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참 어린아이 같아

안녕 나의 키다리아저씨

by 새롭게 리플랜

나는 대학교 다니던 시절 친한 친구에게 ‘너는 참 어린아이 같아’라는 말을 들었다.


그만큼 삶에 고민과 힘듦이 많이 없이, 고생도 크게 하지 않고 평탄하게 살아왔다는 뜻으로 들렸다. 그 당시에는 그 말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않고 넘겼고, 그 말이 기분 나쁘게도 들리지 않았다.


어린 시절 나는 공부를 잘하지는 않았지만 항상 중간정도의 성적에 수업시간에 졸지도 않고, 필기도 하지 않고 선생님 말씀도 잘 듣는 아이였다. 하지만 집에 오면 책가방 한번 열지 않을 정도로 예습, 복습이란 거는 해본 적이 없고, 늘 컴퓨터를 켜고 게임만 했었다.


부모님도 속을 안 썩이니까 크게 뭐라고 하지 않았고, 그렇게 기억에 남는 큰 추억 하나 없는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러고 나서 수능을 보았는데, 잘 봤을 리가 없다. 이렇게 학교생활 착실히 한 아들이 성적이 서울에 있는 대학정도도 가지 못한다는 실망감을 안겼지만, 학교 교감선생님인 아버지가 나는 나의 앞길을 책임져줄 것 같은 키다리아저씨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그중에서도 좋아하는 게 있었다. 미술이나 만들기를 좋아하고, 건축에 대한 관심도 많아서 집 근처 단독주택을 구경하고 다니거나, 새롭게 생긴 모델하우스가 오픈하면 거의 다 둘러보며 공간을 만들거나 꾸미는 상상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 시기에 가장 유망했던 컴퓨터 공학과를 부모님의 권유를 통해 들어가게 되었고, 나는 학과에 관심이 없고 하기 싫다는 말을 하지 못한 채 늘 그랬던 것처럼 착실하게 다녔다.


부모님은 어떻게든 졸업해서 대학원까지 나오면 학교 선생님이 될 수 있다고 내가 초중고를 다닌 것처럼 크게 말썽피지 않고 시키는 대로 잘 따라가면 아버지처럼 선생님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나는 또 나의 인생을 아버지에게 의탁하고 그렇게 하루하루 벽돌 한 장씩 채워가는 마음으로 나의 대학시절을 보냈다.


그 시기에 나의 든든한 지원군이라고 생각했던 아버지는 암 판정을 받으시고 4년간의 긴 투병생활을 하시다가 돌아가셨다. 말은 4년이지만 체감상 갑자기 돌아가시긴 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실 거라는 말을 전혀 하지 않아서 나는 나을 거라고 확신했고, 죽음에 대해서는 1도 생각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도움 없이 혼자서는 목표를 이룰 수 없는 아버지의 바람대로 빚어진 채로 살고 있던 나는 돌아가시고 나서도 눈물이 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어이가 없고, 앞으로의 삶이 막막했던 것 같다. 다시 시작해야 하나? 일단 졸업을 해야 하나? 앞으로 뭐를 하며 살아야 하나? 시키는 대로 하면 안정적으로 뭔가 될 것 같은 희망을 바라보며 살아오던 나는 갑자기 20대 초반에 가장이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너는 참 어린아이 같아. “


어리광을 부리지도, 힘들다고 말하지도, 슬프다고 울지도 못하는 나는 집에서는 혼자가 된 어머니를 위로해 주는 아버지노릇을 하고 학교나 사회에서는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한 모습을 한 이중적인 모습으로 살고 있었다.


나는 나의 성격이 착하고, 잘 참고, 이해심과 배려심이 많은 사람으로 알고 있었고, 나를 소개할 때 이렇게 소개했었다,


나는 그저 나의 슬픔을 들킬까 봐, 어두운 모습을 보고 친구들이 멀어질까 봐, 솔직한 마음을 숨기고 꺼내지 않은 겁 많은 어린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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