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섬에게 수국 한송이 놓고 갑니다

비금도를 다녀와서

by 안명옥



딸 출근을 시키고 2박 3일 비금도로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바다를 보러 가거나 섬을 보러 가는 일은 시간과 돈을 들여야 갈 수 있는 곳이다. 일산 신도시 섬 같은 곳에 사는 이유도 나는 늘 섬이 그립기 때문이다. 정현종 시인의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는 시 생각이 났다. 가는 날 하루, 오는 날 하루 걸리니 섬에 숙소를 구하고 여기저기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장마가 시작되고 있었다. 다행히 가는 길 내내 비가 오지 않았다. 저녁 5시 반이 되어서야 비금도에 도착했다.

비금도는 천일염과 시금치가 특산물이다. 신안 천일염은 평소 좋은 줄 알았다. 순간 눈물과 바다가 왜 같은 맛을 내는 걸까. 난 이곳 소금을 사 가고 싶었다. 시금치 축제가 이젠 열리지 않는다는 건 아쉬웠다. 하지만 나를 설레이게 하는 축제가 있다. 도초도에서 내일부터 수국 축제가 열린다.

*하트 해변을 가다

우선 하트 해변을 갔다. 고요했다. 물결 너머의 고요가 위로를 준다. 전세를 내준 듯했다. 파도가 잔잔하게 해변을 드나들며 기억을 지우고 있다. 잘 가라. 잘 살아라. 지금이 가장 젊다. 지금을 살라고 한다. 지금으로 충분하다. 떠난 자리에서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게들이 일제히 나왔다가 내가 걸어가면 구멍 안으로 들어간다. 게들이 다닌 발자국만이 모래 해변에 무늬를 그려놓고 있다. 산 위로 올라가 하트모양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서 사진을 찍었다. 누가 이리도 그리워 하트를 그리며 출렁이고 있느냐고 파도에게 물었다. 사람이 무엇으로 사느냐고 물으니 사랑이라고 답했다. 톨스토이처럼

*해안선의 끝, 내면의 시작이 되던 명사십리 해수욕장

저녁을 정든 집에서 흑염소탕을 한 그릇 먹고 숙소로 향했다. 가는 길에 해변 길이가 4.2킬로미터나 된다는 명사십리 해변을 들렀다. 풍력발전소 3개 중 2개가 연신 돌아가고 있었다. 해변에 땅거미가 내리고 있었다. 풍경이 나를 닮아가는 듯하다. 고즈넉하다. 바다의 침묵에게 많은 것을 배우는 시간이다. 목요일이라 그런지 여기서도 마치 해변이 오로지 나를 위해 존재하는 풍경을 선사한다. 수평선을 바라보며 저녁 바다 멍때리기를 한다. 전에 다녀간 친구는 해양쓰레기가 하도 많이 떠밀려와 해변이 지저분했다고 했다. 오늘은 그런대로 치워지고 방파제 공사 중이었다. 해변 끝까지 가보니 그곳에는 여전히 해양쓰레기인 스티로폼이며 플라스틱 작은 조각들이 모래 속에 박혀 있다. 깨끗한 모래를 기대하고 왔던 나는 바다 오염의 심각성을 명사십리 해수욕장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차로 운전해서 갈 수가 있을 정도로 모래는 찰지다. 6.25 전쟁 때 여기 해변에 헬기가 착륙했다는 소리가 믿어질 정도로 모래가 곱고 단단했다. 하지를 앞두고 있어선지 해가 길다.

*도초도 수국이 피는 섬, 마음이 머문다

간단하게 아침을 먹었다. 금요일 출근하는 딸이 여러 번 연락을 한 걸 몰랐다. 연락하니 밤새 경기 북부 폭우가 내린 것이다. 신안도 그러냐고 위험한지 연락을 한 것이다. 그런데 신안은 하늘의 보살핌이 발동했는지 이슬비 정도다.

아침부터 내 안의 섬에 수국이 핀다. 우선 도초도 수국 전을 보러 간다. 가는 길에 이슬비 속 밭에서 일을 하는 분이 보인다. 5년 전 돌아가신 엄마도 저렇게 이슬비 맞으며 일하던 생각이 나 가슴이 먹먹하다. 그런데 마을을 돌아 나오는 데 집들의 지붕이 파랗고 벽이 하얗다.

도초도를 향해 가면서 서남문대교 내리막길 cctv 주의를 했다. 수국공원은 네비게이션 안내 대로 진입해 갔다. 팽나무길 아래쪽 다양한 색의 수국이 진풍경을 이루고 있다. 1리에서 10리까지 표시가 되어 있다. 수국꽃 축제장으로 가기 위해 7리 길 전 다리에서 좌회전해서 바로 우회전해서 수국공원 주차 안내대로 차를 세웠다. 우비를 나누어 주고 있었다. 먹거리도 사서 먹을 수 있게 준비되어 있었다. 개막전 행사를 한 모양이다. 일찍 오니 12시 전 입장료를 받지 않았다. 이른 새가 먹이도 얻는 셈이다. 다양한 색과 모양의 수국을 눈과 마음에 담았다. 고요한 섬, 수국은 말을 아낀다. 침묵 속에서 피어난 감정은 겹겹이 피어나는 마음의 층위들을 보여주는 수국의 매력에 푹 빠졌다. 좋아하는 꽃이 수국이 되어 버렸다. 수국은 왜 섬에서 더 진하게 피어나는가. 내 집 창에도 수국을 심고 싶어졌다. 비원 쪽으로 내려오면서 내안의 섬이 다양한 수국처럼 피어나길 바랐다. 바람이 세지고 있다. 다시 다음 일정지로 떠났다.

