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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수 Jul 10. 2022

떠오르는 얼굴

규정하다

얼마 전, 화이자 백신 1호 접종자가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란 보도를 보았다. 그 주인공은 코로나19 병동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 정미경씨였다. 그녀는 백신을 맞은 뒤에 한 인터뷰에서 "완벽하게 항체가 형성돼 옛날처럼 즐겁고 기분 좋게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 인터뷰를 보고, 나는 그때 불현듯 한 사람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도 병원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였다. 수술실에서도 일했고, 병실에서도 일했다. 그녀는 수술 후 피가 범벅인 곳을 청소한 일화를 미소 한번 잃지 않고 이야기하는 노동자였다. 그 당시, 그곳에서 고참급 대우를 받는다던 그녀가 수령하는 월급명세서는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꾸려져 있었다. 그녀는 대개 청소라는 일이 그렇듯, 용역업체 소속이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녀가 의료폐기물을 치우다가 주삿바늘에 찔렸다. 그때 자신에게 혹시 모를 병이 생기는 건 아닌가 걱정했다. 하지만 용역반장은 그녀에게 다들 그런 경험을 한다면서 괜찮다는 답만 내놓았다. 오히려 조심하지 않았다고 나무랐다. 결국 그녀는 자비로 건강검진을 받아보았다. 다행히도 건강에 이상이 없다는 소견을 듣고서야 안심할 수 있었다고 한다.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얼마나 불안했는지 몰랐다고 말하던 그녀의 떨리는 목소리가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만큼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든 일이 바로 병원 청소였다. 그녀는 병원이란 곳이 '회전율'이 높다고 말했다. 들어오는 숫자만큼 일을 버티지 못하고 나가는 이들도 많다는 의미였다. 먹고살기 위해 버티는 것이지만, 그래도 일은 보람차다고 했다.


그녀는 일하기 전에 항상 기도를 했다. 병원에 온 환자들의 병이 씻은 듯이 낫길 바란다고 빌었다. 그래서 땀이 나도록 더 열심히 청소했다. 이야기하는 내내 병원의 핵심은 위생과 청결이라고 강조하던 그녀는 의사, 간호사 선생님들처럼 병원에서 자신만의 몫을 수행 중이라고 생각했다.


"의료폐기물을 제때 수거하지 않거나 수술실을 제때 청소하지 않으면, 병원이 제대로 돌아갈  있을까요? 제가 여기서 청소하는 것도  환자분들의 생명을 다루는 일이 아닐까 싶어요."


우리가 당장 병원이란 단어를 통해 떠올리는 직업군은 아마도 의사, 간호사 등과 같은 의료진일 것이다. 병원에서 청소일은 환자의 생명과 무관하다는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그녀의 사례처럼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 청소노동자들은 병원에서 보조적인 업무를 하지만, 그들의 존재는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존재를 단번에 떠올리지 못하는 건 우리가 병원이란 곳을 '병을 고치는 사람'만 존재한다고 규정한 결과는 아닐까. 그것을 꼭 병원으로 한정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국회 하면, 언론사 하면, 학교 하면, 그때마다 떠오르는 얼굴은 누구인가. 그 축소된 시각이 청소 등 육체노동을 '볼품없는 일'로 만드는지도 모른다.


실상 청소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인식이 보편화되어 있다. 집 안에서도 하고 집 밖에서도 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청소는 가사의 한 종류로 취급받기 일쑤다. 가사는 주목받지 못한다. 임금을 받지도 않는다. 가사를 시급으로 환산하면 얼마로 책정할 수 있을까.


그것이 실제로 ‘노동’이 되면 법적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과 마주한다. 근로기준법에도 명시되어 있다. "이 법은 (…) 가사(家事) 사용인에 대하여는 적용하지 아니한다." 그래서인지 가사'노동자'보다는 가사'도우미'로 더 많이 불린다. 청소일은 그 연장선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나는 청소노동자의 화이자 백신 1호 접종이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청소노동자도 '병원 종사자'라는 인식을 드러내는 일종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병원을 떠올렸을 때 의료진뿐만 아니라 청소노동자까지 생각난다면 그들에 대한 처우도 조금은 바뀌지 않을까.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갖고 있던 그녀는 지금도 병원에서 일하고 있을까. 그렇다면 청소노동자의 화이자 백신 1호 접종 소식을 듣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때 그녀는 나에게 이런 말을 조심스레 건넸었다. "우리도 병원 식구란 사실을 알아줬으면 좋겠는데 오히려 병원 식구들이 우리를 인정하지 않는 것 같아 슬퍼요." 당신은 병원 하면 누가 떠오르는가.





* 이 글은 2021년 3월 16일, 『한겨레』에 실렸던 「'병원 종사자'의 기준」을 일부 수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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