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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koni May 18. 2021

7. WTA직관이 쏘아올린 공

서울에서 몇 달, 더블린에서 몇 달, 다시 제주에서 몇 달의 합쳐서 1년 정도 테니스를 라켓을 쥐어 본 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뭐, 해봤으니까. 테니스에 살짝 발은 담가봤으니까. 더 아쉬울 것도 없다고 확신했다. 

그렇게 2019년 여름, 제주 생활을 접고 서울로 거처를 다시 옮기고 다시 그 동생을 만났다. 나를 테니스에 눈뜨게 회사 후배이자 퇴사 이후에도 자주 연락하는 언니-동생으로 편하게 지내고 있었다. 


- 예지야, 내가 요새 요가에 푹 빠졌거든. 심신건강에 진짜 좋아. 너두 요가 시작해.

- 에? 언니 테니스는 그만 둔거에요?

- 응, 뭐 몇 달 쳐봤는데 허구헌날 포핸드 백핸드 스트로크나 하고 앉아 있고 재미 없어. 

- 요가가 좋은 건 알겠는데....아, 좀 아쉽네요. 테니스가 정말 재밌는 운동인데. 

- 재미 없다니깐.

- 그거야 언니가 게임까지 못 들어가니까 그렇죠. 언니가 테니스에 투자 안한 게 아니거든요. 분명 돈을 쓰긴 썼어. 근데 뭔가 계속 하다 말다를 반복 하니까 실력이 안 느는 것 같은데


그녀와 전화를 끊고 마음이 심란해졌다. 의지박약에 대한 자책감, 평생 함께할 운동쯤, 너무 늦지 않은 나이에 시작하고 싶어했던 초심이 또 올라왔다. 그맘때, 회사를 그만 두고 프리랜서를 하게 되면서 시간적인 여유는 더 늘어난 상태였다. 물론 거의 매일 빼먹지 않고 찾아가는 요가원도 좋았지만, 갑자기 사회생활을 하지 않자 집과 요가원만 오가는 생활에 스스로 좀 더 자꾸 차분해 지고 종종 우울해지는 일상에 변화가 필요한 참이었다. 

끼워 맞추기 좋아하는 내 습관 때문이었던 걸까. 그 날 이후로 며칠간, 우연하게도 테니스장이 눈에 들어왔다. 프리랜서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서 답답한 마음에 한강을  찾았다. 하릴없이 걷다가도 커다란 클레이코트에서 테니스를 치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대로 서서 테니스 담장 너머로 한참이나 동호인들의 테니스 경기를 서서 쳐다 보았다. ‘저렇게 재밌나? 표정을 보니 재미있어 보이긴 하네’ 피식 웃고 돌아섰다. 이튿날, 러닝화를 구입하러 스포츠 매장에 들렀는데 때마침 첫 눈에 테니스화가 눈에 들어왔다. 그 날 밤, 유튜브에 우연히 뜬, 나달, 조코비치의 경기짤을 보면서 괜히 가슴이 뜨거워 지기도 했다. 


‘ 아, 모지? 테니스를 시작하라는 온 우주의 싸인인가? 진짜 그만 둘 때 그만 두더라도 나도 테니스 게임은 한번 해봐야 하는거 아냐?’

그리고 그 날 저녁, 예지에게 연락이 왔다. 


- 언니 WTA 티켓 생겼는데 저랑 보러 가실래요?

- WTA? 그게 뭔데? 

- 세계여자프로테니스 협회요. WTA에서 주관하는 국제여자테니스 대회인 코리아오픈이 올해는 9월14일부터 거든요. 기억 안나요? 언니 아일랜드 가기 전에도 제가 데려갔는데. 그게 언제냐. 2014년 가을?

- 아, 맞다맞다! 그때 성시경이랑 이재훈이 여자 선수들이랑 혼복 경기 이벤트 했었지! 아 맞네맞네, 기억나네. 완전 까마득히 잊고 있었는데. 

- 시간 되면 저랑 같이 가요. 제가 다음 일정이 있어서 저는 끝가지 자리를 지킬 순 없지만 여전히 테니스에 관심 있으시다면...

-응, 나 관심 많아. 가자가자! 


나는 무릎을 치며 소리를 질렀다. 2014년 가을, 서울에서 처음 테니스 레슨을 받으면서 예지 덕분에 코리아오픈 테니스 직관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시 스폐셜 매치 이벤트로 테니스 여제 라드반스카 선수-성시경이 장수정 선수-이재훈과 함께 혼복 경기를 했는데 목이 터져라 팬심을 담아 박수를 치며 성시경을 응원했었다. 

까마득하게 잊었던 그 기억이 다시 소환되고 나는 말 그대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2019년 9월 14일, 나는 예지를 먼저 보내고 해가 뉘엿뉘엿 기울 때까지 혼자 올림픽공원에 남아서 코트를 떠돌면서 외국 선수들의 경기를 지켜봤다. 

코 앞에서 벌어지는 경기를 집중해서 지켜보니 내 손에 땀이 날 지경이었다. 선수들 이름도 모르고 특별히 응원하는 선수가 없었지만 포인트를 딸 때, 한 세트가 끝날 때 박수를 치다가도 선수가 서브를 넣으려고 자세를 취하면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사위가 조용해졌다. 

엄청난 파워로 서브를 넣고, 다시 멋지게 리턴볼을 받아내고, 구석으로 떨어지는 공을 받아내고 한쪽이 포인트를 따냈다. 선수의 흐르는 땀, 쩍 벌어진 등 근육을 불과 몇미터 떨어진 곳에서 보며 나는 계속 감탄했다.  

침을 꼴깍 삼키며 몇 경기를 지켜보고 올림픽공원에 걸려있는 선수 대진표를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마음을 굳혔다. 

‘나 이번에 진짜 한다. 진짜 다른 건 몰라도 나도 게임까지는 한번 해보자’

3전 4기, 코리아오픈테니스 직관 경기가 다시 마음에 불을 쏘아 올렸다. 목표는 게임이었다. 수준 맞는 동호인들과 게임을 할 수 있을 정도까지 수준을 끌어 올릴 때 까지는 테니스를 그만 둘 생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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