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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koni Aug 30. 2021

나 어릴적 꿈

(feat. 비누장미)

유년 시절의 기억은 부지불식간에 끼어든다. 어느 허름한, 엘레베이터도 없는, 지어진 지 족히 30년은 넘어보이는 5층짜리 아파트를 지나갈 때면 ' 나도 8살 땐 이런 아파트에 살았었지' 싶은 준비도 안된 추억 소환에 갑자기 가슴에 싸하게 뚫린다.

나의 유년 시절... 어린 시절... 모든 게 희망이자 가능성이었던 그 시절의 나로 바로 돌아간다.

그래그래. 한 번은 이런 적도 있었다. 내가 어린 시절 집 앞 상가의 지금 생각해 보면 5평이 조금 넘어 보이는 아주 낡은 문방구가 있었다. 그야말로 문방구가 내 인생 최대의 오락이었던 30년 전의 이야기다. 거기서 뽑기도 하고, 문구점앞 오락실에서 오락도 하고, 뭐 돈이 없어서 살게 없더라도 그냥 구경이라도 하면서 대리만족 했던 그 시절... 문방구 아저씨는 나를 참 예뻐했었다.

그래서 50원 내고 뽑기를 뽑았는데 꽝이어서 금방이라도 울음일 터질 것 같은 나를 보고 한 번 더 공짜로 하게 해 준다거나, 연습장 하나 사러 갔는데 공부 열심히 하라며 연필 한자루를 쥐어주는 식이었다.

어린 마음에도 알았다. 문방구 아주머니는 크게 선심쓰는 게 없는데, 문방구 아저씨는 문방구를 찾는 꼬맹이를 진심으로 예뻐라 한다는 것을.... 그래서 초등학교때는 참으로 그 문방구를 뻔질 나게 드나들었던 것 같다.

그때 아저씨는 내 이름도 알았고,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도 알았고, 나에게 오빠가 있었다는 것도 알았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많은 개인정보가 "이웃사촌" 이라는 이름으로 참으로 쉽게도 오다.

그 후, 6학년때 나는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갔기에 옛날 살던 아파트 상가의 문방구를 찾을 일을 꽤 오래도록 없었다. 그러다가 20대 후반 이미 나는 집을 떠나 서울에서 독립해서 살고 있을 때 였다.  그러니까 벌써 십년 전의 일....

부모님때문에 게 되는 나의 고향을 찾을 때마다, 내가 집을 나올 일은 엄마 따라 대형 마트를 가거나, 고향에 살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시내에 나갈 때 밖에 없었기에 굳이 옛 동네를 찾을 일은 정말 없었던 것이다. 고만고만한 크기의 도시에서 옛 동네를 우연히 지나간다고 한들, 문방구를 들어갈 일이야 정말 없었고...


그러다가 예전에 살았던 그 상가 말고, 대로변에 꽤 큰 문방구가 있길래 포스트잇이나 몇 개 사볼까 싶어서 우연히 들어갔다. 프랜차이즈 문방구도 아닌데 꽤 크고 쾌적했다. 수요가 있을라나 잠깐 생각했다가 계산대를 봤는데 순간 숨이 헉-하고 멈쳤다. 나이가 들긴 하셨지만 분명 그 아저씨 였다. 그때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던가.


- 아직도 하시는 구나

- 문방구로 성공하셨네. 이렇게 큰 가게도 하고.


일단 두 가지 생각을 기본적으로 하되, 갑자기 어린시절 아저씨가 가끔씩 쥐어주던 츄파춥스와 어린 시절 참으로 귀여웠던 내가 떠올라서 감정이 벅차 올랐다.

색색이 포스트잇을  집어들고 계산대에 낸 뒤 티 안나게 아저씨를 쳐다보았다. 그 다음 들려온 말 한 마디...


- 오랜만이네. 이게 얼마만이야. 시집가야 되겠다.

- 저....기억 하세요?


나를 쳐다보는 표정과 다 안다는 듯한 말투에서 나는 벌써 그 분이 기억하는 거 같다는 확신을 하면서도 굳이 기억을 하냐며 물었다. 반사적으로 그 말만 튀어 나왔다. 아저씨는 나를 요리 조리 살펴보며 그랬다.


- 니 오빠가 XX잖아. 맞지? 뽑기에서 꽝 나올때마다 눈에 눈물이 차오르던 꼬맹이가 어찌나 안쓰러우면서 동시게 귀엽던지.... 얼굴이 하나도 안변했구나.


맞았다. 아저씨는 20년 전의 일을 기억하셨던 거다. 이미 사회생활 몇년차 였던 나는 대단히 어른스럽게 아저씨와 몇마디 더 주고 받았던것 같다. 그 작은 문방구가 이렇게 대형 문방구가 됐네요, 성공하셨네요, 건강하세요, 아저씨 등등....그리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묘한 기분이었다. 너무 오랜만에 우연한 만남이 반가우면서도, 아저씨가 늙었다는 사실, 그리고 나도 그만큼 나이들었다는 사실이 서글펐고, 동시에 평생 그 동네를 벗어나지 못하고 같을 일을 하며 늙어가는 한 사람의 일생이 서글프기까지 했다.


그리고 아주 가끔씩, 그리고 이렇게 오늘도 그때의 그 아저씨와의 재회를 생각한다.

그리고 더 어린시절 내 놀이세상의 전부,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소비의 최대치이자 최고 럭셔리였던 작고 따뜻했던 문방구 앞을 서성이던 어린 꼬마 '나'를 떠올린다.


내 하루하루의 삶이 '불행'까지는 아니더라도 '행복'을 느끼면서 사는 어른이 아니기에 꼬마 '나'에게 많이 미안하다. 그때 꿈꾸었던 어른 '나'의 모습으로 살고 있지는 못한것 같아서. 그때 그 희망적인 미래가 더이상 내게는 없는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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