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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하 Aug 09. 2018

어설픈 거짓말은 반드시 들통난다.

믿었던 사람이 나를 속였다는 것을 알게 되면 몸이 아팠다. 내 뼈와 살들이 저려오며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 시작됐다. 그런 날엔 외부 일정도 모두 취소하고 집에 누워있었다.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아 하루 종일 굶은 채 그 날을 꼬박 울었다. 그렇게 누군가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육체적 아픔이란 육체만의 사건이 아니다. 육체적으로 아픔을 경험하는 사람은 정신적 아픔의 사건과도 마주 해야 한다. 반대로 정신적 아픔이 육체적 아픔을 낳기도 한다. (……) 인간의 육체성과 정신성은 서로 분리할 수 없이 얽혀있는 관계 속에서 우리의 일상적 삶을 이어가게 한다는 것을, 특히 아픔의 경험과 마주하면 더욱 분명하게 인식하게 된다.”
강남순(2017), <<배움에 관하여>>, 동녘, p.64


고등학교에 다닐 때였다. 나는 키가 큰 단짝 친구를 두고 있었다. 그 친구는 고등학교 2학년 때인지 3학년 때인지 갑자기 모델 시험을 본다 했다. 그리곤 합격했다 말했다. 어느 날, 문자를 보내보면 벽에 붙어 있는 중이라 했고 다른 날엔 워킹 연습 중이라는 답변이 왔다. 다른 모델 친구들은 귀여움, 섹시 등의 개인 콘셉트를 잡았는데 자신은 ‘도도함’을 택했다며 재잘대던 기억도 난다.

친구의 활동 모습이 궁금해서 사진 하나 보내 달라했더니 무대 위의 자기 사진을 보내줬다. 화장을 얼마나 두껍게 하기에 얼굴이 달라 보이냐며 그저 무대 위의 친구를 자랑스러워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모델하는 친구의 사진은 개인 홈페이지에 매번 올라왔는데 신기하게도 얼굴이 실물과 계속 달랐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모델 화장은 그런 것이라며 한 번도 의심했던 적이 없었다.



대학교 여름방학이었던 것 같다. 라면 하나를 끓여 티브이 앞에 놓고 먹으며 할 일없이 채널을 돌리다 멈칫했다. 친구가 자신의 사진이라며 홈페이지에 올린 사진이 티브이에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사진의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그 사람은 모델 활동을 하다가 어린 나이에 죽었다 했다. 너무 놀랐다. 당장 그 모델의 홈페이지에 찾아갔다. 친구가 자신의 활동 모습이라며 올린 사진들이 그곳에 올라와 있었다.

친구 홈페이지엔 다른 모델들이 생일 축하한다고 케이크에 촛불을 붙여주는 사진도 있었는데 그것은 또 다른 모델의 홈페이지에 있던 사진이었다. 붉은 드레스를 입고 빙빙 돌며 치마의 멋스러움을 보여주던 대기실 사진도 또 다른 모델의 홈페이지에 있던 사진이었다.

손이 덜덜덜 떨렸다. 너무 놀라 난생처음으로 뒷목을 타고 피가 솟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친구의 홈페이지에 올라온 사진들을 다시 꼼꼼히 봤다. 모든 사진들이 내 친구의 얼굴이 아니라는 것을 그 때야 깨닫게 됐다.


나는 놀라서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너 사진이라고 했던 것들이 다른 모델 사진이라고 방송에 나오고 있다고 어떻게 된 거냐고. 친구는 한참 뒤, 나에게 전화를 해서 사실은 거짓말한 거라 말했다. 그런데 모든 사진이 거짓말은 아니고 몇 개만 그렇다고 했다. 자신의 기획사 사람들이 그걸 알고 예전부터 지우라고도 했다며 얘기했다.

나는 그것도 의심스러워 친구의 기획사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소속 모델 명단에 친구는 없었다. 기획사로 이메일을 보냈다. 몇 기에 어떤 모델이 소속돼 있다고 들었는데 맞냐고 말이다. 기획사에서는 그런 모델은 없다 답변이 왔다.


