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 비용에 관한 고찰

by Renaissance

불혹의 나이가 되니 주변 사람들이 골프를 친다. 이제 누군가를 새로 만나면 '공 치느냐'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어릴 땐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별의별 취급을 받았는데 이제 축구가 골프로 바뀌었다. 밤새워 온갖 해외 축구까지 챙겨보던 친구들 중 아직까지 축구 얘기를 하는 사람은 없다. 이제 '공 치느냐'가 골프를 의미할 정도로 불혹에겐 유일한 구기종목인 것 같다.


원래 구기종목을 좋아하지 않았다. BQ, Ball Quotient라고 통칭하는 구기종목 지능이 딸려서이다. 재능에 관한 글에서 언급했듯이 자신이 잘 못하는 분야는 손을 안 대게 되어있다. 해봐도 도통 늘지를 않으니 흥미가 떨어질 수밖에. 그나마 가장 많이 했던 구기종목은 농구였는데, 농구도 어느 정도 레벨이 올라가면 BQ가 절실해진다. 게임을 읽지 못하니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공을 어디로 줘야 하는지 모른다. 열심히 뛰어놓고 욕먹으면 누가 하고 싶겠나. 농구는 그나마 나은 게 축구는 이미 초등학교 시절에 손을 놨다. 팀 스포츠에 재능이 없는 건가 싶지만 당구도, 탁구도, 테니스도 못 한다. 공을 가지고 하는 스포츠 중에 잘한다고 할 만한 스포츠가 단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런 내가 골프를 칠 리는 만무하다. 배우들이 골프를 좋아하니 미리 골프를 시작해 놓으라는 조언을 많이 받았지만 좋아하지 않는 걸 비싼 돈 주고 하기 싫었다. 사실 비용도 무시하지 못한다. 골프가 그렇게 비싼 스포츠가 아니었다면 시도는 해봤을 수도 있다. 이미 시작부터 골프채가 필요하고, 필드에 나가기 전까지 연습장에서 연습하는 비용도 무시무시하다. 돈이 풍족해져도 할까 말까인 운동이라 돈이 남아돌게 되면 그때 고민하련다. 운동에도 가성비를 따지는 뼛속까지 가난한 예술가라고나 할까.


운동을 좋아하고 신체 능력이 떨어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끊이지 않고 하는 운동은 웨이트 리프팅, 헬스다.(바디빌딩이나 웨이트 리프팅, 웨이트 트레이닝 등 엄연히 단어가 존재하는데 왜 헬스라고 부르는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바디 빌딩을 좋아해서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경력이 20년이 넘는데 한 번도 보디빌더 같은 몸을 가진 적이 없다. 애초에 그런 훈련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신체능력을 끌어올리는 운동 중에 가성비가 가장 좋은 것을 택한 것뿐이다. 대학시절 한 달에 30만 원으로 살아야 했는데 학교 헬스장이 한 달에 3만 원이었다. 회사에 들어가 드디어 금전적 여유가 생겼지만 아침 8시 반에 출근하여 다음날 퇴근하는 생활을 하다 보니 외부 운동시설에 갈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회사 지하에 있는 헬스장에서 점심시간에 운동을 했다. 점심을 먹는 것보다 운동을 하는 게 더 좋았다. 유일하게 점심시간 한 시간 만은 자유가 보장되었으니 점심을 포기하고 운동을 한 것이다. 대학시절도, 회사시절도 웨이트 트레이닝이 대중화된 시절이 아니었으므로 그렇게까지 운동을 하려는 나를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 내 입장에서는 신체능력이 급속한 속도로 떨어지는 게 느껴지는 상황에서 운동을 안 하는 게 더 이상했다. 하루에 18시간을 앉아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운동할 생각을 안 하는지. 내가 점심을 굶어가며 운동을 하는 것이 그렇게나 신기한 일이었는지 회사 전체가 알게 되었고, 운동이나 다이어트에 대한 질문을 모두 나에게 하곤 했다. 고작 웨이트 트레이닝 한 시간 한다고 운동 전도사 대우를 받는 게 이상했지만 성심성의껏 아는 대로 컨설팅을 해준 기억이 난다. 회사 2년 차, 전 세계에 크로스핏 열풍이 불었다. 한국에 첫 크로스핏 박스가 공교롭게 강남역에 오픈을 했다. 회사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였기에 트렌드세터 회사 선배들이 크로스핏을 다니기 시작했고, 나에게 운동 조언을 한 번씩 받았던 사람들이기에 내가 좋아할 운동이라며 같이 다니길 권했다. 일일 체험권을 끊어 크로스핏을 해보고 이거다 싶었지만, 아무리 빨리 갔다 와도 1시까지 도착하는 게 불가능했다. 팀 막내였던 나는 눈물을 머금고 헬스장에서 웨이트를 들었다. 회사를 그만두자 시간적 여유는 생겼지만 금전적 여유는 없어졌고, 나는 다시 가성비가 최고인 웨이트 리프팅에 매진했다. 그러다 여기까지 온 것이다.


