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름날 구례를 찾았을 때, 아직은 내리쬐는 태양이 그렇게 무덥지 않던 날이었다. 하늘호수 차밭이라는 곳을 네비게이션에 찍고 안내를 따라서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달렸다. 위로, 또 위로 계속해서 올라가다보니 어느새 산이 아래로 내려다보이기 시작했다.
인기가 많은 곳인지 주차할 곳을 찾기 힘들었다. 길 가장자리마다 차가 세워져 있어 우리는 주차할 곳을 한참 헤맸다. 그러다가 막다른 골목에 들어섰고 겨우 차를 돌려서 빠져나왔다. 운좋게 자그만 폭포 옆에 차를 세워두고 목적지를 향해 걸었다. 핸드폰 속 지도의 안내를 따라 하늘호수 차밭을 찾아가는 길, 왠지 첩첩산중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가는 길목 마다 안내 표지판이 있어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신비스러운 대나무 숲을 지나서 드디어 하늘호수차밭에 도착했다. 이 산속 깊숙한 곳을 사람들은 어찌 알고 찾아오는 것일까? 알고보니 이 산길은 지리산 둘레길의 여러 코스 중 하나였다. 등산객들에게 간단한 음식과 음료를 파는 곳인데, 입소문을 타서 구례를 찾는 여행자들에게도 유명해졌다.
우리는 운 좋게도 산능성이가 한눈에 보이는 곳에 자리 잡게 되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덜 다듬어진 듯한 의자들과 테이블, 그리고 천장에서 흔들리고 있는 오색 천들이 이곳을 이국적으로 느끼도록 해두었다. 마치 어느 고원 지대를 여행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산장 같았다.
우리는 배가 출출해서 계절전과 도토리묵을 시켰다. 이미 부쳐놓은 전을 해동해서 주려나 싶었는데 작은 후라이펜 위에 반죽을 올려 즉석에서 전을 부쳐 주셨다. 그리고 갓 무쳐 나온 도토리묵, 듬뿍 뿌려진 깨 덕분인지 무척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한 입, 두 입 먹다 보니 금세 음식들이 동이났다. 같이 곁들였던 모과 모히또와 오디 스무디도 맛이 좋았다.
구름 꽉 끼었던 하늘에 푸르스름한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하얀 구름들 사이로는 노란 햇살이 스며들고 있었다. 정면으로 들이치는 햇살에 눈이 부셨지만 눈앞에 보이는 풍경이 아름다워 앉아 있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우리는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기도 하고 글도 끄적이면서 시간을 보냈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산바람에 기분이 참 좋았다. 이곳이 너무 마음에 들어 저녁을 먹으러 가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시간을 좀 더 보낸 뒤 가기로 했다. 그래서 우리는 끓인 봉지 라면과 드립 커피, 차가운 발효 녹차를 추가로 주문했다.
시시각각 하늘의 모습이 변했다. 많던 조각 구름들이 사라졌고 들이치던 햇살도 잠잠해졌다. 그리고 서서히 어둠이 내려오기 시작할 때 우리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숙소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