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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NA Nov 04. 2019

낙엽이 바스락거리는 가을 합천 여행

합천호, 황매산과 합천 영상테마파크

푸르른 가을 하늘을 머리 위에 두고 우리에게는 무척 생소한 지역인 합천으로 향했다. 경상남도 고령과 거창 사이에 있는 합천군, 난생 처음 가보는 길이었다.



1박 2일 짧은 여행이었는데 합천 어디를 가볼까 고민하다가 먼저 합천호 근처에 숙소를 잡아두고 그때그때 끌리는 대로 다녔다.






합천 영상 테마파크


192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를 재현해 놓은 촬영용 세트장이다. 별 기대 없이 들어갔는데 생각보다는 괜찮았다. 하지만 기대를 가지고 간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여기저기 공사판이라서 어수선하고 관리가 제대로 안된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안에 제대로 먹을만한 곳도 마땅치 않았다. 그래도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으며 놀기에 재미난 공간이 많았고 의상을 대여해 색다른 추억을 남길 수 있어서 좋았던 곳으로 기억된다.



많은 사람들이 교복이나 개화기 의상을 대여해 입고 다녔다. 합천 시내쪽 '합천의복'이라는 곳이서 옷을 빌려오는 방법이 하나 있고 테마파크 내에 있는 대여소에서 빌리는 방법이 있다. 우리는 테마파크 내에 있는 대여소에서 교복을 빌려 입었는데 재밌고 색다른 경험이었다.



사실 세트장 속 시대는 내가 살아왔던 때가 아니어서 아련하게 내 향수를 자극하진 못했다. 다만 텔레비전이나 영화 속에서 보던 많은 장면들이 떠올라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테마파크 안에 어르신들이 많이 보였는데 추억 여행을 하는 듯 즐거워 보이셨다.



하늘 위로 경비행기 한 대가 지나갔다. 푸른 하늘에 떠있는 비행기를 보니 영화 붉은 돼지가 떠올랐다. 주인공 마르코가 타고 다니던 빨간색 경비행기를 실제로 보는 기분이 들었다. 합천에는 경비행기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 있다. 에어랜드 항공스쿨이라는 곳인데 언제 타볼 날이 있으려나?







합천호에서의 하룻밤


우리는 합천에서 하루 머물기로 하고 미리 숙소를 예약해 두었다. 합천호를 마주보고 있는 숙소, 들어서자마자 발 밑으로 낙엽들이 바스락거렸다. 빈 가지들만 남은 나무들과 낙엽들이 가을 정취를 느끼게 해주었다.



해질 무렵에 도착한 숙소, 눈 앞에 보이던 호수가 어찌나 아름답던지! 합천댐을 만들면서 생겨난 어찌보면 인간이 만들어낸 호수, 그치만 그냥 날것의 자연처럼 아름다웠다. 호수 위에 떠있는 하늘과 구름, 나무와 산. 고요하고 잔잔한 호수를 바라보는데 멀리서 새소리만 간간히 들려왔다. 호수 안에 또 다른 세상이 담겨있는 것 같아 뛰어들고 싶었어.



다음날 아침 이른 새벽에 눈을 떴다. 대충 챙겨입고 쌀쌀한 새벽 공기를 마시며 호숫가로 향했다. 눈앞에 보이는 풍경은 아, 너무 아름다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물안개가 스르륵 스르륵 호수 위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오른편 산 너머에서는 해가 떠오르려는지 하늘이 붉게 타올랐다. 밖에 오래 서있어서 그런지 몸이 으슬으슬거렸지만 왠지 모르게 이 추위가 좋았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구나. 기다리던 가을. 가슴 속을 파고드는 차가운 공기는 상쾌하게 느껴졌다.



새벽녘 물안개를 넋놓고 구경하다가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가 잠들었다. 언제였던가? 아마도 늦은 아침 다시 잠에서 깨어 창밖을 바라봤을 때였던가? 아직까지는 푸릇한 산자락에 걸린 구름이 호수 위에 둥둥 떠있었다. 그리고 신비롭게 호수 가운데 서있는 나무 한그루에는 하얀 새가 앉아있었다. 신선이 지나가다 너무 아름다워 잠시 놀다가 갈법한 풍경이었다. 우리나라에 아름다운 곳들이 어찌나 많은지 여행하며 매번 놀란다.






합천 한우와 된장찌개


합천에 어떤 먹거리가 있나 살펴보니 '합천 한우'가 유명하다더라. 합천 곳곳에 한우 전문점들이 즐비해있었다. 어디를 가든 다 맛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그 중 어느 한 식당에 들어갔다. 토시살을 시켜서 맛있게 한점한점씩 구워 먹었다. 백미는 따로 있었다. 구운 불판 위에다가 된장찌개를 부어 주시는데 자글자글 고기 기름이 섞여 하얀 쌀밥과 맛나게 흡입했다.



그러고 다음날 아침, 우리는 또 한우가 들어간 된장찌개를 먹고야 말았다. 아침식사가 되는 곳을 찾다가 우연찮게 오게 된 식당이었다. 차돌박이 된장찌개를 시켜 갓 지은 쌀밥과 함께 맛있게 먹었다.







합천 황매산 억새 물결을 따라


지도에 황매산 군립공원을 찍고 황매산을  찾아가는 길, 구불구불한 산길을 조심스럽게 올라갔다. 황매산 꼭대기 억새 평원까지 차를 타고 갈 수 있었다. 해질 무렵 도착한 황매산에는 핑크빛 구름들이 두둥실 떠다녔다. 가을을 맞아 피어난 억새들이 가득했다. 높은 산 위로 펼쳐진 평원과 낮은 언덕 위로 보이는 억새 물결이 장관이었다.



멀리 보이는 구름들은 언덕 위에서 뭉게뭉게 피어난 것처럼 보였다. 황매산 정상부는 해발 천미터가 넘으니 저렇게 보여도 놀라울 일이 아니었다. 억새 물결을 따라 처음 들어서는 길은 거의 평지였다. 쭉쭉 더 올라가도 낮은 언덕들뿐이라 걷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이렇게 힘들이지 않고도 산 꼭대기 억새밭을 볼 수 있어서 감사했다.



억새가 만발한 드넓은 들판 사이사이로 커다란 나무가 한 그루씩 서있었다. 아이보리빛 억새 위로 언뜻 보이는 푸르스름한 나무 이파리들이 귀여웠다. 제일 높은 곳까지 올라서서 억새밭을 내려다보고 싶었다. 그래서 열심히 오르는 와중 날이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해가 순식간에 넘어가서 금새 하늘 빛이 변해버렸다.



태양은 산 너머로 저물고 들판 위 억새들은 신비로운 노을빛을 흠뻑 머금었다.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길 가기가 아쉬워서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조만간 다시 이곳을 찾으리라 속으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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