친구의 홈페이지는 거짓말 투성이었다.  친구가 강남에서 인터뷰를 했다며 자랑하듯 올린 기사가 있었다. 내일은 스타라는 코너에 자신이 실렸다며 올린 기사였는 신문사 홈페이지에서 아무리 검색해도 그런 기사는 나오지 않았다. 어설프게 워터마크가 올라가 있는 사진을 보고 친구가 기사를 쓰고 인터뷰한 척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런 기사가 있는지 신문사에 문의했다. 그런 기사는 없으며 누가 신문사 기자의 이름을 사칭하는 것은 큰 문제가 있으니 출처를 알려 달라 했다.



그제야 나는 그동안의 일들이 퍼즐처럼 맞춰지는 느낌이 들었다. 대학에 진학한 후, 친구는 쇼호스트가 꿈이라고 했는데 어느 날 유명 홈쇼핑 업체에 들어가게 됐다 말했다. (그때도 나는 그것이 거짓말인줄 모르고 바보같이 축하만 해줬다.) 취직한 것은 아니고 연습생 같은 거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친구는 독특한 가방 사진을 하나 홈페이지에 올려놓고는 이걸 멋있는 상품으로 소개하는 수업을 받고 있다고 했다. 그 모든 말이 진짜인 줄 알았다.

한 번은 홈쇼핑 방송에 드디어 나온다고 시간까지 적어놨기에 집에서 기다렸다가 틀었다. 그런데 친구의 모습이 나오지 않았다. 가방을 판다고 했는데 그 시간에 가방을 파는 홈쇼핑은 없었다. 내가 날짜를 착각했나 해서 다시 친구의 홈페이지에 적혀있는 날짜와 시간을 확인했는데 분명 지금 방송이 나오고 있어야 했다. 뭐가 어그러졌나 해서 그때도 그냥 넘겼는데 그저 친구는 거짓말을 했던 것이었나 보다.


“거짓말이 나쁜 게 아냐. 어설픈 거짓말이 나쁜 거지.”
전석순(2016), <<거의 모든 거짓말>>, 민음사 p.65


친구가 나에게 거짓말했다고 미안하다며 전화했을땐 모든걸 털어놨어야 했다. 그런데 그 순간조차 친구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그걸 알고 있었기에 나는 과감하게 단짝이었던 친구와 연락을 끊어버렸다.
당시에 친구는 모델이라는 이유로 대학교 홍보모델도 했고 그걸 바탕으로 지역방송 리포터도 했다. 그런데 친구는 모델이 아니었다. 학교도 속이고 방송국도 속인 것이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어떻게 그런 짓을 했는지 나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고3의 어느날, 친구가 서류에 거짓말을 쓰던 생각이 났다.


수시 모집 기간이었다. 컴퓨터가 있는 장소에 원서 접수를 하려는 아이들이 네다섯 명 모여 있었다. 친구는 EBS 토론회에 나간 언니가 자기가 이번에 토론하려는 주제가 있다며 소개해준 적이 있으니 EBS 토론회 방송 경력을 써야겠다고 말하며 서류에 당당히 쓰고 있었다. 나중에 걸리면 어떡하냐고 물으니 “괜찮아, 다른 사람도 다 이렇게 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 당당함에 나는 너무 놀랐다. 내 친구의 거짓말은 도대체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말이었는지 나는 지금도 구분하지 못한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제대로 된 사과를 받았어야 했나. 아니면 모른 척했어야 했나. 여러 번 고민해보지만 또렷한 답은 없다.
그녀도 힘들었을거라 생각한다. 진실이 계속 그녀를 적셨고 그 때마다 거짓말로 힘겹게 막고 있었을테니 말이다. 그렇게 방어했음에도 불구하고 작은 틈 사이로 계속해서 진실이 스며들었을텐데 얼마나 괴로웠을까.
그녀가 어디에서 뭘하고 살고 있는지 가끔 궁금해진다. 그래도 다시 만날 자신은 없다. 몸이 무너져내리는 경험을 다시 하고 싶지 않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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