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여름에 KBS에서 ‘우리동네 예체능 – 테니스편’을 방송했다. 시청자들의 도전 받아서 강호동 팀(연예인 팀) 대 일반 테니스 동호회팀으로 나눠 대결을 하는 컨셉이 흥미로웠다. 테니스를 이제 막 시작한 입장에서 마침 테니스를 소재로 한 예능을 방송하다니 마치 온 세상이 나를 위해 테니스를 멈추지 말라고 격려 하는 것 같았다.
테니스 입문 자체를 성시경 덕분에 하게 되어 배우고 있는데 마침 또 그를 포함한 다수의 연예인들이 처음부터 차근히 테니스를 배워 나간다는 컨셉 덕분에 재미와 테니스 스포츠 기본 룰까지 배우는 계기가 됐다.
테니스 레슨을 받으면서도 게임을 하지 않으니 기본 룰도 몰랐었는데 방송 덕분에 테니스 용어까지 알게 된 샘이었다.
그 와중에 테니스 레슨을 추가하지는 않았지만 나름 꾸준히 레슨을 받았다. 사실 꾸준히 라고 할 것도 없었다. 그래봐야 주 1회, 토요일 실내 테니스장에 가서 담당 코치에게 20분 레슨을 받는 게 전부였다. 한 달 만 하고 그만 둘까 생각하다가 기껏 라켓까지 샀는데...게다가 라켓 구입부터 레슨까지 알아봐준 회사 후배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해서 레슨만큼은 꾸준히 받았다. 실력이 더 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제 선생님이 던져주는 핸드볼 쯤이야 포핸드 백핸드 모두 받아칠 수 있었다.
그러다가 회사 후배를 통해 여자 코치님을 소개 받았다. 실내 테니스 코트가 아닌 서울의 한 중학교 테니스장에서 주말 레슨을 받았다.
나는 언제쯤 ‘발리’라는 동작을 할 수 있을지 궁금했지만 레슨 한지 석달이 지나도 포핸드와 백핸드 스트로크 레슨의 무한반복 이었다.
실내 테니스에서는 주로 스윙자세를 교정하는데 초점을 두었다면 실외코트에서 여자 코치님은 유독 나에게 뛰는 동작을 많이 시켰다.
이제 헛스윙이 현저하게 줄기 시작하자, 그냥 자세만 잡고 공을 치는 게 아니라 본격적으로 레슨에 들어기 전에 바닥에 알록달록한 ‘테니스 콘’을 깔아놓고 테니스 스텝을 가르쳤다.
- 테니스는 발이에요.
가장 기본적인 스플릿 스텝을 처음 배운 날에 코치님이 말씀하셨다.
- 예예. 멍하니 발을 땅에 붙여있지 말고 공을 향해 뛰라는 말을 제 처음 코치님한테도 들었어요. 저는 충분히 열심히 뛰는 것 같은데, 코치님은 제 발이 바닥에 붙어 있다고 하시더라구요.
- 근데 그냥 뛰는 게 아니라 테니스 스텝을 해야 해요. 저 쪽에서 상대가 빵~치면 공이 오는 걸 보고 스텝 없이 뛰어가면 움직이면 공을 때리거나 잘못된 자세로 스윙이 들어갈 수 밖에 없죠. 스플릿 스텝을 하면서 항상 공을 맞을 준비를 하다가 공이 포핸드 쪽으로 온다 그럼 스텝을 밟으면서 이렇게, 백핸드로 쳐야 하는 공은 또 이렇게.
코치님이 눈 앞에서 열심히 시범을 보였다. ‘그래, 알지알지’ 하면서 똑같이 따라한다고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스텝에 자신이 생기면 스윙이 엉망이었고, 공을 잘 치겠다는 생각에 공이 넘어 오기도 전에 온 몸에 힘을 빡 주고 있다가 팔을 휘두르며 어김없이 네트에 걸리고 말았다.
그렇게 몇 달을 주 1회, 주말마다 30분씩 땡볕에서 테니스 레슨을 받았다. 아주 미세하지만 분명 나는 처음과는 몰라보게 나아졌다. 거기까지 였다. 회사 후배 말대로 테니스 레슨 횟수를 더 늘린다거나 테니스 게임이 하고 싶어서 더 열심히 쳐야 겠다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았다.
그냥 평일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에서 보낼 수 밖에 없는 시간에 대한 보상심리로 주말 하루 나가서 땀을 흘리는 걸로 만족했다. 당시 테니스는 나에게 ‘땀흘리는 운동’ 이외의 의미를 갖지는 못했다.
진도가 더 나가지도 못하고, 테니스를 친다고도, 치지 않는다고도 말할 수 없는 날들이 몇 주 더 보내다가 나는 스리슬쩍 테니스 레슨을 그만 두었다.
10월, 더블린으로 출국해야 하는 날짜가 다가왔기 때문이다. 몇 주간 서유럽 끝에 위치한 섬나라에 놀러 가는 게 아니라 1년 이상 살아보기 위한 떠남이었다.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에 뒤늦게 어학원을 등록하여 유학생 비자를 발급 받았다.
어차피 떠날텐데, 어차피 당분간 (혹은 영원히) 하지 않을 테니스를 출국을 몇 주 앞두고 지속할 필요는 더더욱 없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