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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naissance Dec 31. 2023

모비딕

집착과 욕망

몰입하지 못하는 책은 과감하게 포기하고 읽지 않았다. 필독서라던가 위대한 문학 작품으로 꼽힌다고 해서 읽어보려 했더니 도저히 못 읽겠어서 덮은 적이 많다.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평생 독서만 한다고 해도 세상의 모든 책을 다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내가 재밌게 읽는 책을 많이 읽는게 더 낫다는 생각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활자를 읽는 것에 대한 편안함이 더 커져서인지, 아니면 내가 문학적 감수성이 바뀐건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루한 책에 대한 인내력이 세졌다. 요즘은 잘 읽히지 않더라도 그냥 읽는다. 대충 읽는 것도 아니요 속독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읽는다. 그렇지 않았다면 도스토예프스키나 카프카의 작품을 다 읽지 못했을 것이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은 등장인물이 한 번 등장할 때마다 몇 십 페이지에 걸친 혼잣말을 두서없이 늘어놓는다. [성]은 주인공이 성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목적이라고 나오지만 몇 백 페이지가 지나도록 성 근처에 갈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근데 그냥 읽다보니 재밌었고, 다 읽었다. 모비딕도 그런 종류의 책이다. 


멜빌은 고래 덕후다. 고래성애자에 가깝다. 당시 고래에 대해 알려진 모든 지식을 총망라해서 책에 기재해놓았다. 스토리는 매우 단순하지만 고래에 대한 설명때문에 진도가 나아가지 않는다. A4 한 페이지 정도밖에 안 되는 스토리를 800페이지에 걸쳐 기술했다. 그 중 700페이지는 고래에 대한 지식이다. 따라서 모비딕은 스토리를 위해 읽는 책이 아니다. 흰고래에 집착하는 에이허브 선장이 가장 유명한 캐릭터인데, 모비딕을 읽다보면 멜빌 자신이 에이허브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이토록 고래에 집착하는 양반이 고래에 집착하는 캐릭터에 관해 쓰다니. 성경 메타포와 미국에 대한 상징이 많이 나와서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게 쓰여졌다는 것은 알겠다만, 과연 소설로서의 완성도가 높은 작품인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든다. 앞서 예시를 든 카라마조프나 성은 읽는 것은 고되었지만 다 읽고나서는 왜 거장의 작품인지 느낄 수 있었다. 모비딕을 읽고 나서는 하나의 감정만 남았다. 집착.


멜빌이 왜 고래에 그렇게 집착했는지는 모르겠다. 모비딕에 등장하는 에이허브는 자신의 다리를 흰색 향유고래 모비딕이 앗아갔기 때문에 집착하는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에이허브가 단순한 복수심 때문인지, 삶의 목표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집중할 것이 필요해서였는지, 이미 이유를 알수 없게 되어버린 집착이 되어버린 건 자명하다. 그 목표가 없어지면 자신의 삶도 무의미해지기 때문에 집착하는, 껍데기만 남은 삶. 딱히 목적이 없기에 돈에 집착하는 사람이나, 상업영화 라는 목표가 없어지면 뭘 해야할지 모르겠는 나 자신이나 모두 에이허브와 다르지 않다. 모비딕을 포기한다고 큰 일이 나는 것이 아니다. 배를 돌려 고향으로 돌아가면 된다. 근데 돌아가면 무엇이 달라질까? 돌아가고 싶은 곳이 없는 사내, 평생 바다에서 포경을 하며 지낸 사내가 육지로 가서 무엇을 한단 말인가. 그래서 모비딕을 좇는다. 그것만이 삶의 이유다. 상업영화는 나에게 모비딕이 아닐지, 육지로 돌아가야할 이유를 떠올리지 못한다면 나는 망망대해에서 잡을 수 없는 꿈을 사냥하다가 수장될 것이다. 내가 집착하는 것은 무엇인가. 명예인가, 돈인가, 인정인가. 왜 바다를 표류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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