*자산어보 촬영지를 가다

자산어보는 1814년 순조 14년, 조선시대 후기 정약용의 형 정약전이 저술한 해양 생물학, 수산학 서적이다. 서학을 공부한 정약용, 정약종, 정약전 3형제는 정조 시대 출사하여 뜻을 펼치다 정조 사후 서학을 공부한 이유로 모략의 대상이 되었다. 서학을 버리지 않은 정약종은 처형당하고 정약용은 강진, 정약전은 흑산도로 유배 보내진다. 유배지인 흑산도(현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연안 어족에 대한 내용을 기록한 정약전의 어보라 할 수 있는데 집필 중 사망했다. 나는 개봉 후 사극인 이준익 감독의 <자산어보>를 극장에서 표를 사서 봤다. 정약전 역을 한 설경구와 창대 역을 한 변요한의 명품 연기와 수묵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좋았다. 영화장면을 생각하며 팽나무길 7리 길에서 우회전했다. 자산어보 주차장에서 깔딱고개로 진입 후 우측 노란 간판 쪽 길이다. 왕복 4km로 편도 2km를 간 후 회차 후 2km를 다시 간다. 주차장에 주차 후 왼쪽 오르막길을 올랐다. 비가 갑자기 억수로 내리고 바람이 휘몰아쳤다. 자산어보 촬영지에서 오래 머물 수가 없어 아쉬웠다. 영화 장면들도 사진으로 전시해놓았다. 저 멀리 집 뒤편으로 바다가 보였다. 촬영지 산 왼쪽에 좁은 느림보 산책길을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무덤이 있었는데 정약전 무덤은 아닌 듯했다.

*보광식당에서 이장을 만나 담소하다.

점심 식사는 보광식당에서 했다. 갑오징어 볶음을 먹었다. 싱싱하고 간이 딱 좋다. 비가 제법 온다. 식당에서 마을의 풍경 중 궁금한 것을 해결하고 싶었다. 마을 전체 지붕이 파랗고 벽이 하얗게 도색을 한 이유를 알고 싶었다. 다양하지 못하고 획일적이어서 놀랐다. 무슨 지중해 연안이나 유럽 해안 마을처럼 색들이 다 같았다. 신안군에서 지원하여 칠하게 되었는데 도초도 비금도 마을에 지정된 색이란다. 깔끔하고 통일된 느낌은 있으나 그래도 주인이나 삶 따라 다른 색과 다양한 모양의 벽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생겼다. 교복이나 제복처럼 모두 같은 지붕 같은 벽의 색이 개성이 없다. 그러나 섬마을, 오래되어 낡고 지저분한 것을 돈 지원을 받아 도색 해준다니 주민들은 다 받아들인 모양이다.

이장을 맡고 있는 분이 수국이 토양 성질 따라 색들이 다르다고 일러주었다. 수국 전에서 다양한 수국들이 아름답기도 하고 신비로운 색들이 다양해서 놀라웠는데 토양 성분을 변화하여 보라, 분홍, 파랑, 빨깡 등 다양한 꽃 색을 만드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도초항 매표소 2층에 있는 꽃띄움에서 꽃차를 마시려다 하도 비가 와서 장을 보러 농협 마트로 향했다. 떡집 간판을 보고 갔으나 주문 떡만 하고 건강원으로 즙을 내리고 있었다. 저녁과 다음날 아침거리를 샀다.

숙소에 닿아 수박부터 잘라 먹었다. 한옥에 비가 오니 덧문이 바람에 덜컹거린다. 말굽 소리처럼 비가 왔다. 마당 꽃들도 비 목욕을 시원하게 하고 있다.

토요일 귀로에 올랐다. 오전 8:37분 가산 선착장에 8시 30분에 도착했다. 가산 비금서 남강까지 6400원, 섬드리 비금 고속 페리호 타고 간다. 어제는 비가 크게 와서 배 운행을 금지했으나 아침 전화해보니 오늘은 운행한다고 했다.

어제 배가 뜨지 못해서인지 아침 선착장 차들이 가득 들어찼다. 배가 뜰 정도의 비가 오니 다행이었다. 새벽만 해도 비가 하도 무섭게 내려 하루 더 머물러야 하나 고민했다. 이번 여행길은 조상님이나 신이 보살펴 주는 느낌이다. 수국 축제장에서 수국을 볼 때도 비가 멈추고 바람만 불어 우비를 입고도 시원했다. 땡볕 아래에서 다 보려면 곤욕이었을 것이다.

남강 갈 배표를 끊는데 신분증이 꼭 필요했다. 그러나 신분증 불참이라도 당황할 필요가 없다. 현장에서 주민등록등본을 임시 발행해준다.

올 때나 갈 때나 배는 40분 정도만 타면 된다. 하선 후 다리가 연결되어 나머지는 차로 간다. 천사대교라는 이차 선 다리를 건넌다. 천사대교는 전라남도 신안군 압해읍과 암태면을 잇는 교량으로 2019년 4월 4일 개통 되었다. 섬과 섬을 연결하는 연도교인데 신안 주변 섬 개수가 1004개로 천사대교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바닷길 속으로 물안개 해무가 브랙홀처럼 자동차를 빨아들이는 듯하다.

아점으로 먹기 위해 식당을 찾았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찾은 서리태 콩국수 집이 마음에 들었다. 웰빙 콩 이야기에서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진한 콩 국물도 진미였고 칼국수 같은 모싯잎 국수도 쫄깃하고 열무김치와 식초 절인 야채들도 풍미를 돋웠다.

집이 가까워지니 뉴스에서 접하던 서울, 경기 북부 비 피해가 믿겨 지지 않을 정도로 날이 쨍해진다. 내가 떠나온 전북 전 지역은 다시 호우주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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