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초 한국에 돌아온 이후 거처를 제주로 옮겨서 일을 시작했다. 역시 트렁크 하나 들고 사택으로 들어가면서도 라켓은 챙겼다. 괜한 오기와 자존심 이었다. 배운 것도, 안 배운 것도 아닌 상태, 똥 누고 뒤처리 안한 기분을 끌어 안은 기분이었다.
그 이후로 몇 개월간 몇 개월 라켓만 쬐려보다가 생각보다 제주살이가 길어질 것 같다는 생각에 다시 테니스를 시작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서귀포의 동흥동에 있는 실내테니스장을 기웃거렸다.
집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었는데 정규 수업은 따로 없이 오전 내내 실내테니스장의 4면 코트를 가득 매운 테니스 회원들이 저마다 게임을 하거나 랠리를 치고 있었다. 주 1회 토요일 오전 내내 테니스 클럽을 이끌고 있는 담당 코치가 라켓을 가슴에 품고 어정쩡하게 서 있는 나에게 다가왔다.
- 전화 하신 분 맞죠? 성함이...
- 네네, 근데, 보니까 따로 레슨을 하는 건 아닌 거 같은데...저는 테니스 레슨 받으려고 문의 드린거라서...
- 주말 레슨은 따로 하지 않고 토요일 오전에 9시까지 오셔서 저랑 랠리 하시면 되요. 보통 3면 코트는 동호인들이 게임하고, 저 4번째 코트에서 볼 바구니 치거든요. 끝 코트로 가시면 다른분들과 함께 스트로크 연습 하실 수 있어요.
- 바...발리는요? 발리라는 것도 있던데, 제가 포핸드 백핸드 까지만 배우고 발리는 아직 한번도 안 해봤거든요.
- 일단 한번 보죠.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나는 4번째 코트 끝에 가서 사람들 뒤에 엉거주춤 서서 순서를 기다렸다. 코치님은 볼이 잔뜩 담겨있는 카트를 옆에 두고 순서대로 10번에서 15번 사이로 회원들과 랠리를 치며 지도를 했다.
나는 내 차례를 기다리며 사람들을 따라 섀도우 스윙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디어 내 차례. 거의 1년 만에 잡아 보는 라켓이라 잔뜩 긴장한 채로 포핸드로 날라오는 공을 받아쳤다. 설마 네트에 걸리는 게 아닐까 조마조마 했는데 어찌어찌 네트를 넘겼다. 코치님이 다시 받아서 넘겨줬고 백핸드도 성공했다. 내 인생 처음으로 두 번의 공을 받아쳤다. 테니스를 시작 하면서 소박한 꿈이 네트를 가운데에 두고 공을 멋지게 받아 치고 싶었는데 서울에서 아일랜드를 거쳐 다시 제주까지 라켓을 들고 헤맨 끝에 서귀포에서 처음으로 두 번이나 공을 주거나 받거니 했다는 데에 잠시 뿌듯했다.
첫 랠리 성공 이후에도 서너 번 공을 살린 후에 아니다 다를까 공이 네트에 걸렸다. 선생님이 네트 가까이로 불렀다.
- 백핸드 그립 잡아 보세요.
난데없는 그립 요구에 나는 그립을 잡으며 코치님의 눈치를 살폈다. 코치는 나의 손을 보더니 살짝 더 바깥쪽으로 돌려 잡으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포핸드와 백핸드의 스윙을 다시 디테일하게 교정했다.
- 라켓면을 세워서! 그리고 상대가 공을 치는 순간 라켓을 바로 빼! 면 세우고! 스윙을 끝까지 밀어줘야지. 포핸드 스윙을 중간에서 끝내지 말고. 끝까지 밀어서 오른쪽 팔꿈치가 앞을 볼 수 있도록.
