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2014년 봄이었다. 그때 막 이직한 회사에 적응 하느라 일주일에 사나흘은 야근이었다. 거기에 왕복 두 시간씩 출퇴근을 하다 보면 집은 그저 씻고 잠만 자는 공간이었다. 당연히 취미나 별다른 운동을 꿈꿀 수 없었다. ‘이렇게 사는 건 아닌데... 뭔가 일상의 재미가 필요한데...’ 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퇴근길, 라디오를 들으면서 집 근처 골목을 터벅터벅 걷고 있을 때였다.
- 여러분, 테니스가 정말 재밌는 운동입니다. 오늘도 아까 낮에 스케줄 끝나고 볼 치다 왔는데요, 아...테니스... 정말 매력있는 스포츠에요.
그 한 마디에, 갑자기 피곤한 눈이 절로 떠졌다. 테니스? 내가 유일하게 음반도 사고, 콘서트장도 찾아간 팬심 가득한 연예인이 테니스를 배운다니 귀가 솔깃했다. 그 당시에는, 재미가 1도 없는 지루한 일상에서 유일한 즐거움이 밤 10시 「FM 음악도시 성시경입니다」를 청취하면서 키득 거리는 거였다. 아, 심지어 사연도 보내서 당시에 마스크 팩을 상품으로 받은 적도 있었다. 연예인 성시경이 좋아서 밤 10시부터 2시간동안 꾸벅 꾸벅 졸면서라도 듣던 프로그램 이었는데, DJ 성시경이 ‘테니스’가 정말 재밌는 운동이라는 말 한마디에 호기심이 생겼다.
‘나도 난생 처음으로 배워볼까?’ 자문하다가 테니스가 처음이 아니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때는 다시 10년 전으로 더 거슬러 올라가서 2004년도 가을학기 였다. 대학교 3학년 2학기 교양체육 과목으로 나는 테니스를 선택했다. 때마침 집 베란다에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아빠의 낡은 테니스 라켓도 있었고, 그 해 여름, 혜성처럼 스포츠뉴스에 등장한 테니스계의 여제, 샤라포바는 나로 하여금 테니스 라는 스포츠에 환상을 갖게 했다. 나는 늘씬한 그녀가 다양한 테니스 유니폼을 입으며 멋지게 라켓을 휘두르는 모습을 떠올리며 희망에 부풀었다, 게다가 교양체육은 아무리 못해도 삐뿔(B+) 학점은 받을 수 있다는 과 친구들의 말을 철썩같이 믿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테니스의 이론과 실기」 라는 교양 체육은 망했다.
두꺼운 츄리닝을 껴입고 교양 체육 교수님의 말대로 열심히 자세를 잡고 라켓을 휘둘렀으나 나는 중간과 기말고사 시험이었던 포핸드 스트로크에서 라켓으로 공을 제대로 맞춰보지도 못하고 헛스윙을 열 몇 번씩 휘둘렀을 뿐이었다.
나는 C 마이나스의 학점을 손에 쥐었고 재수강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날 밤, 20대 초반에 맛보기로 발을 살짝 담갔던 ‘테니스’라는 스포츠가 십 년 만에 아주 살짝, 내 가슴속에 들어왔다.
다음 날, 회사 후배를 단 둘이 점심을 먹을 때였다. 나는 지난 밤의 라디오 방송 이야기를 꺼냈다.
-예지씨, 내가 성시경 좋아하는 거 알지? 어제 방송 듣는데, 테니스 얘기를 꺼내더라고. 그게 엄청 재밌는 스포츠래.
- 재밌어요. 저는 대학교때 테니스 동아리에 들어서 처음 배웠거든요. 저는 사실 뭐, 그 비싼 대학교 등록금을 학교 코트에서 종일 테니스 친 걸로 뽑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거든요.
- 헐. 너도 테니스 쳐? 그냥 말해본 건데 진짜 칠 줄 몰랐네. 재밌어?
- 테니스가 진짜 재밌는 운동이거든요. 요새 레슨 다시 알아보고 있었는데 저랑 같이 레슨 받으실래요?
이렇게 테니스 치는 사람이 많았나 싶을 정도였다. 좋아하는 가수에 대한 팬심으로 스포츠도 따라서 해볼까 했던 마음에 회사 후배가 불을 붙였다. 그리고 다시 머릿속에 마리아 샤라포바의 근육질 몸매를 떠올렸다.
- 다이어트에도 도움 되겠지?
- 뭐, 게임 끝나고 워낙 모여서 술을 잘 마셔서... 저하고는 상관없는 얘기 같지만... 아마 소비되는 칼로리도 꽤 높을 걸요?
그렇게 2014년 어느 봄, 처음이 아니지만 처음 인 것 같은 테니스와 나는 다시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