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by 안명옥

눈빛이 사람의 마음의 창이라면 목소리는 보이지 않는 그 사람의 얼굴이다. 우리는 보이는 얼굴을 가꾸려고 정성을 들이지만 실은 보이지 않는 얼굴은 무심하게 방치하고 있다. 그냥 나오는 대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 보이지 않는 얼굴도 가꾸면 매력적으로 깊은 울림과 카리스마가 될 수 있다.

좋은 목소리를 만나면 이끌리고 좋은 음식을 먹은 듯 기분이 좋아지고 호감이 간다.

호기를 부리거나 너무 쓸데없이 강한 목소리를 내어도 조화나 화음을 깨고 자조적인 목소리나 비명이나 흐느낌이나 느끼한 목소리는 피하고 싶다. 그래도 동글동글하면 동글한 대로 뾰족하면 뾰족한 대로, 사이다 같으면 사이다 같은 대로, 목소리는 개성을 가지고 있다

얼마 전이다. 지방취재를 의뢰받고 함께 갈 사진 기자가 전화를 걸어왔다. 강의 중이어서 약속 장소와 시간만을 얼른 정하고 끊었다. 다음 날 약속 장소로 나가 만났는데 내 목소리가 평생 잊지 못할 목소리라 했다. 어떤 학부모는 나를 작접 만나더니 사람 외모하고 목소리가 다르다고 했다. 성인 중국어반을 가르칠 때 한 학생은 나에게 전화 목소리와 평소 목소리는 다른데 내 목소리는 같더라며 내 목소리는 일명 ‘바쁘다 목소리’라고 했다

전화 목소리는 곱고 매력적인데 생각한 대로 만나보면 다른 이미지의 외모를 가졌을 경우 조금 당황할 때가 있다. 가끔 녹음한 테이프에서 내 목소리가 나오면 낯설고 어색하다. 어눌한 발음에 비음도 섞여 있다. 고요하다거나 깊은 울림을 느낄 수 없는 목소리다. 아마 나도 모르게 생활의 일부가 혹은 내 삶의 무게가 목소리에 실려 나갈 때가 있나 보다.

사람들은 자신이 보는 면만 보는 것 같다. 똑같은 내 목소리를 보고도 다르게 말해주니 말이다. 교회에서 연 문화센터 중국어 강의를 나갈 때였다. 첫 수업을 나갔는데 목사님이 나를 보고 놀라는 눈치였다. 목소리와 외모가 너무 다르다며 이렇게 젊은지 몰랐다고 했다. 이제 나이를 먹는지 그저 젊어 보인다면 본질을 잊고 기분이 들떠간다. 이제 생각하면 목소리가 늙었다는 이야기였는데도 외모가 젊어보인다는 그 말만 들려 활짝 웃었다. 목사 부인은 중국어 선생보다 불어 선생에 더 어울리는 목소리라고 덧붙였는데 난 그때도 내 목소리가 좋다는 것으로 인식했다.

어떤 이는 내 전화 목소리가 너무 딱딱하고 사무적이라고 한다. 그것은 내가 평소 전화로 용건만 간단히 하는 버릇과 말꼬리를 길게 늘이지 않고 단호하게 말하는 어투 때문인 듯하다. 다정한 사람들처럼 혹은 상냥한 사람들처럼 말꼬리를 올리거나 곱게 말해야 한다. 음의 높낮이를 주고 말하면 좀 더 부드러워 보일 텐데 내 목소리는 수평적이다. 급한 성격 탓도 있지만 워낙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다 보니 용건만 말하는 경우가 많다. 아침부터 강의할 때는 목소리를 많이 써 일 외에는 말을 아끼는 편이다.

문화센터 직원은 내 생김이 날카롭고 말랐는데 목소리가 굵고 허스키해 그나마 목소리가 외모 이미지를 서로 보완해주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북한산 등산 일원은 내 목소리가 꾸밈없고 털털하고 솔직해서 금방 마음을 털어놓을 만큼 편안하다며 좋은 목소리라고 한다. 친구들에게 내 목소리가 어떤지 물은 적이 있다. 한 친구는 섹시한 목소리라 했다. 또 다른 친구는 지적인 목소리라고 했다.

어느 사무실에 우연이 들렸을 때 초면의 사람이 날 보고 “오미자 맛이 나는 목소리.”라 했다. 난 그럴 때마다 ‘내 목소리가 매력적인가 보다.’ 하고 착각했다. 그들이 사교와 친목을 위해 하는 말들을 진심으로 받아들인 것은 아닐까. 그래서 내 목소리를 나의 카리스마로 여기기도 했다. 착각은 때로는 창조의 힘이 되기도 하듯 난 내 착각한 목소리가 ‘작업중’이란 시로 탄생 되기도 했다.

