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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하 Nov 10. 2024

기쁨을 누리는 방법을 알지 못해서

- 타인의 삶은 타인의 몫으로

새벽까지 일하다가 잔 다음 날이었다. 나도 늙었는지 고작 새벽 3시 즈음 잤다고 도저히 눈이 떠지질 않는다. 몸이 아스러지는 느낌이었다. 이런 느낌이 오면 살이 빠진다고 하는데 이건 예뻐지려는 신호가 아니라 피로에서 오는 삶의 파괴였다. 이렇게 죽을 순 없어 흐느적대며 침대로 기어들어 갔다. 한 시간만 자야지. 휴대전화가 윙윙거린다. 광고다. 옷 사란다. 에이, 짜증 나게 잠만 깼네 싶다. 다시 웅웅 댄다. 이번엔 주식을 사란다. 꿀 같은 시간이 지나가는 것에 화가 나서 진동을 무음으로 바꿨다. 드디어 사방이 고요해졌다.     


얼마를 잔 것인지 다시 진동이 울린다. 이번엔 알람이다. 일어나야 하는데 눈이 안 떠진다. 그대로 더 잘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뭉그적거리길 잠시, 잠을 쫓아내기 위해 손을 뻗어 휴대전화를 잡아 화면을 켰다. 실눈으로 화면을 겨우 따라가는데 내 눈에 들어온 충격적인 문장이 있었다. 부재중 전화 4통. 딸이었다. 하필이면 잠깐 자려고 휴대전화를 무음으로 해놨을 때 전화가 잔뜩 와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급하게 전화를 했는데 받지를 않는다. 생각해 보니 이 시간엔 피아노 학원에 있어서 받지 못할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Image by Willi-van-de-Winkel from Pixabay

카카오톡 앱을 열어보니 메시지가 잔뜩 와 있다. 그런데 딸의 메시지는 없고 무수히 많은 광고 메시지 속에 태권도 사범님의 메시지가 보인다. 열어보니 아이가 수줍게 웃으며 상장과 메달을 들고 있다. 사진만 찍으면 무표정으로 얼어버리는 아이가 웃고 있는 걸 보니 좋은 일인 듯하다.    

 

사범님의 메시지를 보니 출석만 하면 다 주는 건 아닌 듯 보였다. ‘혹시 오늘 저희 집 외식해야 하는 날인가요’라고 물으니 맞단다. 어라! 큰 상인 가보다 싶다. 딸은 지난달에 태권도 1품을 따기 위해 국기원에 가서 심사를 봤다. 내가 가서 응원하면 아이가 순간 얼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지 않았다. 나중에 사범님이 올려주신 동영상을 봤는데 아이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성장해 있었다. 물 흐르듯 품새를 하고 콩콩콩 뛰며 뒤돌아차기까지 선보이는 겨루기를 하고 있었다. 우와, 최고인데? 남편과 나는 영상을 계속 돌려보면서 웃어댔다. 우리 눈에는 딸이 마냥 귀여웠기 때문이다.


국기원에 다녀온 딸은 1품을 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매일 걱정했다. 나는 당연히 따는 거 아니냐고 웃었다. 품새를 할 때 틀리지도 않았고 멈춰서 멀뚱대지도 않았고 겨루기는 잘 모르지만 사람이 기세가 있는데 밀리지 않았으니까 당연히 딸 거라고 했다. 얼마 뒤, 딸이 합격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길고 긴 빨간 띠의 삶이 청산되는 순간이었다. 짝짝짝.     


올해 5월인가, 6월에 딸은 품새 연습하기 싫다고 집에 와서 울어댔다. 엄마가 호락호락 응석을 받아줄 사람은 아닌 걸 알아서 그런지 울기는 했지만 바꿀 수 없는 상황에 괴로워 보였다. 때마침 사건도 터졌다. 아이가 도복을 갈아입지 않으며 며칠 뺀질댔나 보다. 사범님이 이러면 태권도를 다닐 수 없다고 띠를 반납해야 한다고 했더니 자신의 빨간 띠를 신나게 가지고 사범님 앞에 갔나 보다. 나는 이 반항의 경위를 듣고 경악했다. 그 정도로 괴로운 걸 내가 시키고 있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초등학생은 잘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꾸준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태권도도 피아노도 분명히 하기 싫은 고비가 오는데 그것을 이겨내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 초등학교생 때 배워야 하는 것이지 다른 걸 배울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가 힘들다고 징징댈 때마다 위로는커녕 군기를 바짝 잡으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엔 아닌 것 같았다.      


사범님께 양해를 구하고 품새 연습을 한 달 쉬기로 했다. 그러자 아이가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스트레스도 덜 받고 태권도 가는 것이 다시 행복해 보였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같이 연습했던 친구들이 모두 1품을 땄다. 딸은 그런 것에 별로 개의치 않은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은 반 친구가 자기보다 품새 연습을 늦게 했는데 더 빠르게 진도가 나가는 것을 보았던 것 같다. 그때부터 경쟁심이 조금 생기는 듯하더니 최선을 다해 품새연습을 했다. 집에 와서도 다 외웠다며 보여줬다. 중간중간 생각이 안 나는지 멈추긴 했어도 정말 열심히 연습을 하는 듯 보였다. 아쉽게도 내가 태권도를 배워본 적이 없어서 전혀 도움이 안 됐지만 말이다.    

 

그렇게 우당탕탕 사연을 겪으며 따낸 1품. 자기 이름이 새겨진 띠를 받아 든 아이는 자신이 선배가 됐다며 신나 했다. 띠를 받아온 날은 금요일이었는데 주말 내내 품에 안고 다녀서 말릴 정도였다. 그리고 며칠 뒤, 생각지도 않은 상장을 받은 것이다. 딸이 다니는 도장에서 심사를 본 아이 중에 2명의 아이가 상을 받았다고 해서 그렇구나~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2품 심사를 봤던 친구는 지자체협회장상이고 우리 아이는 광역단체협회장 상이 었다. 어? 센 거 받았네?      

