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가 아프다. 사실 위는 언제나 아팠다. 약간의 역류성 식도염을 디폴트라고 생각하고 산 지 오래되었는데 가끔씩 증상이 심해진다. 잠을 잘 못 잔다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거나, 위에 안 좋은 음식을 자주 먹는다거나. 근데 이번엔 딱히 잘못한게 없다. 항상 같은 식단을 먹었고, 술도 안 마셨고, 커피는 디카페인만 마셨고, 잠도 잘 잤다. 이렇게 건강하게 사는데도 위가 아프면 어쩌라는 건가 갑갑한 마음이다. 그러다 우연히 카페에 들렀다가 반사가 잘 되는 인테리어 재질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내가 이렇게 늙었었나. 위가 아플만 하네.
사람은 눈의 구조상 스스로의 외모를 보지 못한다. 거울이나 스마트폰을 통해서만 자신의 생김새를 볼 수 있다. 그걸 보는 짧은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의 외모에 대한 자각 없이 보내게 된다. 사회적인 동물이기에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하거나, 운동을 할 때에 누군가와 함께 할 것이다. 그럼 그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무의식적으로 이런 모습일 거라 가정을 할 거다. 그 '가정'의 자신의 모습은 몇 살일까?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아직 노화를 겪지 않은 사람들은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할 것이다. 내가 가정하고 있는 나의 모습과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에 별 차이가 없는 사람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바닷가에서 오랫동안 놀다가 화장실에 가서 용변을 보고 나오면서 세면대에 비친 내 모습이 낯설게 느껴진 적 없나? 저게 내 모습이라고? 까맣게 타버린 내 모습이 내가 '가정'하던 내 생김새와 너무 다르기 때문에 놀라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거의 매번 거울을 볼 때마다 낯설게 느껴진다. 나이가 더 들면 나아지려나 싶다가 어머니의 카톡 프로필 사진이 항상 꽃이나 다인 것을 보면 나이가 들어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나는 이 '가정'과 실제의 간극의 커지는 순간과 카톡 프로필 사진이 본인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바뀌는 순간이 일치한다고 생각한다. 현재까지 내가 연락을 하고 있는 동갑내기 중에 카톡 사진에 본인의 사진을 걸어놓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서글프게도. 마흔 한살만 되어도 이 간극이 너무 커져버리는 것이다. 여성 친구들의 프로필 사진에 본인 사진이 없어진 건 이미 오래 된 일인데, 남자들까지 사진이 싹 다 없어졌다. 너희들, 가정 속의 너희 모습은 몇 살 때 모습이니?
나는 30대 초반의 나의 모습으로 나를 가정하는 것 같다. 우연히 비친 내 모습에 놀라는 건 그 것과 비교하면 너무 늙은 모습 때문이다. 이미 마흔 하나인데 왜 10년 전 모습으로 나를 기억하는지 나도 모르겠다. 스스로를 훨씬 늙은 사람으로 생각하고 살아가야 겠다. 그래야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깃털보다 가벼운 삶의 의미를 뼈저리게 느끼면서 살아가야지. 궁금해졌다. 죽음을 앞둔 사람은, 본인의 모습을 몇 살로 가정할까. 죽기 직전 까지도 본인의 노화를 부정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