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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수 Jul 06. 2022

미화된 이름

작명하다

1984년, 노동부는 "천박하게 들리거나 멸시감, 위화감을" 조성하는 44종 직업군의 이름을 개선하기로 발표한다. "일제 때 만들어지거나 천박한 외래어가 그대로 사용되고 있어 근로자들의 자부심과 주체성을 해치고 자존심마저 건드리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조선일보>, 1984.11.20.) 엘리베이터걸은 승강기안내원, 때밀이는 욕실봉사원, 빵꾸장이는 수선원. 청소부와 쓰레기꾼은 환경미화원으로 '미화'됐다.


미화라는 단어는 의외로 자본지향적인 의미를 가졌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을 팔거나 홍보하려면 아름답게 꾸며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소비자들은 주목하기 시작한다.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 스포츠선수 등 유명인들을 광고모델로 쓰는 이유도 판매할 상품을 미화하기 위한 의도가 다분하다.


청소일에 쓰일 때도 그렇다. 쓰레기꾼, 청소부를 환경미화원으로 바꾼 전례 때문인지 청소일을 하는 노동자들을 대체적으로 미화원이라 부른다. 이때 미화는 청소가 주는 부정적인 의미를 희석시키기 위한 '의미'로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청소일뿐만 아니라 다른 외적인 일로까지 업무 범위를 확장시키기 위한 '용도'로도 사용된다. 그걸 증명하듯, 청소노동자들의 근로계약서에는 일의 범위가 내·외부 '청소'가 아니라 '미화업무'로 모호하게 적혀 있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누군가는 이렇게 반문할지 모르겠다. 청소부가 미화원과 같은 의미로 불리니, 당연히 청소도 미화와 같은 의미가 아니냐고 말이다. 실생활에서는 비슷하게 사용되는 경향이 많지만, 엄밀히 보면 청소는 미화의 영역에 속하는 단어이자 업무다.


결국 계약의 모호성은 주로 반장의 입을 통해 구체화되며 갑질문제로 번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조경, 주차관리, 제설 등의 업무 외적인 일을 미화원들에게 끊임없이 지시하는 건 이 직무들이 '환경을 아름답게 꾸민다'는 미화의 범주에 걸맞기 때문일 터다. 청소서비스의 소비자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값싸게 제공하기 위한 생산자의 '미화작업'인 셈이다.


요즘, 미화원이란 이름이 또 다른 직명으로 바뀌고 있다. 바로 환경공무관이다. 그 기원은 2016년 '서울시 및 서울특별시청노동조합 단체협약'에서 시작됐다. 이때 환경공무관은 야광작업복을 입고 생활쓰레기를 수집, 운반하거나 가로청소를 하는 노동자를 말한다. 서울의 일부 지자체에서는 환경미화원의 명칭을 환경공무관으로 바꾸는 조례 개정에도 나섰다. 다른 도시들도 환경미화원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환경공무관으로 이름을 변경하려는 추세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월 당시, 대선 후보 자격으로 환경공무관이란 직명을 아예 전국적으로 확대시키겠다고 공언하기까지 했다.


사실 직명을 바꾼다고 직업의 지위가 덩달아 달라지는 건 아니다. 거의 30여 년간 그 이름을 유지하고 있는 환경'미화원'은 이미 다른 미화원과 차별화된 처우를 받고 있다.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겠지만, 청소에도 급이 나뉜다. 이는 고용형태와 관련되어 있다.


지난 12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은 많은 청년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1980년생 1년 차 환경미화원이 받는 연봉 때문이었다. 그는 환경미화일을 하고 대략 5천만 원 이상을 임금으로 받는다고 밝혔다. 기본급 외 성과급, 연차수당, 상여금, 복지포인트 등을 모두 합친 수치라고 하지만, 고연봉을 받는 건 확실하다. 근로계약상 노동자로서 1년 차에 5천만 원 이상의 연봉을 수령하는 직장이나 직종은 그리 많지 않다. 그가 이렇게 고연봉을 받을 수 있는 이유는 지자체, 또는 그 산하 시설관리공단에 '직고용'된 미화원인 덕분이다.


지자체나 그 산하 시설관리공단이 직고용하는 환경미화원은 공채경쟁률이 50대 1을 넘는 곳도 있을 만큼 인기다. 그의 상황처럼 정년이 보장되어 있고, 연봉도 나름 높기 때문이다. 일이 힘들지만 그만한 대우를 받는 것이다. 그래서 MZ세대의 지원율도 꽤 높은 편이다. 이렇게 보면 더러운 것을 만지는 일에 투영되는 기존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청소일이 고임금을 보장받을 수 있는 직업처럼 보인다. 이와 더불어, 레드오션으로 뒤바뀐 대기업, 공기업 취업 시장과 달리 청소일은 청년들에게 새로운 일자리 기회를 창출할 수 있는 블루오션처럼 비치기까지 한다.


하지만 공무원이 아닌 탓에 지자체마다 환경미화원에 대한 처우와 고용관계가 다르고, 산업재해의 위험도 상존한다. 예컨대 최근 기사화됐듯이, 용산구에서 일하는 환경미화원들이 수개월째 임금을 전혀 받지 못하고 일하는 것은 이유야 어찌 됐건 용역업체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일을 하다가 잠시 쉴 대기시설도 마련되어 있지 않는 곳도 파다하다. 이러한 사례들이 확인해주듯 환경미화원의 일터 환경은 여전히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더 많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이 의원은 환경미화원이란 직명을 바꿔야 하는 이유로 "하는 일과 사람에 대한 존중이 담겨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는 유독 차별받고 멸시하는 직종에 대해서 과도할 정도로 존중을 강요하는 경향을 보인다. 사실 직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는 명칭 바로 사용하기에서 시작"되기보다 처우나 환경 개선에서 비롯된다. 그것이 직업에 대한 진정한 존중이라 할 수 있겠다. 쓰레기꾼, 청소부를 환경미화원의 명칭으로 미화했지만 청소라는 직업에 드러나는 우리의 공통된 인식이 여전히 그대로인 건 그들에게 주어진 환경이 한몫했다는 방증이 아닐까?


이런 상황에서 환경미화원을 일부 지자체가 '완벽하게' 직고용한 이후부터 공채경쟁률도 함께 높아졌다는 점은 분명 시사하는 바가 있다. 그렇다면 직명을 바꾸는 대신 이런 대책을 먼저 논의해야 하지 않을까? '무기'계약이란 이름으로 정년만 보장된 지자체·공공기관 청사 청소노동자들에게도 직고용된 환경미화원만큼의 대우를 해줄 수 있는가? 최저임금이 인상될 때마다 미화원들의 근로시간을 되레 줄여서 최저임금 인상을 무력화시키는 민간 업자들의 꼼수를 해결할 방법이 있는가? 지자체별로 다른 환경미화원의 노동조건을 공무원 수준으로 통합할 수 있는가?


현실은 도외시한 채 이름을 아름다운 단어로 꾸미는 일은 가장 쉬운 방법이다. 그래서 어디서든 손쉽게 즐겨 쓰는 리모델링 방법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정당사에서 보수, 진보 할 것 없이 정당명의 변경이 당의 체질개선이나 쇄신으로 연결 지어져서 당명이 수없이 바뀌었던 전례들처럼 말이다. 1984년에 천대받는 일이라고 지명된 44개의 직종 중에 이름이 변경돼서 처우나 인식이 좋아진 직업은 얼마나 있을까?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의 사기도 진작됐을까? 분명한 건 지금도 청소라는 직업은 어떠한 이유에서든 과도하게 '미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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