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나를 흔든 풍경들

-나마스테, 내안의 낯선 나에게

by 안명옥


나에게도 버킷리스트였던 인도를 다녀온 적이 있다. 인도를 사랑하는 모임에도 서너 번 나간 적이 있을 정도다. 감독 라이언 머피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먹고 사랑하고 기도하라.’란 2010년 개봉영화를 보고 생긴 꼭 가보고 싶은 나라 둘 있었다. 인도와 발리다. 돈은 사용할 때만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한 영화다. 나도 돈을 쓰려면 영화 속 주인공처럼 써야겠다고 생각 했다.

인도는 봉선사에서 우리나라 10대 강백들을 모시고 법문을 연 적이 있었다. 현대불교신문에 연재를 하던 인연이 닿아 나도 그곳에서 법문을 들었다. 불경 공부도 하면서 <금강심>이란 법명도 얻었었다. 스님, 비구니, 거사, 보살님들과 인도 불교 성지순례를 하는데 나도 함께 할 수가 있었다.

인도를 돌면서 느낀 것은 과거 현재 미래가 다 공존하는 모습들과 빈부 차이가 너무 심하다는 것이었다. 특히 기차역마다 불가촉천민들이 가득 들어차 숨 막혔다. 기차는 연착도 심해서 하루는 내가 용기를 냈다. 주변을 둘러보니 프랑스 여자 둘이 어두운 조명 아래서 책을 읽고 있었다. 독일인 여자도 지루해 보였고 중국인 일본인들도 사프란빛 침묵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짧은 영어지만 일어나서 난 우리나라 아리랑을 부르면서 6시간 연착되는 시간을 세계 열린음악회를 개최한다고 말했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 외국인 관광객들도 뜨겁게 호응을 해 주었다. 중국노래는 나도 조금 할 줄 알아서 중국노래를 내가 먼저 첨밀밀 노래로 선보이고 중국인을 불러세웠다. 중국노래를 불러주었다. 다음은 프랑스 여자가 나와서 멋진 샹송을 들려주고 질 수 없다는 듯 독일인도 일본인도 나와서 각자의 언어로 제나라 노래를 불렀다. 외국에 나오면 애국심이 발현된다. 국가 대표처럼 순서가 돌아가면 계속 나와서 불렀다. 재미가 있었다. 난 <사찌꼬>와 <야래향>이란 일본 노래와 중국 노래도 불렀다. 일본인은 우리나라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노래를 함께 부르기도 했다. 우리 일행은 다음날이면 인도를 떠나 네팔 히말라야산맥을 보러 갈 참이었다. 스님과 비구니 스님들도 너무 기뻐하며 가지고 온 사발면, 컵라면을 풀어 외국인들과 나누어 먹었다. 다들 맛있게 컵라면을 먹는 모습에 우리 제품이 자랑스러웠다. 독일 여자는 독일에 오면 꼭 연락하라며 연락 주소와 번호도 적어 주었다. 다음에 꼭 독일을 가겠다고 했다. 다들 시간이 지루하지 않고 즐겁게 보내다 보니 기차가 왔고 우린 일정대로 또 헤어져 기차를 탔다.나마스테를 외쳤다. 음악은 역시 만인의 언어였다. 노래의 힘을 느꼈다. 아직도 나는 독일을 가보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동안 그 주소지에서 그녀는 이사를 하고 결혼도 했을 것 같다. 다음이란 약속보다 왜 카르페디엠 즉 순간에 충실해야 하는지 깨닫게 된다.

향기의 길 위에서 세계 열린 음악회를 열어준 대가로 큰 선물을 받았다. 다음날 히말라야산맥 헬기를 타고 다 돌아보는 여행 옵션으로 100달러를 대신 스님이 지불 해주셨다. 그 덕에 난 광활하고 인간의 영역이 아닌 신의 영역 같은 히말라야산맥을 두루 다 볼 기회를 얻었다. 네팔인들이 죽으면 히말라야의 바람이 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인도 기차 안에서 나는 생각했다. 부처는 어떤 고민을 했을까? 다시 되짚어 보았다. 카스트 제도는 여전히 그들의 삶 속에 남아 있었다. 불교가 인도에서 탄생 되고도 불교를 믿는 사람들은 극소수이고 대부분 힌두교를 믿고 있었다. 불교 성지순례지마다. 불가촉천민들이 내려오는 계단 양쪽에 앉아 있었고 불교도인 우리는 그들에게 약간의 인도 돈을 고르게 나누어 주고 있었다. 불교 성지순례를 온 사람들이 그들을 돕고 있었다. 먼지 속에 핀 연꽃하나를 보는 느낌이었다.

갠지스강에선 돈 많은 사람들은 장작을 많이 사서 시체를 다태울 수 있지만 장작 살 돈이 부족한 가난한 사람들은 태우다 만 시체를 갠지스강에 넣고 그 물에 몸을 담그고 그물에 자신의 죄를 씻는 사람들을 보았다.갠지스의 속살을 만지듯 풍경을 내 두눈에 가득 담았다.

양초를 켜고 배를 띄우는 사람들도 보았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현장에서 나는 한참을 먹먹하게 앉아 시체 태우는 냄새와 연기를 마셨다. 부자든 가난한 자이든 총명한 사람이든 어리석은 사람이든 나이 들고 노쇠해진다. 병들고 아프다. 때가 되면 모두가 죽는 인간들의 고통을 보았다. 역이나 거리에서 나에게 “원 달러!”를 외치던 아이에게 공부하라고 가져간 볼펜을 주고 먹을 것을 나눠주던 나는 거리에서 나고 거리에서 죽는 그들의 해맑은 눈동자를 보았다.시간이 멈춘 골목과 노을을 먹는 도시 바라나시에서 나는 시 한편을 얻었다.

머물던 숙소 호텔은 대리석이 깔리고 뷔페도 먹을 것이 넘쳐나고 공항에서 본 인도 여자들은 귀금속을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카스트의 그림자아래에서 성스러움과 혼돈 사이에서 부처의 고민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려고 애쓰던 여행이었다. 나마스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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