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최참판댁에 들렀다가 바로 옆에 있는 동정호를 찾아갔다.
동정호 부근을 거닐다 보면 시골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다.
가을이라 그런지 곳곳에 허수아비들이 많았다.
호수 옆에 차전놀이하는 허수아비들이 있었다.
나는 이 차전놀이가 아주 오래 전 하던 전통놀이 쯤으로 생각했는데
엄마가 이걸 보고서 어릴 적 운동회 때 했던 기억이 난다고 하시더라.
생각보다도 더 최근까지도 했던 놀이였다.
호수 옆에 습지가 있는데 두꺼비들이 산다고 그랬다.
곳곳에 두꺼비 형상의 팻말이나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생각해보니 텔레비전 안에서나 두꺼비를 보았던 것 같다.
습지 안을 기웃기웃 했으나 두꺼비는 보이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가족들과 함께 동정호 한바퀴 걷기 시작!
호수가 의외로 꽤 크다.
원래는 더 컸었는데 논으로 많이 개간되어서 줄었다고 한다.
호수 옆으로는 곧장 논이 펼쳐져있다.
가을을 알리는 듯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그 뒤로는 굴곡진 산들이 보였다.
날이 맑아서 그런지 산들이 선명했다.
동정호 돌다가 가장 아름다웠던 풍경 중 하나.
노랗게 익은 벼가 우로 펼쳐져있고
돌 길 좌편으로 핑크빛으로 하늘거리는 억새들이 만발했다.
이 길 위로 우리 가족들밖에 없어 고요했다.
바람 소리만 들려오고 멀리 보이는 하늘은 어쩜 이리도 맑고 깨끗한지!
여러 빛깔들이 눈앞에서 흩날렸다.
아름다운 가을 하동,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
참 행복했다.
길가에 피어난 코스모스.
온갖 꽃 축제장에서 만났던 코스모스들은 수는 많았지만
이리저리 밟히고 뭉게지고 다친 흔적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흥취가 안느껴졌었다.
이렇게 길 가장자리에 조금씩 피어난 녀석들은
가을을 한껏 느끼게 해주었다.
호수를 한바퀴 도는 와중 살짝 길을 틀면 논길을 따라 걸을 수 있다.
노랗게 익은 벼들이 가득한 논길이 끝도 없이 펼쳐진 풍경이 장관이었다.
사실 최참판댁 보다 여기서 가족들과 함께 걸었던 순간이 더 기억에 많이 남는다.
귀여운 허수아비들이 곳곳에 서있다.
표정이며 옷이며 모든 것들이 제각각이었다.
어린아이의 내복을 입은 허수아비가 어찌나 귀엽던지!
최참판댁에서 내려다 보았던 부부송이 보였다.
그저 걷다보니 나타났다.
논 한가운데 우뚝 소나무 두 그루가 솟아있다.
논길에서 사진도 많이 찍고
걸으면서 가족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도 많이 했다.
농촌에서 자란 엄마는 이런 풍경이 엄청 반가우셨나보다.
벼 키우는 가장자리에는 콩을 심었다고 한다.
가장자리에 심긴 벼는 어짜피 못살고 죽는다나 뭐라나?
엄마는 논 쪽으로 손짓하며 콩이 어떤 것인지 나에게 알려주었다.
내가 보기에는 그냥 흔히 보던 풀 같은데 말이다.
논길을 한바탕 걷고 나서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나왔다.
동정호로 돌아와서 남은 반바퀴를 다시 돌았다.
이곳에도 코스모스가 한창이었다.
멀리 보이는 산과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호수
그리고 하늘하늘 피어난 코스모스들
이 풍경을 보니 오래 전 혼자 떠났었던 유럽 배낭여행이 생각났다.
독일 퓌센에 있는 어느 호수에 들렀었는데 무척 아름다웠었지.
왜 갑자기 그 호수가 떠오른 것일까?
평화롭고 아름답고 그리고 뾰족히 솟은 산 모양을 보니 비슷해 보였던 건가?
알고보면 우리나라에도 아름다운 곳들이 참 많은데 난 몰랐다.
여태 공부하느라 못보고 또 자격증 준비하느라
그리고 취직 준비하느라 끝없이 이어진 모든 것에 얽매이며 살다보니 그런가보다.
호수 옆 코스모스 밭을 뒤로하고
둥그런 호수를 두르고 있는 가장자리 길을 따라서 다시 걸었다.
어쩌다보니 한시간 넘게 이곳에 머무르게 되었다.
동정호 산책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하동을 떠나 남해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