난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의 눈빛을 본다. 아마도 얼굴에 있는 검버섯이나 점, 기미 같은 것들은 화장으로 감출 수는 있어도 그 사람의 눈빛은 감출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요즘은 눈빛보다 목소리를 들여다보는 습관이 생겼다. 아마도 주변에서 내 목소리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듣다 보니 다른 이의 목소리에 관심이 높아진 것이다. 왜냐면 삶의 무늬가 사람마다 다 다르게 묻어나는 목소리를 알았기 때문이다. 목소리는 그 사람의 역사요, 이력서요, 마음이요, 성격이기 때문이다. 나무의 나이테처럼 목소리에도 일생의 열정이 새겨진 것이다.목소리를 보면 하는 일까지도 어느 정도 가늠하게 된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 아이들은 내 목소리를 선생님 같은 목소리라 했다. 잡지사에서 인터뷰하러 갈 때는 또 내 목소리가 기자 같다고 한다. 또 시를 읽고 낭송할 때는 시인같다고 한다. 그때마다 직업에서 쓰는 말투가 목소리에 스며 나온다고 생각했다. 어디 직업뿐이랴. 성격이나 마음의 상태도 물론 나타나 있다.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솔’ 음으로 나도 모르게 올라가고 흐린 날이면 목소리가 가라앉고 바람 부는 날이면 목소리가 공허하게 떠돌고 비오는 날이면 목소리가 촉촉하게 젖기도 한다.

그러나 같은 선생님도 중,고 선생님들에 비해 유치원 선생님 목소리는 다르다. 목소리는 이렇듯 하는 일에 따라 무늬가 찍히는가 보다. 딸 많은 집 아들이 누나나 여동생 말투를 따르듯이 서울 아이가 지방에 내려가 지내다 보면 그 지방 어투를 닮듯이. 그렇다면 우리도 좋은 목소리를 연습하거나 따라 들으면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거 아닐까.

한 문학 행사를 마치고 귀가하는 차 안에서 난 평소 친하게 지내던 언니에게 내 목소리를 물은 적이 있다. 가슴 밑바닥에 오래 고였다고 천천히 올라와 나오는 목소리라기보다는 목에서 나오는 목소리라며 빨리빨리 해결해야만 할 때 나오는 거라고 했다. 나만 보면 맨발 같은 여자라고 그래서 내가 좋다고 말해주던 그 언니의 지적에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언젠가 신문 기사에서 가수 김도향 씨가 이미자 가수 목소리를 물이라고 비유한 것을 읽었다. 깨끗하여 마음을 정화시키는 물이라했다. 늙어도 늙지 않는 목소리를 가진 그녀가 부러울 때가 있지만 나의 허스키한 목소리는 변성기 때 웅변을 많이 한 탓만은 아니리. 목을 관리하지 못한 잘못도 있고 목소리가 큰 탓이리라. 하지만 목소리는 청력이 떨어지면서 나도 모르게 크게 나온다. 생활은 여전히 빡빡한 자작나무 숲처럼 여백이 없는데 고단하고 지쳐 가는 생활에 내 목소리만 어찌 탓하랴.

그래서 난 10년마다 즐거운 사표를 냈다. 오랫동안 몸담아온 잡지사 기자직을 그만두고 나니 그래도 하루에 생긴 여백만큼 내 목소리도 밝아지고 여유를 찾는다.

그래서일까 우연히 문화센터 컴퓨터 강사가 내 목소리는 참 맛있는 음식의 좋은 냄새를 맡은 것 같은 그런 목소리라고 해주기에 그날 그 강사에게 점심밥을 사 주면서도 즐거웠다.

이제 더 이상 ‘바쁘다목소리’라는 말은 듣지 말아야지. 이제 더 이상 왜 장미가 아니고 패랭이 꽃이냐고 하지 않으리.

때로는 차분하고 가라앉은 목소리를 내보려 애쓸 때가 있다. 그러면 전화 받는 상대방은 “어디 아프냐?” 하거나 혹은 “무슨 안 좋은 일 있냐?”거나 “왜 기운이 없냐.”고 걱정해준다. 영교라 할 수 있는 숙이는 내 사표 내기 전 내 일터에서 전화를 받고“ 네 나이에 아직도 일하는 이 드물다. 네 목소리 보니 짱짱해. 넌 여전히 살아있어.”라고 했다.

내 목소리는 발효의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꽃대궁 속에서 꽃이 피울 때 싹을 틔우고 잎사귀를 피우고 나서야 꽃이 몽우리가 맺히는 시간을 가지듯 내 목소리도 그런 시간을 가지리. 한여름의 뙤약볕을 거쳐 지나온 포도송이가 향그러운 향기를 머금듯 나도 내 목소리가 향기가 나도록 가꾸어 가려면 내 생활을 바꿔야 한다는 것도 안다. 핏대를 올리던 전쟁같은 생활도 내려놓고 또 내려놓고 다 이해하고 뭐든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는 온건주의자가 되어야겠다.

전화벨이 울린다. 목소리를 가다듬고 숨을 한번 고른다. 차분한 목소리가 전해지길 바라면서 “여보세요?..........”하고 맒꼬리를 올려보며 말해 본다.

내 목소리는 나를 자라게 하고 나를 익어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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