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OONA Jul 04. 2019

능소화 가득 핀 남평문씨본리세거지의 여름날

능소화가 가득 피어났단 소식을 듣고 남평문씨본리세거지로 향했다.

4년전 여름날 나홀로 이곳에 찾아와 토담 사이를 걸었다. 혼자 버스에 올라 알 수 없는 길들을 굽이굽이 지나 인흥마을 어느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세거지까지 땀을 뻘뻘 흘리며 걸었다. 그 때는 7월 말 무더위가 한창인 시기였고 능소화는 거진 다 저물어 있었다. 그래도 한 두송이 희미하게나마 피어있던 꽃을 보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그 때의 기억이 어렴풋이 내 머릿속에 남아있었나보다. 길가에 피어나 있는 능소화를 볼 때마다 어렴풋이 이곳이 떠올랐다. 추억을 안고서 떠나는 길은 더 설레인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달려 세거지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 10시 즈음이었다. 그런데 이미 주차장은 차들로 가득했다. 모두들 능소화를 보러 왔나보다.

세거지는 능소화 뿐만 아니라 접시꽃도 한창이었다. 하얀색, 분홍색, 빨간색 큰 꽃잎들이 활짝 폈다. 하늘로 쭉쭉 뻗어난 줄기 위에 매달린 커다란 꽃잎이 시원시원했다. 수없이 달린 꽃봉오리들은 이제 곧 터질것처럼 한껏 부풀어 있었다.



카메라를 어깨에 둘러매고 토담 사이로 걸었다. 능소화 덩쿨이 기와지붕을 타고 넘어 토담 아래로 내려와 주렁주렁 꽃들을 늘어뜨렸다. 땅 위로는 절정이 지난 꽃송이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토담을 거닐다가 꽃이 활짝핀 송이째로 툭- 떨어지는 장면을 보았다. 그 모습이 온전해서 땅에서 꽃이 피어난 것 같았다. 마치 동백꽃처럼 말이다.

꽃에 가까이 다가가니 벌들이 날아다니는 소리가 귓가에 윙윙 울렸다. 자세히 살펴보니 꽃 송이송이마다 벌들이 내려앉아 열심히 꿀을 모으고 있었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꽃을 보고 기뻐하고 벌들은 신선한 꿀을 찾아 기뻐하고, 무덥지만 사랑스러운 여름이다.



하늘(宵)을 능가(凌)하는 꽃(花)이라 해서 능소화(凌宵花)라는 이름이 붙었다. 능소화는 덩굴식물로 다른 나무나 물체에 붙어 높이 오르며 자라난다. 그 기세가 마치 하늘을 능가하는 것처럼 보였나보다. 이름 때문인지는 몰라도 능소화는 예로부터 양반가에서나 키우던 꽃이라고 한다. 지금은 여름철 흔하게 볼 수 있으니 꽃을 좋아하는 나에게 참 다행이다.

능소화를 처음 알게된 것은 조두진의 '능소화'라는 소설에서였다. 소설 속에서 능소화는 누군가가 하늘나라에서 훔쳐와 인간세상에 심은 꽃으로 묘사된다. 책 속의 이야기가 떠오르며 능소화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것처럼 신비롭게 느껴졌다. 호기심에 가까이 다가가 꽃송이에 코를 들이대 보았으나 별다른 향기가 없었다.



팔뚝만한 렌즈가 달린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능소화를 찍느라 바삐 돌아다녔다. 커다란 삼각대들도 심심피 않게 보였다. 우리도 그 틈에 껴서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어떻게 담아도 두 눈으로 보는 것 보다는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이 사진들을 들춰볼 날을 상상하며 차곡차곡 추억들을 담았다.

구불구불 미로 같았던 토담길을 나왔다. 그윽한 연꽃 향기가 코 끝을 찔렀다. 푸르른 연잎들이 초록 바다처럼 펼쳐지고 그 위로 듬성듬성 연꽃들이 피어났다. 전날 비가 왔던 탓일까 연잎 위로 동글동글 물방울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작렬하는 태양 때문에 등줄기로 땀이 흘러내렸지만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잠시 더위도 잊었다.



연못을 지나서 가옥을 두르며 난 흙길을 따라 걸었다. 눈 돌리는 곳마다 꽃들이 피어 있었고 푸릇한 논 위의 벼들은 파르르 바람에 흔들렸다. 멀리 보이는 산도 여름을 맞아 푸르딩딩했다. 이파리 텅 빈 가지들로 가득했던 산을 본지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봄이 지나고 여름이 왔다.



계절이 지나가는 것을 몸소 느끼는 요즘의 삶이 참 좋다. 때마다 피는 꽃과 전국 방방곡곡 축제들을 쫓아다니다 보면 어느새 1년이 흐른다. 흐드러지게 핀 능소화를 보았으니 이제 곧 활짝 필 연꽃과 분홍빛 배롱나무 꽃을 보러 어디론가 가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양귀비와 수레국화 꽃밭에서, 청송 한옥민예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