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는 겨울 방학을 맞아 시집 원고를 정리할까 모스크바를 갈까 고민이라 했다. 나는 모스크바를 가라고 했다. 모스크바에서 사랑이나 뜨겁게 하다 오라고 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그 답은 사랑이라 전해준 톨스토이나 <첫사랑>의 투르게네프도 만나고 오라고 했다.
나는 새해! 하면 첫사랑이 떠오른다. 새해마다 노트를 산다. 그 노트에 적는 우선순위가 엄마를 보러 가는 일이다. 평생 농사를 지어온 팔순의 노모는 여전히 만년 소녀다. 기억이 흐릿해지지만 엄마의 첫사랑 이야기는 늘 또렷하다. 휘파람을 불면서 따라다니던 동네 오빠였단다. 수줍어하며 얼굴에 미소가 살아난다. 엄마가 여자가 되는 순간이다. 수십 번 들어도 엄마의 첫사랑 이야기는 좋다. 울면서 세상에 온 나에게 첫사랑은 엄마처럼.
후배 하나는 멀어진 여자와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신년 계획이라 했다. 여자가 원하는 걸 알아야 할거라고 하니 그게 뭐냐고 묻는다. 자연다큐에서 본 바다코끼리 삶이 떠올랐다. 가장 힘이 많은 수컷이 암컷을 다 차지하더라고. 그 힘이 자본주의를 사는 이 시대에서 돈일 수도 있고 혹은 실력이나 매력일 수도 있겠지만 내 답은 그게 아니다. ‘첫사랑’이라는 감정이 가지고 있는 묘한 아우라를 찾아 그 힘으로 다가가 보라고 했다.
첫사랑은 아련하거나 설렘으로 기억되고 샬롯을 사랑하는 젊은 베르테르가 겪은 아픔이고 슬픔일 수도 있다. 이광수의 <무정>처럼 주인공 현우와 세 여성 사이 풋풋하고 순순한 감정이거나 하루키 무라카미의 <노르웨이 숲>처럼 첫사랑의 상처와 성장 아픔을 동시에 보여주기도 한다. 아픔이든 성장이든 데미안이 그랬던 것처럼 사랑을 통해 성장하는 것이라면 더 가치로운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람은 사랑을 통해서 배우고 성장하기 때문이다. 후배도 첫사랑의 심정으로 돌아가 새롭게 다가갈 수 있다면 더 큰 성장으로 사랑을 꽃피울 수 있지 않을까.
나에게 첫사랑은 처음 사랑한 순수하고 아무 계산 없는 떨림이 아니다. 풋과일처럼 떫고 어설프고 모자라는 사랑이 아니다. 내게 첫사랑은 내가 사랑한 사랑들 가운데 가장 많이 사랑한 사랑이다.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사랑이 가장 밀도 높은 사랑이라면 그것이아말로 첫사랑일 수 있는 것이다.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가 되는 사랑의 관계에서 약자는 아프더라도 행복하다. 부모가 자식을 이길 수 없음도 더 많이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랑받는 것보다 사랑하는 쪽이 더 행복한 것도 그런 이치가 아닐까.
자발적으로 고독하게 살던 친구는 연애 중이다. 이 겨울이 축복처럼 선물이리라. 우리가 날마다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더 많이 사랑하며 살 것이다. 카르페디엠! 지금이 첫사랑 할 때다. 원고 따위는 집어 던지고 모스크바로 가야한다. 친구여!
**이글을 중앙 잡지에 발표 후 5년 뒤 엄마가 하늘나라 별이 되었다. 내 회상 속에서 엄마는 더욱 빛난다. 시간이 지나도 마음속에서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움과 아련함이 가슴에 사무친다. 새해가 되어도 노트를 사지 않는다.