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시작되고 매화가 필 때 즈음 자연스레 떠오르는 곳이 있다. 바로 양산의 순매원이다. 벌써 3년째 이곳을 찾았다. 이번에는 순매원이 아닌 원동역에서 여행을 시작했다. 원동역을 나와 계단을 오른 뒤 낙동강을 옆에 끼고 600m 정도 걸으면 순매원이 나온다. 우리는 계단을 올라가지 않고 원동 마을을 구경하다가 배를 채우고 순매원에 가기로 했다.
팔뚝만한 페스츄리 꽈배기를 파는 노점에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지금 막 기름에 반죽을 튀기고 있는 중이라 군침이 돌았다. 슬며시 우리도 줄을 섰다. 10여분 정도 기다린 끝에 꽈배기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갓 튀겨낸 꽈배기는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해서 무척 맛있었다.
어디서 참기름 냄새가 진하게 풍겨왔다. 입에 한가득 넣고 음미하고 싶은 고소한 냄새였다. 어느 식당에서 나는 냄새인 줄 알았는데 길을 걷다가 참기름집을 발견했다. 담벼락에능 '50년 전통 참기름'이라는 글씨와 참기름을 담는 할머니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우리의 발길은 저절로 참기름집 안으로 향했다. 벽화 속 할머니가 앉아 계셨다. 그리고 아저씨가 갓 짜낸 참기름 병을 만져보라며 건네 주셨다. 유리병이 따끈따끈했다. 우리는 참기름 한 병과 물 끓여 먹을 볶은 보리를 한봉지 샀다.
어느 촌국수집에서 두부김치와 촌국수를 먹었다. 그리고 직접 담그셨다는 막걸리도 함께 곁들였다. 매번 공장 두부를 먹다가 간만에 촌두부를 먹으니 맛이 참 좋았다. 뭉클뭉클 질감이 잘 느껴지는 고소하고 촉촉한 두부였다. 곧이어 나온 촌국수는 진한 멸치국물에 소박한 고명이 올라가 있었다. 갓 튀겨나온 꽈배기도 꺼내서 같이 맛보았다. 배부르게 먹은 뒤 바로 옆에 있는 피렌체라는 카페에서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샀다.
커피 한 잔을 손에 쥐고서 원동 마을을 살짝 돌아본 뒤 순매원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갔다. 그리고 천천히 낙동강을 옆에 끼고 걸어갔다. 그러다가 익숙한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길게 늘어선 철길과 능선 그리고 낙동강. 소복히 눈이 내려 앉은 것처럼 철길 옆으로 매화가 가득 피어있었다.
아직 매화들이 만개하진 않았지만 나에게는 충분히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활짝 핀 매화도 좋지만 몽글몽글 눈송이처럼 매달려 있는 꽃송이와 뒤섞여 있을 때가 정말 이쁜 것 같다.
매화 나무가 곳곳에 서있어서 그 사이를 지나다닐 때 마치 미로를 걷는 기분이 든다. 강렬한 매화 향기가 코를 찔렀다. 나무 아래 서서 하늘을 올려다 보면 파란 도화지에 하얀 꽃들이 가득했다.
코로나가 유행하기 전에는 이곳에서 음식들을 팔았었다. 가득핀 매화 아래에서 국수나 파전 같은 음식들을 먹을 수 있었다. 아쉽게도 올해는 그 흥취가 다 사라졌지만 매화는 어김없이 봄을 알리며 피어 있었다. 얼른 코로나가 종식되어서 자유롭게 다닐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순매원을 한참 돌아보다가 다시 원동역으로 돌아가는 길, 올해가 지나면 내년에나 다시 이곳에 오겠지? 그 때도 이 모습 그대로 있어주면 좋겠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꾸만 변하고 사라지는 것들이 늘어난다. 사라지고 변하는 것들을 보면 추억이 지워지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