불혹이 되니 웨이트 리프팅 만으로 신체능력을 끌어올리는 것이 힘겹게 느껴진다. 이젠 고중량 트레이닝을 매일 하면 신경계가 박살 나는 게 느껴진다. 오버 트레이닝을 겪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감기 기운이 떨어지지가 않는다. 맨날 목이 아프고 콧물이 나는 생활을 하면서도 나는 오버 트레이닝이 아닐 거라고, 운동 때문이 아니라고 애써 무시하며 헬스장에 갔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운동을 쉬었더니 3일 만에 회복되었다. 운동법을 바꿀 때가 온 것이다. 스트렝스 훈련이 아니라 체력 훈련으로 전환할 때이다. 마침 헬스장 1년 등록이 곧 마무리되기도 해서 웨이트 말고 무엇을 할지 고민 중이다.


사실 내가 좋아하는 운동은 투기종목으로 복싱, 태권도를 꽤 잘했고 씨름, 유도, 킥복싱, 주짓수 등 짧게 접한 투기 종목도 곧잘 했다. 그중 내가 가장 잘했던 것은 복싱이었기에 복싱을 가장 오래 했던 것 같다. 팔이 길고 다리가 짧은 편이며 순발력과 순간 스피드를 타고났다. 복싱을 제외한 투기는 다리가 긴 것이 유리하다. 게다가 난 악력이 선천적으로 약해서 유도, 주짓수, 레슬링 같은 그래플링 종목에 취약하다. 복싱을 다시 할까 고민하다가 이내 생각을 접은 것이, 복싱의 꽃은 스파링이다. 20대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지금의 몸으로 다시 복싱을 시작하기가 겁난다. 스파링에서 발릴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숨이 턱턱 막힌다. 힘 빼고 하는 스파링도 능력차가 심하면 농락당한다. 기술은 갈고닦으면 나아질 거라 흔히들 생각하지만 기술의 베이스는 신체능력이다. 스파링을 하지 않으면 될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스파링을 안 할 거면 복싱을 왜 하는가. 투기는 기본적으로 상대와 겨루는 스포츠다. 스파링을 안 하고 복싱 훈련을 한다는 건 골프를 치면서 필드에 나가지 않고 연습장에서만 치는 것과 마찬가지다.


크로스핏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엔 RUN땡땡, F45, 크로스핏이 모두 있다. 하지만 가격이 내 발목을 잡는다. 크로스핏 류 운동은 한 달에 20-25만 원 정도로 가격이 책정되어 있다. 2012년에 처음 생겼을 때에도 그 정도 가격으로 기억하니 10년간 가격에 변화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너무 비싸다고 생각했다. 복싱 체육관이 한 달에 8만 원 하던 시절이다. 주짓수 체육관이 10만 원 하던 시절이다. 지금은 다른 운동들이 물가상승으로 인해 십만 원 중후반대의 가격을 형성해서 크로스핏과 가격이 비슷해졌다. 비싸다고 생각하면 비싸지만 다른 운동을 하려고 해도 그 정도 금액은 써야 하니 그냥 지르자!라고 생각하다가도 헬스장 가격을 생각하면 쉽게 그러지 못한다. 헬스장은 기간을 길게 등록하면 월 5만 수준으로 이용이 가능하다. 무시무시한 가격차이다. PT를 받으면 다른 운동과 가격이 비슷해지지만 PT를 받을 필요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겐 너무나 유혹적인 가격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이 가격차이를 무시하고 다른 운동을 할 만큼 금전적 여유가 있느냐 하면 절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으로 가성비만 따지다 보면 내가 운동을 하는 주 목적인 '신체능력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


헬스장 등록일이 한 달 남짓 남았다. 복싱이냐 크로스핏이냐, 아니면 또 웨이트 트레이닝이냐. 고민의 끝에 어떤 결정이 기다리고 있을지.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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