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을관계가 명확하다고 해서 그 관계를 대놓고 드러내는 것이 좋은 것일까. 명확할수록 표면적으로는 평등한 것처럼 포장하는게 더 좋다. 상사가 부하직원에게 뭐뭐 해, 라고 하지 않고 뭐뭐 해줘요, 라고 하는 이유다. 수직적 관계는 갑과 을이 명확하게 정해져있지만, 그렇다고 이거 해, 저거 해 명령조로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걸 착각하는 사람에게 흔히 하는 말 있지 않나. '부탁한 거 아닌데요?'
영화계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쌓지 않은 감독은 제작사와의 관계에서 을이다. 각본, 각색, 연출 계약을 맺고 감독인 을은 갑인 제작사에게 용역을 제공한다. 갑을관계가 명확할수록 표면적으로 평등한 것처럼 포장해야 하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걸까? 꼭 내가 더 위라는 것을 표현해야 직성이 풀리는 걸까? 그것보다 한발 더 나아가서 대놓고 무시하는 처사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게 내 인내심의 한계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사람들과 다 관계를 정리하면서 살아왔다. 갑에 있는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 망각하는 것이 있는데 계약관계가 끝나는 순간 갑을의 위치는 없어진다. 부하직원이 퇴사하면 더이상 수직관계가 아닌 수평관계가 된다. 회사 안에서야 수직이었지, 회사 밖에서는 1mm도 부하직원보다 위에 있지 않다. 갑이 선을 넘을 때마다 그렇게 헤어지기를 반복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백수. 영화계가 안 좋아져서도 있겠지만, 나는 그런식으로 관계를 끊어왔던 것이 지금 일이 없는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뭐 어쩌겠나. 이렇게 생겨먹은 것을. 돌아간다고 해서 내가 굽힐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갑질을 다 받아주다 보면 노예처럼 부리기 쉽상이다. 나는 절대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내가 관계를 끊은 제작자중에 나중에 신문 사회면에 나온 사람이 얼마나 많은 줄 아는가. 노예계약으로 소송전을 벌이는 모습을 보며 내가 계속 굽혔으면 저렇게 됐겠지 싶다. 그래서 후회가 되기도 하지만 안 되기도 하다. 복합적인 심정이다.
최근 동료라고 믿었던 사람에게 갑질을 당했다. 좋은 말로 포장했지만 내용은 다분히 협박성이었다. 사람들이 나를 대하기 껄끄러워 하는 이유 중에 하나 논리적인 토론이다. 논리적으로 대화를 했을때 내 논리가 맞는 경우에 난 그것을 굽히지 않는다. 실제 생활에서는 논리적 정합성이 완벽하더라도 너가 굽혀줘라 하는 경우는 부지기수로 많다. 회사를 다닌 사람중에 자기 잘못이 아닌데 사과한 경험이 없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을까. 바로 이런 경우가 논리적 정합성이 완벽하더라도 굽히는 경우다. 내 잘못이 아님에도, 따지고 보면 내 책임이 하나도 없음에도, 사과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이건 수직관계에서, 갑을관계에서 파생된 결과다. 내가 을이니까, 내가 부하니까, 그냥 내가 사과하자 라고 넘어가는 경우들. 갑을관계에서도 나는 논리적 정합성을 따지는데 동료 관계에선 얼마나 더 심할까. 동료는 나의 이런 면을 너무 잘 알고 있으니, 논리적으로 이기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하라는 대로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협박성 멘트를 나열했을 뿐이다. 그도 알고 나도 안다. 우리의 관계가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끝날 수 있음을. 그는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나에게 그런 말을 했다. 그래서 정신적 충격이 크다.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지.
그는 원하는 결과를 얻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결과를 얻었다. 그도 을이다. 갑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을이 을에게 말한 것이다. 넌 병이라고. 넌 을도 안 된다고. 그는 명확하게 알고있다. 그가 하는 행동의 의미를 내가 명징하게 알고 있음을. 그럼에도 그는 그렇게 했다. 그 결과를 그가 감내할 것이다. 그 결과란, 내가 완전히 이 판을 떠나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그것을, 알고도, 그렇게, 했다. 더이상 버틸 방도가 없다. 동료 네 명은 얻었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동료가 없었다면 지금까지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어찌보면 나의 영화생명을 연장해주던 사람이, 내개 생명유지장치를 장착해준 사람이 그 전원을 내린 꼴이다. 왕을 죽이고 왕이 된 킹 슬레이어는 또다른 킹 슬레이어에게 죽임을 당하는게 스토리의 기본이다. 생명을 연장해주던 사람이 그 생명을 끝내는 것 또한 다분히 영화적인 스토리다. 이게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