웃음소리가 새어 나올 것 같은 유리문 안을 훑는다. 모든 게 스쳐 지나는 통로인지 텅 빈 풍경이 모래알처럼 바스러져 흘러내린다.

     

  아파트 근처 상가에 3월 시작과 함께 찬 바람이 불어 닥쳤다. 자전거를 세워 둔 입구부터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로 가득하다. 혹독한 바람에 꽃잎들도 몸을 움츠린 채 이리저리 흩어져 있다.   

  

  행복한 카페와 굿모닝 세탁소. 십여 년을 살며 들락날락했던 두 가게가 일주일 간격으로 문을 닫았다. 카페는 열흘 전 모습 그대로 멈추었고, 카페와 마주 보는 세탁소는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둘 다 시간이 머문 흔적으로 남았다.  

    

  처음엔 믿을 수 없었다. 카페 주인이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구급차에 실려 갔다는 소식을 들으며 그럴 리 없다고 여겼다. 이틀 전 오후에 카페에 들러 카페라떼를 주문하며 이야기도 나누었는데 그때도 죽음을 생각했다는 것일까.   

   

  소문으론 주식 투자로 대출을 많이 받았고 그렇게 투자한 주식이 폭락하며 감당할 수 없는 빚이 생겼다고 한다. 얼마나 괴로웠으면 스스로를 잃어버릴 마음을 먹었는지. 세탁소 부부 상황을 이야기하며 서로 눈물을 글썽였는데 삽시간에 먹구름이 몰려와 두 가게를 송두리째 삼켜버렸다.


  두 가게는 친분이 두터웠다. 쉰 초반에 장사를 한 시기도 비슷해 서로의 공간이 쉼터가 되었을 것이다. 가게도 행복하길 바라는 뜻에서 행복한 카페와 굿모닝 세탁소로 지었다는데 봄이 오기도 전에 이 무슨 날벼락인지.     


  설이 지났을 무렵. 세탁소 출입문에 폐업이라고 쓰인 종이 한 장이 붙여져 있어 깜짝 놀라 들어서니 아주머니는 울고 있고 아저씨는 뒤돌아 울음을 삼키고 있었다. 폐업 아래에 적힌 내용은 십 오륙 년간 신나게 장사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는 말과 함께 이십 일 후 영업을 종료한다는 내용이다.     


  손님만 보면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는 아주머니, 어디서 터를 잡아야 할지 막막해하는 아저씨. 상가 주인이 보증금과 월세를 한꺼번에 많이 올려 재계약을 할 수 없었다며 울먹이는데 위로도 할 수 없을 만큼 화가 나고 속상했다.     


  그날 이후 주변 상가에 임대 문의가 적힌 것을 보면 부리나케 달려가기도 하고, 따뜻한 차 한 잔 대접하지 못한 아쉬움에 커피를 사 들고 종종걸음 치기도 했다. 옷을 맡기면서 더러 마음도 수선하고 다림질했기에 그들을 볼 때마다 눈시울이 붉어지는 게 내 책임이라도 되는 양 가슴이 아렸다.   

   

  폐업은 생각한 날짜보다 일주일 앞당겨져 내가 안을 들여다보았을 땐 부지런한 부부도, 세탁과 다림질할 손님들의 옷가지도, 가게를 주름잡던 색깔과 무늬도 모두 사라진 뒤였다.  터전과 생계를 잃어버리는 게 어떤 의미인지 겪어본 적 있기에 쫓기듯 나간 그들이 안쓰럽기만 했다.     


  그렇게 세탁소가 나간 뒤 카페 주인이 자살을 기도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허전하고 아픈 마음을 털어내기도 전에 더 큰 일이 상가를 덮친 것이다. 한동안 허망하게 생을 포기하려고 했던 카페 주인이 안타까워 상가 통로를 지나는 것도 힘들었다.


  행복과 불행은 얼마나 미묘하게 달라붙은 낱말인지 행복한 카페가 되지 못한 행복한 카페와 굿모닝 세탁소, 따뜻하고 정겨웠던 모든 것이 마음 아픈 공간이 되어버렸다.   

  

  살다 보면 누구든 바람도 없는 너울성 파도에 휩쓸리기도 하고, 감당할 수 없는 벽에 부딪혀 허우적거릴 때도 있다. 행복할 때는 불행이 저만치 달려오는데도 알지 못하고 불행할 때는 행복이 나한테만 오지 않는 같아 견딜 힘조차 내지 못한다.   

  

  나도 남편이 운영하는 공장이 협력 업체의 줄도산으로 폐업한 후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줄 알았다. 깡그리 무너져 더는 버틸 힘이 없다고 여겼을 때 나와 남편을 꺼내 준 것은 두 아이에 대한 책임과 서로를 향한 믿음이었다. 그것만 폐업하지 않으면 되었다.   

  

  수일 후면 세탁소 자리에 새로운 가게가 들어선다고 한다. 찬 바람 불던 상가가 언제 겨울이었냐는 듯 봄이 활짝 필 예정이다. 그 무렵이면 이리저리 흩어진 꽃잎들도 제자리를 찾아가겠지.   

  

  세탁소 유리문을 다독인다. 십수 년간, 일상에 지친 사람들의 얼룩을 신나게 빼준 것처럼 오래 힘들지 않고 마음의 얼룩을 빼낼 터전을 가졌으면 좋겠다. 카페도 기운을 찾아 반짝이는 소품들에 더는 먼지가 앉지 않게 얼른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이다.      


  아이들 웃음소리로 왁자지껄한 상가 입구에 잠시 멈추었던 행복한 굿모닝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다.




커버사진 출처:     https://blog.naver.com/yeonhuiiii/223362908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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