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에 연연하지 않고 살았다. 연연하지 않았다고 멋들어지게 포장하지 않고 표현한다면 중독에 취약한, 그냥 중독자라는 소리다. 현대인에게 허락된 중독 물질은 중독성 순으로 알코올, 니코틴, 카페인이다. 세 가지 모두를 사랑했던 나는 별달리 끊을 생각 없이 평생을 함께할 줄 알았다. 모두가 젊음이 영원할 것이라 착각한다. 젊음을 잃기 전까지.
제일 먼저 줄인 것은 알코올이다. 숙취가 심한 편인데(그래도 술을 좋아하는 게 참 웃기지만) 심하면 다음날 저녁에야 깼다. 그러다 30대 중반에는 하루 온종일 숙취가 계속됐고, 급기야 이틀 후까지 숙취가 남는 경우까지 생겼다. 술을 진탕 먹기 위해 이틀을 날릴 각오를 해야 한다면 삶을 포기한 사람이 아닌 이상 술을 줄이게 되어있다. 술을 완전히 끊는 것도 아니고 조금 마시자는 생각이니 그리 어렵지 않았다. 조금만 마셔도 취기는 느낄 수 있으니까. 지금은 한 방울도 마시지 않는 날을 최대한 늘리는 쪽으로 절주를 하고 있다.
다음은 니코틴이다. 모든 작가가 흡연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흡연을 하는 작가는 골초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글이 써지지 않을 때마다, 더 빨리 집중해서 쓰고 싶을 때마다 연초를 입에 물기 시작하면 줄담배를 태우는 것이다. 시나리오를 쓸 때마다 연초가 늘었고, 몸이 버티지 못하겠다고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연초를 줄이다가 과학기술의 힘을 빌려보기로 마음먹고 액상형 전자담배, 베이핑에 입문했다. 베이핑을 시작하고부터 연초가 점점 줄었고, 연초 비중이 낮아질 때마다 컨디션이 좋은 것을 체감하자 연초를 완전히 안 피기로 마음먹었다. 이게 꽤나 힘들어서 1년 정도 걸린 것 같다. 지금은 베이핑만 하고 있다.
커피를 줄이게 될 줄은 몰랐다. 그만큼 커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잠깐 외국에 산 적이 있는데, 그 나라는 학생들을 위한 커피자판키가 있을 정도로 커피에 관대했다. 아침으로 빵과 커피를 마시는 나라이기에 유아가 이유식을 끊고 밥을 먹듯이 청소년이 되면 우유 대신 커피를 마신다. 요즘은 우리나라도 커피에 관대해져서 청소년이 카페에 있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지만(공부를 위해 장려되기까지 하는 듯) 내가 어릴 적에는 카페인이 마치 술담배처럼 성인에게만 허용되는 느낌이었다. 외국에 살았던 경험 때문에 남보다 조금 일찍 커피를 시작할 수 있었고, 커피는 내 최애 음료가 되었다. 회사 다니던 시절에는 하루에 6잔에서 9잔의 아메리카노를 마실 정도로 카페인의 부작용에 대해 무지했다. 아니, 카페인이 건강에 그렇게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애써 무시하고 살았다는 게 맞는 얘기이다. 불혹이 되었고, 카페인도 줄여야 할 타이밍이 왔다. 불면증에도 커피를 끊지 않았는데, 약을 먹어도 잠을 못 자는 날이 생기자 카페인도 줄이게 되더라.
한 번뿐인 인생 멋있게 살다가 죽자는 마인드로 중독에 연연하지 않던 패기 넘치는 시절은 지나갔다. 오래 살기 위해 술담배커피를 멀리하는 것이 쿨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던 것 자체가 젊음의 증표이지 않을까. 오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몸이 버티지 못해서 줄이게 될 거라 상상이나 했을까. 다시 집필을 시작하자 습관적으로 커피를 찾는 내 모습을 보며, 커피 한잔만 마시면 더 맑은 머리로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나를 보며, 글을 핑계로 연초를 줄이지 않았던 지난날이 떠올라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