Image by Susanne Weitzhofer from Pixabay

피아노 학원에서 열심히 피아노 칠 시간인데 딸이 전화가 왔다. 피아노 치다가 중간에 화장실에 갔다 와서 전화를 한 거라며 상장을 받았다고 자랑을 한다. 사범님한테 연락을 받았다고 축하한다고 하니 메달도 있다고 자랑한다. 집에 와서 보자고 끊으려는데 딸이 다급하게 말한다. 이번 달에 매일 과자를 사 먹는 바람에 용돈을 다 썼단다. 오늘 아파트 장 서는 날이라서 붕어빵 사 먹고 싶은데 돈이 없다고 말했다. 11월이 시작된 지 겨우 일주일인데 만원을 다 썼다니 물가를 체감함과 동시에 초등학교 1학년이라고 용돈을 너무 짜게 줬나 싶다. 붕어빵 가게에 가서 엄마한테 전화하면 엄마가 사장님 계좌번호로 돈을 보낼 테니까, 붕어빵 걱정 말고 피아노 치고 오라고 했다. 상장받았다고 바로 엄마에게 협상을 시작하다니 웃기다.    

 

그렇게 딸은 도복을 입고 목에는 메달, 한 손엔 상장, 다른 한 손엔 슈크림 붕어빵을 들고 의기양양하게 집에 왔다. 아이는 초등학생답게 허풍으로 저녁 시간을 가득 채웠다. 자기는 품새를 틀리지도 않았고 까먹지도 않았으며 겨루기를 할 때 싸대기(?)를 맞았지만 절대 그 자리에서 울지 않았다고 수상 비결을 말했다. 또, 절대 띠 아래는 발로 차면 안 되는데 상대방이 자기 다리를 차서 놀랐다고 하지만 자긴 절대 띠 아래로 차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띠 아래로 발차기를 하지 않는 것은 정말 어렵고 힘든 일이라며 생색을 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가 너무 귀여워서 맞다고 계속해서 맞장구쳐줬다. 상장도 액자에 넣어 벽에 걸고 좋은 상자를 꺼내서 메달도 담았다. 딸은 상장받았는데 엄마가 맛있는 거 쏘는 거냐고 물었고 알았다고 했다.  

   

다음 날, 아이는 학교 가는 길에 전화를 해서 아이들은 손에 들고 갈 수 있는 과자를 좋아하는데 자기가 무인가게에 오니까 뭐가 있더라라면서 조언을 해줬다. 알았다고 했다. 학교 점심시간이었는지 아이가 또 전화를 했다. 엄마가 무슨 간식을 태권도장에 보낼지 보내긴 하는 건지 궁금해서 전화를 한 것이다. 나는 비밀이라고 말하며 배달 온 곰돌이 모양의 델리만쥬를 쳐다보았다. 저것만 먹으면 목이 마를 것 같아서 요구르트도 잔뜩 사들고 태권도장에 갔다.

Image by Willi-van-de-Winkel from Pixabay

사범님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상장 얘기를 하는데 같은 날 심사받은 친구 중에서 상을 못 받아서 울고 간 아이가 있다고 하셨다. 그 친구도 다음엔 자기도 상을 받겠다고 결심하며 집으로 돌아갔단다. 우리 아이 역시 다음에 또 잘할 거라고 몇 번을 다짐했다고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는데 이렇게까지 칭찬을 하고 간식을 돌리는 것이 맞는지 자꾸만 걱정이 됐다. 누군가 상을 타면 나도 타고 싶다는 생각이 들 텐데 상을 못 타서 울어버린 아이가 있다 하니 너무 방방 뛰며 좋아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작년에 아이가 그림을 그려서 상을 탄 적이 있었다. 광역단체에서 개최한 그림대회였는데 아이가 꽤 높은 경쟁률을 뚫고 입선을 한 거라서 나는 엄청나게 기뻐할 줄 알았다. 아니었다. 아이는 시상식 장에 가서 자기가 1등을 못했다고 엉엉 울어버렸다. 그 뒤로도 어찌나 상을 타고 싶어 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번에 상장과 더불어 메달도 따냈으니 얼마나 기뻤을까. 나는 아이가 이 기쁨을 충분히 누리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그와 동시에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우려했던 일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걱정을 한 보따리 싸서 집에 가지고 왔다. 칭찬이 고팠던 아이에게 잘했다고 칭찬해 주는 것은 어디까지 해야 되는 것인지 처음으로 고민해 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가 이 기억을 좋은 추억으로 남기도록 도와주는 것이 맞는 듯했다. 그렇다면 다른 친구가 운 것은? 그건 내가 도와줄 수 없는 일 같다. 그건 그 아이의 몫이고 그걸 이기고 더 좋은 결과를 내도록 응원하는 것은 그 아이의 부모와 사범님의 몫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됐다. 그래, 내가 타인이 충분히 좌절하고 일어설 기회마저 눈치 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집의 흥분은 상 받은 날과 간식을 나눠준 이틀 동안 지속됐다. 아이는 축제가 끝난 것이 아쉬웠는지 상을 받고 사흘 째 되는 날, 8살이 메달을 딴 건 잘한 거지?라고 와서 한 번 물었을 뿐이다. 나는 겸손해야 한다, 타인을 배려해야 한다는 미명하에 기쁨을 즐기고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것 같다. 우리 딸은 이번에 제대로 배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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