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레탄폼이라는 것이 있다. 단열재로도 쓰이고 구멍이나 빈틈을 막는데 흔히 쓰인다고 한다. 고층 아파트에 사는데 모기가 자꾸 출현하길래 어디서 들어오나 루트를 찾다가 전 세입자가 뚫어놓고 막아놓지 않은 에어컨 실외기 구멍을 발견했다. 이 집에 온 지 9개월 차, 이걸 모르고 지난겨울을 보냈다고 생각하니 아찔하다. 막아야겠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검색해 보다 알게 되었다. 이 우레탄폼이라는 것을.
이 집에 오기 전 40년 된 구옥에서 4년을 살았다. 단층주택이라는 점과 낮은 가격에 꽂혀서 들어갔는데 하루하루가 스펙터클 했다. 매일 새로운 문제가 나타나고 그것을 해결하면서 살다 보니 심심할 틈이 없었다. 공구가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하여 이제는 웬만한 건 다 혼자 할 수 있다. 그런 자신감 때문에 쉽사리 도전했던 것 같다. 이놈의 우레탄폼이라는 것을.
스프레이 형식으로 되어있는 우레탄폼을 뿌리기에 앞서 외벽으로 뚫고 나가면 안 되니 종이컵을 잘라서 실외기 구멍에 넣었다. 그리고 앞쪽은 비닐봉지를 대고 우레탄폼을 뿌렸는데 뭔가 뽕 하는 소리가 났다. 그렇다. 종이컵이 빠져버린 것이다. 우레탄폼은 불어나기 때문에 반만 채우라고 해서 나는 분명 반만 채웠다. 밖으로 나가고 있는 것도 모르고 말이다. 개 같은 우레탄폼이라는 것이.
밖으로 삐져나간 우레탄폼을 닦아내려고 집에서 가장 긴 집게를 사용해 겨우겨우 닦아내었고(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아파트 고층에 산다),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우레탄폼은 닦아내기가 매우 어려운 성질이라는 것을. 베란다 바닥, 집게, 손에 묻은 우레탄폼이 깨끗하게 닦이지가 않았다. 곧바로 검색을 했고, 이 더럽게 안 닦이는 놈을 위해 전용 클리너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이름도 직관적인 폼클리너. 당장 밖에 나가 가까운 철물점에 달려가 폼 클리너를 샀다. 우레탄폼보다 폼클리너가 더 비싼 게 못내 억울하지만 지금 그런 걸 가릴 때가 아니다. 집에 와서 손, 베란다 바닥, 집게를 폼클리너로 싹싹 닦고 안심하고 있는데 뭔가 싸한 기분이 들었다. 비닐봉지 안으로 가득 불어나있는 우레탄폼을 발견하고, 설마 하는 마음으로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우레탄폼이 불어나 중력을 타고 떨어져 아랫집 난간과 세 층 아랫집 난간에 안착한 것을 발견하는 그 순간을 나는 아마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테지.
순간적으로 나에게 두 가지 옵션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 당장 폼클리너를 챙겨 아랫집에 내려가 사정을 설명한 후 닦아내기. 둘, 무시하기. 순간적으로 두 번째 옵션에 마음이 끌렸다는 것을 부끄럽게 밝힌다. 부끄럽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 말이다. 인간은 합리화와 정당화의 화신이다. 합리화와 정당화는 인간에게 있어 김치찌개의 김치요, 갈비탕의 갈비다. 베란다 난간에 우레탄폼이 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고, 그걸 깨닫는다고 해도 어디서 우레탄폼이 떨어졌는지 모를 것이다. 우레탄폼은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은 소재이므로 이게 무언가 싶을 것이다. 따지고 싶어도 무언지 알아야 따질 수 있으니 컴플레인을 안 할 가능성이 더 크다. 우레탄폼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 해도 이게 재산에 상당한 손괴를 주는 게 아니고 경화된 후라면 칼로 간단히 긁어낼 수 있는 소재이니 별 걱정 안 할 것이다. 창문에 붙은 것도 아니고 쇠로 된 베란다 난간에 붙은 거 아닌가. 이게 내가 짧은 순간에 생각했던 정당화였다. 하지만 난 곧 나의 도덕에 무릎 꿇는다. 그런 생각을 할 시간에 한시라도 빨리 내려가 사실을 설명하고 경화되기 전에 치우자.
베란다 난간이 쇠라서 그런지 흔적도 없이 닦아내는데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요즘 같은 세상에 남의 집에 다짜고짜 찾아가 초인종울 누른 후 닦아내야 할 것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훨씬 어려운 일이다. 딸꾹질이 날 것 같은 느낌을 버텨가며 쉰 목소리로 겨우겨우 입을 뗐던 것을 떠올리니 창피해 죽을 지경이다. 그래도 마음은 편하다. 무시하기로 했으면 내 안의 도덕이 날 가만두질 않았을 테니. [죄와벌]의 라스콜니코프만큼은 아니어도 정신적인 대미지가 상당했을 것이다. 참고로 나는 니체의 위버멘시, 초인 사상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죄와벌]에서 비범인 사상이 나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니체주의자는 자신이 불리할 때 위버멘시를 들먹이는 사람이다. 죄를 저질러 놓고 자신이 초인이라고 우기는 작자들. [죄와벌]의 라스콜니코프는 똑같은 짓거리를 한다. 그래서, 아래층에 내려가, 사실을 고하고, 닦아낸 것이다. 염병할 우레탄폼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