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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수 Jul 07. 2022

'소비자들'의 전당

시위하다

연세대 학생이 그곳 청소·경비노동자들이 가입한 민주노조를 고소·고발했다. 이 노조가 매일 1시간 동안 쟁의권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학습권을 침해했다는 것이 이유다. 이 노조의 분회장인 김현옥씨는 노조를 만들고 활동한 15년 동안 처음 겪는 일이라고 했다. 내가 알기로는, 서울권의 다른 대학으로 범위를 늘려도 대학이란 조직이 아닌 학생 개인이 청소·경비노동자들이 가입된 노조를 고소·고발한 사례는 연세대가 최초일 것이다.


이 학생은 자신이 당한 학습권 피해의 구체적인 죄목으로 '업무방해'를 거론했다. 대학 안에서 학생의 본업은 학습일 터다. 대학은 학생들에게 다양한 지식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다. 그 학습권은 여러 종류다. 학과 커리큘럼에 따른 전공공부일 수도, 취업을 목적으로 한 자격증 공부일 수도, 전문직이나 공무원이 되기 위한 공부일 수도 있다. 이러한 곳에서 '시끄럽게 메가폰을 트는 시위'는 공부를 하는 학생들에게 결과적으로 피해를 끼칠 수 있다.


그렇다면 학습을 방해받는 일의 책임을 오롯이 노조에만 전가하는 것이 온당할까? 대학은 책임이 아예 없는가? 학습권과 쟁의권이 충돌하면 어떤 권리가 더 우선돼야 할까? 이런 질문들을 할 수 있는 곳도 아이러니하지만 여러 학문을 연구하고 진리를 탐구한다는 대학이다. 그래서 학문적으로 다양한 이야기가 오갈 수 있지만, 그의 소송으로 이러한 논의 절차는 생략된 채 불법이냐 아니냐의 이분법적 해결 방식만 남았다. 물론 이전에도 일부 학생들이 학습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해왔지만 이 문제를 형법의 영역으로까지 끌고 간 적은 없었다. 불평 정도였다.


그는 현재 민주노조의 집회가 미신고 집회라는 점을 들어 불법이라는 주장도 했다. 대학은 교육과 행정업무를 제외한 모든 일을 외주화할 만큼 기업화한 지 오래다. 그럼에도 그동안 대학에서는 청소·경비노동자들을 학내 구성원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강했다. 그들이 근로'계약'상 여러 용역업체에 소속된 건 사실이지만, 다른 구성원들처럼 업무 '특성'상 대학 안에서 함께 지내기 때문이다. 그들도 자신을 대학의 당사자로 느끼므로, 신고 없이 집회를 여는 게 당연한 일처럼 생각했을 것이다. 연세대생은 이 '묵시적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 이는 대학 관계자들이 주장하는 제3자성을 그대로 답습한 꼴인데, 그들이 왜 용역업체가 아니라 대학이란 공간에서 집회를 여는지에 대한 복잡다단한 용역 구조를 쉽게 외면한 결과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불매는, 이윤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기업의 매출에 타격을 줌으로써 소비자의 요구를 관철시키는 소극적 저항 행위다. 노조를 조직했다는 이유만으로 집단해고당한 엘지(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과 시민사회가 소비자들에게까지 엘지 제품 불매운동을 제안한 건 빌딩 내부엔 사용자와 대항할 내부자들의 연대가 견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비자라는 '외부의 힘'을 빌려 '내부의 부당한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실패 가능성도 만만치 않다. 제품 소비자는 다수라는 이점이 있지만, 불특정하다는 한계 탓에 연대의 응집성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은 기업과 달리 불매 운동 자체가 성립될 수 없는 조건을 가지고 있다. 대학의 상품 판매 대상은 그곳의 요구조건에 '합격'한 소수의 인원만을 대상으로 하기에, 교육 소비자가 불매를 한다고 해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교육 소비자인 학생들이 불매 운동을 한다는 건 자퇴를 의미한다. 대학에 어떤 부조리한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교육 판매자를 향해 교육 소비자가 불매 운동에 나선다는 건 한국 사회에서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혹여 불매를 한다고 해도 그 빈자리는 또 다른 지원자가 들어가므로 매출에 큰 타격을 입힐 수도 없다.


비록 대학생이 외부자성에 기인한 지식서비스의 소비자에 불과해도, 기존의 제품 소비자들과 달리 내부의 구성원이 될 수 있는 독특한 위치에 있는 것도 사실이다. 등록금이라는 '비용'을 지불하고 학위라는 '재화'를 얻으려면 최소 4년간 대학이란 공간에 몸담아야 한다. 결국 '소속감'이란 유대가 존재하기에 대학 내부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관심을 갖기 마련이다. 아무리 대학이 기업화됐어도, 기업과는 다르게 불매를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소비자와 노동자 간의 더 적극적인 연대 조건이 마련돼 있는 셈이다. 여기에는 기업화된 대학에서 거의 폐기되다시피 한 지식서비스인 '진리'를 탐구하는 이들도 소수이지만 포함돼 있다. 소속감은 재학 당시뿐만 아니라 졸업한 이후에도 오랜 기간 영향력을 미친다. 연세대 출신 변호사들이 '연세대 청소·경비노동자들의 소송'에 함께하겠다고 말한 것도 그 사례라 볼 수 있겠다. 이런 독특한 소비 구조 덕택에 연세대를 비롯한 대학의 청소·경비노동자들이 불매 운동 없이도 다른 곳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좋은 노동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사실 그의 고소·고발 조치는 지식서비스의 소비자보다 판매자에 더 가까운 형태를 띤다. 그전부터 대학들은 청소·경비노동자들이 쟁의행위를 할 때 종종 소송을 걸었다. 학습권 침해와 업무방해 등이 이유였다. 그들을 불법화해 투쟁동력을 상실케 하려는 전략이었다. 그래야 청소·경비업무 외주화 목적인 비용 최소화를 최대한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 연장선상에서 대학의 모습은 능력주의적 사고와 맞닿아 있다. 쟁의권을 행사하는 청소·경비노동자들이 '능력'에 비해 임금과 처우를 너무 과도하게 요구한다고 생각하니, 그들의 주장을 쉽게 무시하기 일쑤였다.


나는 이 학생이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열풍처럼 불어온 신자유주의식 자기계발 서사를 체화해서인지, 대학이 자본화되어가는 과정을 습득해서인지, 언론이나 학계, 정치권에서 전혀 다른 분석을 내놓는 20대만의 고유한 현상 때문인지, 그 원인을 잘 알지 못한다. 그의 소송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도 잘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외부자들'의 쟁의권 탓에 학습권을 침해당했다고 생각하는 각각의 '내부자'들이 모이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그는 민주노조를 고소·고발한 뒤 대학 커뮤니티 앱에서 이 소송을 함께할 사람들을 모집하고 나섰다. 그 이름은 의미심장하게도 '연세대 불법 시위 대책위원회'다. 이들이 보인 일련의 행보는 아이러니하지만, '잘 보이지 않던 유령들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알리는 결과를 낳고 있다.





* 이 글은 2022년 5월 24일, 『한겨레』에 실렸던 「대학의 내부자들과 능력주의」를 일부 수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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