쏟아지는 수많은 교정 사항들을 머릿속에 넣고, 입으로 중얼거리며 열심히 공을 치고, 내 차례가 끝나면 다시 뒤로 가서 순서를 기다리며 열심히 스윙 연습을 했다. 지금도 기억나는 선생님의 지적사항은 다음과 같았다.
- 발! 발 움직여야지! 발이 땅에 붙어 있으면 어떡해. 스텝에 맞춰서. 공 간격 보면서. 뒷꿈치 들고! 언제라도 공이 오면 뛰어 갈 수 있도록 자세 준비
- 임팩트 순간에 라켓을 앞으로 던지듯이 밀어주고. 스윙 끝까지.
약 넉달 동안 주 1회씩 나는 꼬박 서귀포의 실내 테니스장을 잊지 않고 찾았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테니스 레슨의 가장 첫 단계인 포핸드, 백핸드 스트로크를 배우는 것만으로도 평일의 회사 스트레스가 한 번에 날라가는 짜릿한 기분이었다. 느리게 포물선으로 넘어가던 공이 조금씩 세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했다.
그렇게 두 시간 가량 동호회 그룹 레슨을 받는 내내 옆 코트에서는 중년 부부들의 게임이 한창이었다.
옆 코트에서 나오는 탄식과 환호, 복식 파트너끼리 라켓을 부딪치며 파이팅을 외치는 동호회인들을 보면서 딱히 부럽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았다. 어차피 나같이 운동 신경 없는 사람이 저 무리들과 어울릴 확률은 없어보였다.
‘발리’좀 배워볼까 싶었던 마음은 쑥 들어갔다. 주 1회 테니스장을 찾는 걸로는 도무지 실력이 늘지를 않았다.
- 오늘은 베이스 라인 뒤에서 쳐 봅시다. 임팩트 순간에 강하게 빵~ 쳐서 공이 좀 떠도 상관없으니까 내가 있는 베이스 라인까지 공이 길게 들어갈 수 있도록
내 딴에는 온 힘을 다해서 라켓을 휘둘러도 좀처럼 공이 반대쪽 베이스 라인까지 닿지 않았다. 조바심과 스스로를 향한 화가 동시에 올라왔다.
- 임팩트 순간에 라켓을 앞으로 던지듯이! 던져! 빵~ 하고! 힘차게
선생님은 답답하다는 듯이 외쳤지만 공은 서브라인쪽에 가까스로 닿을 뿐이었다. 나는 더 답답했다. 그리고 길어지는 랠리에 힘이 쭉쭉 빠졌다. 다들 지치지도 않고 어떻게 저렇게 공을 치는 건지 산삼 뿌리라도 먹은 건지 의아할 지경이었다. 나는 난타가 5분 이상 길어져도 숨이 끊어질 것처럼 헉헉 대며 주저앉기 일쑤였다.
결국 포, 빽 스트로크가 원활하지 않으니 다음 진도인 발리 레슨까지 이어지지 않았고 나는 곧 지루해졌다.
갈 때마다 늘 다시 시작하는 느낌, 선생님의 지적 사항이 잘 고쳐지지 않아서 답답 하기도 하고, 나보다 열 살 이상 많은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기도 힘들었다. 나이가 지긋하신 동호회 회장님께 테니스 클럽 가입 권유를 받았지만 또래 친구 없이 가입할 생각은 없었다.
때마침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겨울이 시작되었고 폭설로 몇 번 테니스 레슨이 강제 휴강되고, 추위로 아침 테니스에 슬슬 빠지고 싶을 때, 나는 통보없이 그대로 발길을 끊었다.
그리고 그 뒤로 2년 동안, 다시 서울로 돌아올 때 까지 테니스를 잊고 지냈다. 그해 겨울, 따뜻한 요가원에서 요가 수련을 하며 제주에서 2년을 더 머물 때까지 요가에 빠져 지냈다.
이따금씩 차 트렁크에 굴러다니는 라켓을 쳐다볼 때, 가슴이 답답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