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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koni Apr 04. 2021

미나리

(feat. 신파가 아니어서 더 좋은)

처음에는 딱 그정도였다. 상 받았다고 하니까. 고령의 배우 윤여정이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니까, 골든 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받았다니까 얼마나 잘 만들었는지 어디 한번 보자~ 싶은 생각이었다. 대충 뭐 감독의 유년시절의 기억이 반영되었다는 이민자의 이야기에 한국 할머니 (윤여정)이 등장하면서 대충 신파가 그려지겠구나 생각했다. 

게다가 한 줄 영화평을 미리 보고 갔지만 <재미와 감동> 이라는 평점과 <지루하고 끝이 이상하다>는 평점의 갭이 너무 커서 기대조차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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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면 내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기생충 보다 좋았다. 잔잔한 이야기 중간중간 픽픽 터지는 실소도 있었고, 억지 감동을 쥐어짜내지 않는 스토리에 도리어 중간 중간 울컥 하는 감정이 올라왔다. 


가족 구성원 모두 그 자리에서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지만 뭐 하나 풀리지 않는 일상,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그래도 가족의 사랑으로 서로를 껴앉는다. 서로에게 구원이 되어 주고자 결혼했지만 서로가 짐스러워진 모니카와 제이콥은 갈라서기로 합의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화재라는 재앙 앞에서 서로를 구원이라 여기며 알아보게 된다. 

뇌졸중에 몸을 제대로 못 가누게 된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집안일에 도움이 되고자 평소처럼 쓰레기를 태우고자 돕다가 수확창고를 다 태워버린 순자... 절망하며 돌아서는데 손자와 손녀의 "집으로 함께 가자"는 부름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는 가슴이 말랑 말랑 해졌다. 


즉, 억지로 신파를 그려내지 않는게 좋았다. 억지로 화면을 슬로우로 잡거나 억지로 현실에는 없을 법한 감동을 만들어 내지 않아서 찐 감동이 흘러 나왔다. 

멀쩡히 엄마 아빠가 지방에 있지만, 결혼해서 조카까지 낳고 잘 살고 있는 오빠도 있지만 나에겐... 힘들때 손을 뻗게 되는 존재가 가족이 아니어서 그런지 풀밭 위의 트레일러에서 살면서도 서로에게 큰 힘이 되어주는 한국인 이민자의 가족이 너무 부럽고 아름다워 보였다고나 할까. 


가족이라는 존재가, 부모님이라는 존재가 힘들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라면 참 축복받은 인생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내가 잘 되야 찾아가는 곳, 내가 용돈이라도 팍팍 드려야 맘 편히 방문할 수 있는 곳, 조카 옷이라도 사야 내려갈 수 있는 곳이 되어 버렸다. 

일이 풀리지 않을때, 여기까지 인가부다 좌절하는 순간이 찾아왔을때, 다 포기하고 새로 시작하고 싶을때, "딸아- 그동안 열심히 살았잖아. 일단 집으로 들어오렴" 이라는 말 한마디가 그리웠었다. 다 던지고 오라는 말을 들었다고 해서 내가 모든걸 포기하지 않을텐데... 편하게 집에서 집밥먹으며 쉬다가 집의 기운을 받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텐데.... 나는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집이 편했던 적이 없다. 


그러니 입은 점점 닫히고, 서운함과 원망, 피곤함이 가득 커질 수 밖에. 

그래서 항상 '나는 혼자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는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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