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니까 꽃>
사실 2020년 새해가 시작되면서 그 기념으로 새로 시작한 건 많았다. 외국어, 운동, 집밥 해먹기 (요리 많이 하기) 등등 뭔가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야만 하는 것도 있었고 비타민과 유산균 챙겨먹기, 운전할 때 욕 안하기 등등 사소한 습관 교정에 관한 것도 있었다. 해야만 하는 것과 하고 싶은 일들이 뒤섞인 새해의 계획 중 반은 지키고 반은 시작도 못한 채 포기한 목록들도 있다.
다행인 것은 마흔에 가까운 나이가 되면서 사실 새해의 결심에 대한 희망이 옅어진 만큼 계획이 작심삼일로 끝났다고 해서 자책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인생의 전반전을 서서히 끝내고 후반전을 준비해야 하는 나이가 되면서 나는 해야만 하는 것보다 하고 싶은 목록의 개수를 늘렸다. 아무래도 내가 좋아하는 일이다 보니 행동을 실행을 옮길 확률도 높다. 하다가 끝맺음을 하지 못해도 괜찮다. 스스로를 채찍질 하는 것보다 ‘뭐라도 하는 게 어디냐’ 하는 생각에 일단 뭐라도 시작하는 나에게 후한 점수를 주면서 자존감을 높이는 것이다.
때마침 올해부터는 시즌별 하고 싶은 목록도 좀 적어 보았다. 봄에는 산을 오르며 꽃과 나무를 가까이 하고, 여름에는 서핑을 배우고, 가을에는 독서의 계절을 맞이해 전자책을 출판하고 (원래 꿈은 거창해야 한다) 등등 하고 싶은 목록을 적으면서 콧노래를 불렀었다. 아아, 의지충만! 이대로 올해 하고 싶은걸 다한다면 나만한 경험 부자는 없겠지 싶었던 것이다.
봄부터 나는 현재 살고 있는 서울의 둘레길을 시작으로 많이 돌아다닐 계획이었기에 트레킹화도 사고 한 달 쯤 뒤에 입으면 딱 예쁠 핑크빛 등산복도 장만했다.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는 ‘코로나’ 만 아니었어도 모든 것은 아마 순리대로 돌아 갔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하루에도 수백명씩 확진자가 늘고 가족 단톡방에는 이럴 때일수록 안 나가는 게 상책이라며 서로의 문단속에 관심이 많다.
물론 나는 출퇴근이 따로 필요 없는 프리랜서 이지만 식탁을 작업 책상 삼아서 하루 종일 앉아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게 싫어서라도 일부러 외출을 하곤 했었는데 보통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서재겸 옷방으로 건너가서 연초에 아이쇼핑만 하겠다고 굳게 다짐한 채 아울렛을 갔다가 특가 가격에 혹해서 산 트레킹화를 꺼내 신을 수 있는 탁월한 핑계 이기도 했다. 사실 올 봄 계획은 쇼핑 이후에 만들어 졌다. 즉, 배고파서 밥을 먹는 게 아니라 밥솥의 밥을 쳐다보고 있노라니 배가 고픈 주객의 전도된 상황 이었던 것이다. 충동적으로 의류를 구매한 것에 대한 스스로를 납득할 수 있는 그럴싸한 핑계로 ‘올 봄에는 산에도 가고 들에도 가고 여의도 벚꽃축제도 뉴스가 아니라 내 눈으로 보고 말테야’ 하는 WANNA DO LIST (하고싶은일 목록)을 세웠던 건데 이 모든 걸 외국에서 시작된 코로나가 한 방에 날려주었다.
근데 지금처럼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으로 마트에서 마스크 없이 사람을 대면하는 것에서 조차 공포를 느끼는 요즘, 아마 꽃피는 봄이 오더라도 나를 위해서, 타인을 위해서, 외부활동을 자제 해야 한다는 건 사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자명한 일이다.
마스크를 끼고 등산하면서 조금이라도 군중이 보인다 싶으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선을 피하고 마스크를 코 끝까지 올려 쓰면서 산에 피는 들꽃 냄새를 맡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올 봄에는 꼭 자연 속에서 좀 더 많이 걷고, 자연 속에서 건강을 찾고 싶었는데 대략 난감한 이 상황을 어쩐다? 가뜩이나 재택근무가 일상일 고리타분한 프리랜서의 생할에서 다들 “사람 많은 곳을 피하라” 는 목소리가 들리니 뛰는 거, 걷는 거 평생 안좋아 했던 내가 자꾸만 더 등산이 땡긴다. 아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남산이 바로 코앞인데 남산도 올라가고 겉에서 바라만 보았던 ‘사람 많은’ 남산 타워에 너무 오르고 싶다. 내가 차마 그러지 않는건 나의 게으름이 아니라 다 코로나 때문...기승전 모든 건 코로나 때문인 것이다.
지름신이 강림해 저지른 등산복과 트레킹화는 올 가을 제대로 뽐 내 주기로 하고 대신 올 봄, 근처 꽃집에 들러서 꽃을 한 단씩 사서 집을 꾸미기로 해야겠다.
내가 자연속으로 갈 수 없으면 내가 사는 공간에 자연을 심는 것으로 대리만족 하는 것이다.
그래, 뭐니뭐니 해도 봄은 꽃이다. 올 봄 나는 꽃꽂이를 취미 삼아 꽃과 좀 가까이 할 것이다. 뭐 굳이 전문 플로리스트에게 수업을 듣지 않아도 될 것이다. 동영상 강의도 많고, 혼자 사는 프리랜서의 집에 꽃 감상자도 나 하나인데 아무렴 뭐 어떠랴? 내 눈에 보기 좋으면 됐지.
올 봄, 그래, 봄이니까 꽃이렸다! 나 봄에는 꽃꽂이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