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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재 replay Aug 18. 2021

늘어난 고무줄 치마를 추켜올리며

알라스카 - 맛있는북극이야기

"너는 노는 건지 일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림 그리는 걸 보던 아빠가 한마디 하신다. 일이 취미이자 직업이 되어 버린 나여서 그런지 그림 그리기와 독서를 빼곤 딱히 취미가 없다. 그나마 일과 관련 없는 취미라 할만한 것은 패션 유튜브를 보는 것일까. 센스 넘치는 옷과 그 옷을 입은 사람 보는 걸 즐긴다. 패션 유튜버들이 흔히 하는 멘트. "여러분 옷장에 검은 옷 많으시죠? " "아니."(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물감 쓰는 일을 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제법 알록달록한 옷장을 가지고 있다. 아니 이 말은 오해가 있다. 모든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알록달록 옷을 입는 것 같진 않다. 그보다는 검은 옷만 사려고 하면 "수녀니? 검은 옷 좀 그만 사!"라고 구박하던 엄마 때문이다. 한때 거부했지만 1,000m 밖에서도 빛을 발하고야 마는 엄마의 패션 철학에 물들어 버렸다. 무채색보다는 색이 강한 컬러가 내게 어울린다는 걸 알아버렸다. 진한 코발트블루, 와인 레드, 옐로 머스터드, 셉 그린 화려한 색상의 옷들이 무색하게 외출할 일이 별로 없는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말이다.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디자이너, 재택근무자인 나는 화려한 색의 옷들이 쓸모없게 입는 옷의 대부분이 고무줄이 탑재된 츄리닝과 고무줄 치마다. 사태가 이렇다 보니 외출할 일이 생기면 전날부터 머릿속 패션쇼가 펼쳐진다. '이건 저번에 입었고 이건 너무 평범하고', 탈락과 후보군을 차례로 떠올리며 내일의 코디를 꽤나 진지하게 고민한다.


코로나 덕에 외출할 기회가 급격히 줄어든 최근 작년 시즌 오프 때 "어머 이건 사야 해." 80% 세일가로 쟁여놓은 옷들이 태그도 못 땐 채 옷장에서 잠자고 있다. 내 개성과 안목으로 멋을 내고 친구들과 마시던 차 한 잔의 시간이 그리운 건 옷장 속 옷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알록달록 화려한 옷을 입고 "패션은 자신감!"을 외치는 패션 유튜버들을 보며 늘어난 고무줄 치마를 추켜올리는 요즘 생활이 새삼 서글프다.


www.onrerpl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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