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대 중반이 넘어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니 많게는 결혼 십 년 차, 적게는 결혼 3년 차 지인들이 주위에서 점점 늘어간다. 가장 친한 친구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기혼자 인걸 보면 아무리 비혼과 독신, 다양한 모습의 가족형태가 늘어나도 아직까지 결혼은 사랑의 완성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의식임에는 틀림없다.
영원 하고도 절대적인 행복을 약속하며 결혼하는 친구들도 있는 반면에 더 이상 못살겠다며 이혼을 결심한 친구들, 이혼 소송의 한가운데에서 지옥을 맛보고 있는 지인들도 있었다. 이혼 후 여자들은 정확히 두 종류로 나뉘었다. 이혼 후 무(無)에서 시작하여 안정을 찾은 듯한 사람의 비율만큼이나 섣부른 이혼 결정에 후회하며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궁핍하게 사는 여자들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서 이혼의 상처가 아문 뒤, 이혼 사유를 파헤쳐 들어가면 이혼의 결정적인 원인에는 십중팔구 배우자의 외도가 원인으로 드러났다. 처음에는 주로 외도를 당해 고통 받는 지인의 편에서 상담을 해주었다. 물론 거의 여자들이었다. 나의 타고난 재능중 하나가 감정이입과 공감 능력이었기에 피해를 당한(?), 그래서 억울해 하는 그녀의 지인으로서 함께 상대를 향해 내 일처럼 거품을 물고 욕을 해댔다. 천하의 나쁜 새끼들! 자식보기 부끄럽지도 않나. 주로 외도한 남편의 언니, 친구, 여동생들의 상담자 역할을 해주었다. 그들은 이미 사회적으로 혼기를 많이 놓친 나이인 나에게 남편의 무책임함과 배신감을 토로하면서 가슴의 응어리를 해소하는 듯 했다. 절대로 내 남편은 그렇지 않을거라고 확신하는 여자들도 어김없이 외도를 겪고 무너져 내렸다. 나도 내 일처럼 아파하고 함께 분노해 주었다.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일을 저지른 남자들로 보였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게 뭐람? 욕정을 참지 못하고 주위 사람의 인생을 지옥으로 만드는 가정파괴범들 이라고 확신하며 단정 지었다.
그리고 아직 경험해 보지 않은 결혼생활에 대한 나름의 기대와 환상이 10년차 이상의 부부를 보며 많이 무너져 내렸다.
그러다가 그 반대의 입장에 있는 지인들, 즉 주로 외도한 남자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주로 퇴사한 회사의 인맥이었던 예전 직장 동료나 운동 동호회 모임등 사회에서 만난 남자들이었다. 싸움은 양쪽에서 들어봐야 한다고 했던가. 그들의 입장은 또 달랐다. 그들도 충분히 고통 받고 있었고 이해가 가는 상황 이었다.단순히 끓어오르는 성욕을 참지 못했던 1회성 외도,감정적 교류와 꾸준히 친밀감을 통해 혼외 사랑을 통해서 무의미한 결혼생활을 가까스로 유지해 왔다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당연히 동의할 수 없었다. 그들은 전문의의 심리 상담이 필요해 보였다. 다만 내가 주목한 건, 여자들 보다 훨씬 더 담백하게 털어놓는 그들의 불륜이 선택이고 사랑일 경우였다. 남자들의 이야기는 처절하고 절절했으며 윤리적 문제를 떠나서 그들의 비윤리적인 사랑에 분명히 이유가 있었다는 점이다.
내가 ‘가정 파괴범’이라고 생각했던 그들에게는 외도가 불행한 결혼생활을 끝낼 수 있는 도화선이 되었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들 역시 불행한 가정의 피해자였다. 그저 뒤늦게 찾아온 강렬한 감정에 희열과 죄의식을 동시에 느끼며 괴로워 하고 있었다. 그들을 향해 쏟아지는 비난을 보면서 왜 유독 사람들은 ‘외도와 불륜’ 이라는 결과 자체만 두고 정도(正道)가 아닌 외도(外道)의 길을 선택한 배우자에게 배신자 라는 주홍글씨를 찍는 걸까. 부부 관계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결과가 불륜이어서 유감스럽다. 그러나 나의 배우자가 왜 그런 길에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이해하려는 마음을 먹는다면 한 가족이 깨지는 불륜을 막을 수 있다. ‘나는 최선을 다했어. 문제는 너야’ 라는 사고방식으로는 이혼 외에는 답이 없다.
내가 무시하는 내 남편이 밖에서 매력적일 수 있다는 생각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그런 의미로 이 책을 현재의 남편 혹은 미래의 예비신랑과 공생하고 싶은 여자들에게 바치는 나의 이야기,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이야기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