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 이사를 다니다 보니 생계형 미니멀리스트가 됐다.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아일랜드로 떠났던 2014년이 계기가 됐다.
집을 정리하면서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잉크까지 말라버린 필기구, 채 3장도 넘겨보지 않았던 각종 어학책들과 여행지에서 틈틈이 사 모았던 작고 귀여운 장식품은 모조리 쓰레기통 행이었다. 뿐만 아니라 몇 번 입지도 않았지만, 늘어난 데 하나 없지만 왠지 손이 가지 않는 옷들을 쳐다보면서 수거함에 갖다 넣을 수 밖에 없었다. 이걸 내가 왜 샀을까, 돈도 아깝고, 내가 떠난 자리에 몇 박스의 쓰레기만 잔뜩 남기게 된 것 같아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 이후로 나는 꼭 필요한 것만 사는 사람이 됐다. 1+1 상품에 현혹되지 않았다. 대신, 정말 갖고 싶었던 물건은 좀 비싸더라도 구입했다. 애착을 갖고 오래 쓰고, 물건의 수명이 다해 버리게 되었을 때 물건에 대한 감사함과 뿌듯함 마저 느꼈었다. 무엇이든 새로운 걸 시작을 할 땐, 소비를 동반하기 마련이다.
테니스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바볼랏 라켓 하나갖고 시작을 했었다. 테니스 가방 조차 따로 구입하지 않았다. 라켓을 사면 사은품으로 따라오는 가방이면 충분했다. 복장도 별거 없었다. 테니스화는 하나 구입 하긴 했지만 그냥 츄리닝에 후드티를 돌려가면서 입었다. 그러기를 몇 년, 본격적으로 테니스에 발을 들이면서 나답지 않게(?) 하나둘씩 테니스 웨어, 테니스 악세서리를 사기 시작했다.
일단, 나의 서브 라켓을 넣고 다닐 좀 더 큰 테니스 전용 가방을 하나 장만했다. 손목 부담이 신경 쓰여서 손목 보호대와 아대도 샀다. 원래 양말은 아무거나 신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또 그게 아니었다.
- 스포츠 양말 안 신으면 발 미끄러져서 큰일 나요. 부상 올 수도 있어요. 괜히 일반 양말과 스포츠 양말이 따로 구분되어 있는 게 아니라니까요.
- 그...그런가? 그러고 보니 뛰면서 좀 미끄러웠던 던 것 같기도...
테니스 클럽 회원들의 충고로 ‘굳이...’라고 생각했던 양말을 사러 스포츠 매장에 들렀다. 스포츠 양말을 몇 켤레 집어 들다가 고개를 드니 눈 앞에 테니스 스커트와 티셔츠가 눈에 들어왔다.
그게 시작이었다. 미니멀 리스트의 옷장에 점점 테니스 웨어가 늘어났다. 실력 없는 목수가 연장을 탓한다고 했던가. 그 사이에 라켓이 문제인가 싶어서 라켓을 또 하나 더 구입했다. 하드 코트용 테니스화를 클레이 코트에서 한번 신었다가 신발이 흙으로 뒤덮힌 이후에 클레이 코트용 테니스화를 따로 또 구매했다.
봄이 되니 아무렇게나 걸쳤던 두꺼운 츄리닝을 벗어던져야 겠다 싶어서 주황색, 노랑색 스커트를 샀다. 스코트를 사고 났더니 또 테니스 티셔츠를 살 수 밖에 없었다. 한낮 뜨거운 오후의 햇빛은 자외선 차단제 하나로 피부를 지키기에는 가당치 않아 보여서 선 바이저도 하나 구입했다. 하나 샀는데, 다른 디자인, 다른 컬러의 메쉬 모자가 또 필요할 것 같아서 몇 달 뒤, 또 사버렸다.
결국 나는 잘 안 입게 되는 요가 웨어 몇 벌을 버리고, 옷장을 정리해야 했다. 비워낸 작은 옷장의 두 칸이 테니스 웨어로 가득찼다. (미니멀리스트의 옷장에서 어떤 특정한 컬렉션으로 두 칸이 다 테니스웨어라는 건 실로 경이적이라는 말씀!)
아디다스 스커트를 사고 났더니, 더 예쁜 나이키 스커트를 발견 한다거나, 요가복 전문 브랜드 였던 룰루레몬에서도 테니스 컬렉션이 출시 되는 바람에 사고 싶은 테니스웨어는 넘쳐나고 항상 지갑이 가벼워 아쉽다.
요새는 있는 옷이나 실컷 입자는 생각에 쇼핑은 멈추고, 밤마다 인★로 예쁜 테니스 웨어를 입은 여자들의 사진을 감상하며 대리만족 중이다. 옷은 다음으로 미루자. 그 돈으로 레슨에 더 투자하는 게 맞는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소비 욕구를 억누르는 중이다.
테니스 연습으로 땀으로 번벅된 옷이 후줄군하니 늘어날 정도로 열심히 치면 그때 나에 대한 보상으로 또 워너비 테니스웨어를 구매할 그 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소비를 참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